[2030 세상보기/5월 31일] 헤이세이 태생
어느 만화를 보니 최근 일본에서 유행하는 말 중 "헤이세이 태생은 영리하고 대담하다" 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헤이세이 태생이란 1997년 이후 태생을 말하는 것으로, <로그아웃에 도전한 우리의 겨울>이라는 책을 쓴 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수잔 모샤트의 세 아이들이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디지털 네이티브'란 디지털 원어민을 말한다. 나는 30대 초반으로, 십대 후반에 인터넷이나 전자기기를 익혔다. 그러나 내 아래 세대인 디지털 네이티브들은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를 만들면서 아무런 설명서도 없이 어린아이가 곧바로 사용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를 목표로 했다고 말했듯이, 전자기기를 보면 우리가 바로 사용설명서를 찾는 단계를 건너뛰고 디지털 언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새로운 세대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이 세대를 인스턴트 메신저 세대, 디지털 키드, 키보드 세대 등으로도 부르는데, 디지털 언어와 장비를 마치 특정 언어의 원어민처럼 자연스럽게 사용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것이다. 수잔 모샤트는 아이폰이나 아이팟으로 자신의 세 아이가 저마다 다른 음악을 켜 놓는 것을 두고 "듣는 벽지"라고 재치 있게 표현했다. 이들 디지털 네이티브는 언제나 인터넷을 즐기며, 컴퓨터와 TV를 켜놓고, 휴대전화와 MP3를 휴대하고 계속해서 친구들과 휴대전화 메시지와 인스턴트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미니홈피와 블로그 관리에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80년대 개인용 컴퓨터의 대중화와 90년대 인터넷과 휴대전화의 보편화로 이 시기에 성장기를 보낸 세대들로서 과거 기성세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특성이 있다고 한다.
물론 인터넷은 좋은 것이다. 힘 좀 쓴다 하는 유명인 치고 트위터 계정 하나 갖지 않은 사람이 없는데, 팝 칼럼니스트 김태훈씨는 쿨하게 "원고료도 안 주는 것 누구 좋으라고 하나"라고 대답했다. 트위터를 하는 인물이긴 하나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김규항씨는 "만약 인터넷이 없었더라면 우리 사회가 조금 더 품위 있지 않았겠는가"라고 씁쓸하게 대꾸했다. <로그아웃에 도전한 우리의 겨울>을 쓴 모샤트는 자신을 포함해서 모든 식구가 좀더 얼굴을 맞대고 살기 위해 처음에는 전기부터 끊어 버렸다. 전자레인지도, 텔레비전도, 냉장고도 죄다 쓸 수 없다는 이야기다. 물론 10대 자녀들의 반발은 엄청났다. 그러나 모샤트 역시 원고를 쓰기 위해 시내까지 가서 손으로 쓴 원고를 다시 타자로 쳐서 보내는 불편을 겪으면서 아이들을 설득하자, 아이들은 다락에서 턴테이블을 꺼내와 밥 딜런의 레코드를 들으며 지루한 시간을 이겨냈고, 촛불 아래서 <해리 포터>시리즈를 끝낸 다음 이어 <만들어진 신>을 읽기 시작했다. (모샤트는 <만들어진 신>에 대항하기 위해 이처럼 신이 있다는 큰 증거가 있느냐고 환호했다) 아들은 골동품 색소폰을 꺼내 연주하기 시작했다. 요즘 대형 커뮤니티들을 보면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디지털 네이티브'들이 여론을 만들고 또 사그라뜨리는데, 이를테면 xx녀 시리즈를 보면 하나같이 바로 폰카로 찍어 인터넷 사이트에 올릴 열의가 있는 사람들이 특히 그렇다. 물론 97년 이후 젊은 태생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인터넷을 다룰 줄 아는 그 이상의 연배에도 이런 사람은 충분히 있다. 또한 이런 글이나 사진을 올리는 사람들은 꼭 한 마디가 보태어져 있다. '낚시 아니에요 ' 혹은 ' 이 글 낚시 아니야?' 라는 한 마디다. 그걸 보면 슬퍼진다. 자신의 황당하거나 기가 막힌 처지를 이야기하면서 굳이 낚시가 아니라고 줄줄이 설명해야 하거나, 다른 사람의 그러한 처지를 가엾게 생각하기 전에 워낙 당한 적이 많으니 낚시 아니냐고 먼저 의심부터 하는 것은 옛날 골목길 평상에 앉아 하는 이야기나 미용실 대기석에 앉아 하는 이야기보다 진심어린 소통이라는 면에서 훨씬 질이 떨어지는 것 같다. 누군가는 장난으로 이럴수 있다. 아마 악질적인 장난꾼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먼저 믿어 주자.
김현진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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