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UM의 유쾌한 제주 실험] '디지털 유목민'..서울 중심 사고에 반기

입력 2012. 5. 16. 09:29 수정 2012. 5. 16.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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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 이전, 구상에서 정착까지

이재웅 다음커뮤니케이션 창업자가 지방 이전 아이디어를 처음 떠올린 것은 2003년 4월이었다. 1년에 한 번씩 각 팀별로 돌아가면서 여는 조찬 회의에 신입 사원 한 명이 30분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뒤늦게 나타난 사원의 변명이 이랬다. 인천 부평에서 버스를 타고 강남까지 출근하는 데 2시간이 걸린다. 8시 조찬 회의에 참석하려면 5시 반에 준비하고 집을 나서야 하는데 버스를 한 번 놓치는 바람에 늦었다는 것이다. 이재웅 당시 사장은 그날 이후 조찬 회의를 중단했다. 그는 얼마 후 사내 게시판에 이런 글을 올렸다.

"우리 회사가 만약 환경이 좋은 작은 도시로 본사를 이전한다면 여러분은 회사를 계속 다닐 수 있나요? 우리가 다 옮겨가도 우수한 인재들이 계속 올까요? 대표이사로서가 아니라 공해에 찌든 이재웅 개인으로서 물어보는 겁니다."

비밀팀 꾸려 이전 후보지 검토

직원들의 장난스러운 댓글이 주르륵 이어졌다. 이 사장은 단순히 아이디어를 던지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지방 이전을 검토하는 사내 특별팀을 비밀리에 꾸렸다. 춘천·경주·대전·전주와 인천 송도 등이 후보지로 떠올랐다. 하지만 이 사장의 마음속에는 일찌감치 '제주'가 자리 잡고 있었다. 서울에서 멀지 않은 도시로 이전하면 결국 출퇴근 거리만 멀어지는 결과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박대영 다음커뮤니케이션 제주프로젝트 담당 이사는 "다른 곳과 달리 제주도라면 직원들의 반응도 달라질 것이라는 판단도 작용했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제주 이전을 구상하며 독일의 최대 미디어 그룹인 베텔스만의 사례도 떠올렸다. 그는 1998년 투자 협의를 위해 독일 중부에 있는 베텔스만 본사를 방문한 적이 있다. 비행기를 타고 다시 철도 지선으로 갈아타고 한참을 더 들어가야 하는 귀터슬로라는 인구 10만 명의 소도시였다. 시 전체를 통틀어 호텔이 2개뿐이었다. 베텔스만은 이곳에서 세계적인 미디어 그룹으로 성장했다. 당시 베텔스만 최고경영자(CEO)는 "우리는 전 세계를 상대로 사업을 할 수밖에 없다"며 "본사가 어디 있느냐는 큰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지방 이전은 20세기 후반부터 나타난 새로운 산업 트렌드와도 잘 맞아떨어졌다. 정보기술(IT)의 발달로 전통적인 산업 입지론이 설득력을 잃게 된 것이다. 전통 제조업에서는 원료와 시장, 물류가 기업의 입지를 결정짓는 핵심 요인이다. 하지만 IT 등 첨단산업에서는 우수한 인재를 끌어들이는 삶의 질이 입지를 결정한다. 다음의 제주 이전 과정을 연구한 김수종 자유칼럼 공동대표는 "경제적 여유가 있는 지식 노동자들의 생활 패턴이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옛날에는 도시에 살며 일하고 경치 좋은 시골에서 머리를 식혔지만 지금은 정반대라는 것이다. 휴가지에서 일하고 원할 때 도시로 간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인터넷과 휴대전화, 세계 어디든 가는 택배 시스템이다.

다음의 제안은 제주도에는 호박이 넝쿨째 굴러온 격이었다. 2002년 국제자유도시로 지정받았지만 뚜렷한 투자 유치 실적이 없어 몸이 달아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우근민 제주지사가 적극적인 구애에 나섰다. 그 후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2004년 3월 제주도와 지방 이전 추진을 위한 협약(MOU)을 체결하고 그 다음 달 인터넷지능화연구소 16명이 애월읍 유수암에 펜션 2동을 빌려 제주 생활을 시작했다. 본격적인 이전에 앞선 선발대 격이었다.

제주 이전 계획이 알려지자 반대 목소리가 빗발쳤다. 박 이사는 "정신 나간 사람들이다, 어떻게 비즈니스를 제주에 가서 하느냐는 회의론이 대다수였다"고 말했다. '지방 이전으로 얻는 세제 혜택이 얼마나 된다고 서울을 떠나느냐', '만의 하나 매출이 2%만 떨어져도 회사 망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괜한 모험을 하지 말고 웬만하면 그냥 서울에 있자는 것이었다. 서울을 떠나는 데 대한 뿌리 깊은 공포였다.

지방 이전에 따른 각종 혜택은 처음부터 큰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다음이 받은 지원금은 입지 보조금 68억9300만 원, 설비 투자 보조금 33억7700만 원, 진입로 개설비 3억3000만 원 등 106억 원에 불과하다. 여기에 첨단과학기술단지 입주에 따른 법인세 면제(3년간 100%, 이후 2년간 50%)와 취득·등록세 면제 혜택이 추가된다. 최정혜 다음커뮤니케이션 지역협력실장은 "지방 이전에 따른 인센티브가 엄청나게 많아 제주로 간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지만 회계적 이득만 보면 불가능한 일"이라며 "차원이 다른 비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이 사장의 의지는 분명했다. 그는 '즐거운 실험'을 내걸고 제주 이전에 더욱 힘을 실었다. 2004년 6월 미디어본부를 제주로 옮기는 승부를 던졌다. 초 단위로 쏟아지는 뉴스를 서비스하는 미디어본부는 제주 이전이 가장 어려운 조직으로 꼽혔다. 이런 곳을 가장 먼저 내려보낸 것이다. 미디어본부가 안착한다면 제주 이전이 문제없다는 가장 분명한 신호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2006년 제주시 오등동에 글로벌미디어센터(GMC)를 준공하면서 제주 근무 직원이 200여 명으로 늘어났다. 이듬해 말 제주대 인근에 조성된 제주첨단과학기술단지 부지 12만7873㎡를 사들이면서 다음의 제주 시대는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 다음은 한라산 기슭에 자리한 이 넓은 부지를 '다음 스페이스'로 이름붙이고 2009년 본사 이전을 위한 스페이스닷원(Space.1) 신축에 들어갔다.

제주 근무 만족 79.6%

지난 8년간 추진된 제주 프로젝트에 대한 내부 평가는 긍정적이다. 다음은 2004년 지식인 검색을 앞세운 네이버에 포털 업계 1위 자리를 내주면서 한동안 정체기에 빠져들었다. 이 시기 다음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된 아고라와 tv팟, 블로거뉴스 등 주요 서비스들이 제주에 둥지를 튼 미디어본부에서 탄생했다. 박 이사는 "자유로운 환경에서 나오는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높은 업무 몰입도가 이를 가능하게 했다"고 말했다. 지난 4월 초 스페이스닷원을 완공해 본사를 이전한 다음은 다음TV로 또 한번 도약을 노리고 있다.

제주 생활을 꿈꾸는 직원들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작년 제주에 근무하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만족도 조사에서 응답자의 79.6%가 제주 생활에 높은 점수를 줬다. 특히 40대와 5년 이상 장기 근무자의 만족도가 각각 87.5%, 85.3%로 가장 높았다. 제주 이전을 원하는 서울 임직원들의 비율도 47.2%에 달했다. 현재 제주 직원들이 꼽는 가장 큰 애로 사항 중 하나가 부족한 보육 시설이다. 제주 본사에 보육 시설이 마련된다면 제주로 옮기고 싶다는 응답이 63.7%로 뛴다.

다음에서는 화상회의가 일상적인 문화로 자리 잡았다. 제주 스페이스닷원과 서울 한남동 사옥에는 화상회의 설비가 잘 갖춰져 있어 수시로 활용한다. 심지어 신입 사원 면접도 화상회의로 진행할 정도다. 협력 업체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납품 업체들은 한남동 다음 회의에서 화상통화로 제주 구매팀과 협상을 벌인다. 박 이사는 "화상회의로 진행되다 보니 협상 과정 자체가 굉장히 이성적이고 효율적으로 이뤄진다"고 말했다. 당초 우려와 달리 제주 출장을 반기는 업체들도 적지 않다.

현재 제주 이전 직원들에게는 결혼 여부와 자녀 수에 따라 매월 70만~100만 원의 지원금이 지급된다. 주택 지원금과 자녀 교육비 등이 모두 포함된 액수다. 여기에 명절 항공권, 구내식당에서 아침·점심·저녁 무료 제공, 빨래방 무료 이용 등 각종 혜택이 추가된다. 최 실장은 "영화 '건축학 개론'의 인기 영향으로 요즘 제주 직원들 사이에 자기 집 짓기 열풍이 불고 있다"고 말했다.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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