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쿼리의 9호선, 민영화의 민낯
당신이 어떤 기업의 지배주주라고 가정하자. 그리고 당신의 관심은 오직 투자금을 크게 '뻥튀기'하는 데 집중되어 있다. 해당 기업이야 발전하면 좋겠지만 설사 쇠락한다 해도 어쩔 수 없다.
당신이 이런 '오너'라면 상황에 따라 정말 쉽게 돈 버는 방법이 있다. 당신이 직접 해당 기업에 상당히 높은 금리로 돈을 빌려주고 비싼 이자를 챙기면 된다. 정상적인 기업이라면 지나치게 높은 이자를 물면서 대출하려 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기업을 지배하는 것은 당신이잖아! 그냥 이사회에서 고금리 대출을 승인하면 된다. 물론 그 기업은 이제 엄청난 이자 부담 때문에 서서히 말라갈 것이다. 자본잠식 위기가 올 수도 있다. 그러나 상관없다. 빨리 '금융수익을 극대화'해서 유사시에는 '먹튀'하면 그만이다.
이 회사가 중소기업이라면 사회적 해악은 크지 않을 것이다. 대기업이라도 악영향을 미치는 범위는 그나마 제한적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금융수익 극대화' 논리가 사회 기반시설까지 침투한다면 심각한 상황이 닥치게 된다. '요금 인상 50%'를 선언한 '서울메트로9호선주식회사'(메트로9호선)가 좋은 사례다.
메트로9호선은 지난 4월15일, 돌연 지하철역 공고문을 통해 기본요금을 50% 올리겠다고 '선언'했다. 깜짝 놀란 서울시는 공개 사과 요구와 함께 과태료 1000만원을 부과했다. 그러나 메트로9호선은 과감했다. "예정대로 6월16일부터 인상된 요금을 받겠다"라고 맞받아친 것이다. 서울시는 다시 사장 해임, 사업면허 취소, 운영권 재매입 등 과격한 방안으로 메트로9호선을 압박하려 했다. 그러자 메트로9호선은 "민간기업 사장을 강제로 그만두라고 할 수 없다. 사장 선출권은 주주들에게 있다"라는 '지극히 당연한' 반박문을 내놓았다.
ⓒ시사IN 조남진 지하철 9호선 종점인 계화역에서 열차가 출발을 기다리고 있다. |
메트로9호선은 공공성이 매우 강한 지하철을 운영하고 있다. 심지어 최소운영수입보장(MRG) 규정(예상 수입보다 실제 수입이 낮을 경우 정부가 그 차액을 보장해주는 제도)에 따라 개통 이후 469억원 규모(2010년 144억원, 2011년 325억원)의 정부 보조금을 받았다. 그래서 지자체(서울시) 측은 이를 감독 대상으로 간주한다. 시민들도 메트로9호선을 공기업 정도로 생각해왔을 것이다. 그러나 소유 구조로 볼 때 메트로9호선은 '당당한' 민간기업이다. 정부 지분은 단 한 푼도 들어가 있지 않다. 사실 법률적으로 따지면 서울시와 메트로9호선 중 누가 요금 결정권자인지도 해석이 분분하다.
6월16일까지 메트로9호선은 '신성한 소유권의 보장'을 내걸고 서울시, 시민여론 등에 대항해 사투를 벌일 것이다.
자기 회사를 망치려는 주주들
2004년 설립된 메트로9호선의 최대 주주는 현대그룹 계열사인 철도 전문업체 현대로템이다. 지분 25%를 소유하고 있다. 이 외에도 포스코ICT(10.19%), 현대건설(7.64%) 등 건설사들이 지분의 30%를 점유하고 있다. 나머지 45%는 금융사들이다. 맥쿼리한국인프라투융자회사(맥쿼리인프라)가 지분 24.53%로 2대 주주이며, 신한은행(14.90%), 신한생명(2.99%) 등도 주요한 주주다. 제조업체와 금융업체가 소유권을 반분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 회사 경영의 주도권은 금융업체들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메트로9호선은 요금 인상 명분으로 경영난을 든다. 특히 '누적 적자가 1820억원에 이르러 자본잠식(지속적으로 적자가 발생하여 자본금을 까먹는 현상) 상태'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회사의 재무제표를 분석해보면 자본잠식의 원인이 주주 중에서도 금융업체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메트로9호선 자본잠식의 가장 큰 이유는 간단하다. 사업 규모에 비해 자본금이 너무 작다.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이 회사의 매출액이 935억원이다. 이자로 낸 돈만 461억원에 달한다. 그런데 자본금은 1671억원에 불과하다. 회사 경영이 2~3년만 부진해도 누적적자가 자본금을 초과할 수 있는 규모다. 이에 더해 2011년 말 현재 장기 차입금 규모는 무려 4960억원에 달한다. 부채가 자본의 3배다. 2009년 개통 이후 3년간 지하철 9호선은 모두 1634억원 규모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그런데 같은 시기의 이자비용이 무려 1000억원이다. 이자비용만 낮아도 자본잠식 시기는 훨씬 뒤로 미뤄졌을 것이다.
메트로9호선의 장기차입금은 매우 '비싼 돈'이다. 4960억원 중 4280억원의 연이자율은 7.20% 혹은 'CD 금리+2.6%'(4월 중순 현재 CD 3개월물 금리가 3.54%이므로 6.14%)이다. 더욱이 나머지 668억원의 경우, 금리가 무려 15%에 달한다. 이른바 '후순위 대출'이다.
후순위 대출은 해당 기업이 정리되는 경우, '가장 나중에'(후순위) 돌려받을 수 있는 돈이다. 그만큼 위험이 크고 금리도 높다. 그래서 후순위로 돈을 빌려준다는 것은 해당 기업이 망하는 경우 대출금을 돌려받지 못해도 좋다는, 매우 책임성 높은 태도다. 그런데 메트로9호선이나 다른 SOC 회사처럼 '망하기 힘든 기업'에 높은 금리로 돈을 빌려준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세림회계법인 이상근 회계사는 "고액 이자를 받기 위한 편법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자가 순손실의 2~3배까지
메트로9호선처럼 '망하기 힘든' 기업에 이렇게 좋은 조건으로 대출하고 있는 채권자들은 누구일까. 그리고 메트로9호선 측은 왜 이렇게 비싼 돈을 빌려 쓰고 있는 것일까. 더욱이 서울시가 지급보증을 통해 이자율을 4~5%대로 내려주겠다고 해도 메트로9호선 측은 마뜩지 않은 표정이다. 정상적인 주주와 경영진이라면 이자 등 비용을 최대한 줄이고 유상증자로 자본금을 늘려 기업을 정상화하려 애쓰지 않을까. 순이익을 내야 주주로서 배당금도 받을 수 있을 것인데도 말이다.
그런데 이런 수수께끼는 채권자들의 얼굴을 확인하면 쉽게 풀린다. 채권자들의 정체는 맥쿼리인프라, 신한은행 등 메트로9호선의 금융계 주주들이기 때문이다. 즉 주주들이 자신이 '오너'인 기업을 통해 고금리로 대출을 받아서 엄청난 이자수익을 챙겨온 것이다. 자본 확충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배당금은 못 받지만 이자를 챙긴다. 심지어 후순위 대출이라는 방법까지 동원했다. 세림회계법인 이상근 회계사는 "(메트로9호선 2대 주주인) 맥쿼리가 처음 도입한 첨단(?) 금융기법이다. 맥쿼리는 자사가 투자한 모든 도로·항만 등에 비슷한 수법으로 후순위 대출을 설정해놓고 있다"라고 말했다.
ⓒ참여연대 제공 4월18일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지하철 9호선 요금 인상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메트로9호선이라는 기업 처지에서 이 같은 이자수익은 '비용'으로 잡혀 자본잠식을 초래했을 뿐이다. 그러자 지금까지 높은 금리를 누려온 금융계 주주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일(자본잠식)을 명분으로 과격한 요금 인상을 주장하며 책임을 시민들에게 떠넘기려 하고 있다.
대단한 아이디어 아닌가. 경영권을 장악한 뒤 해당 기업이 고금리 대출을 받아들이게 해서 돈을 번다. 이런 좋은 자본조달 구조를 설계한 장본인은 누구일까. 현재로 볼 때는 맥쿼리인프라가 유력한 용의자로 보인다. 맥쿼리인프라가 투자하고 있는 다른 SOC 회사에서도 비슷한 패턴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맥쿼리인프라는 오스트레일리아(호주)의 거대 금융복합체인 맥쿼리그룹의 자회사다. 맥쿼리그룹은 SOC 투자에서 혁혁한 실적을 올려온 것으로 유명하다. 전 세계 27개국 110개 이상의 SOC에 투자하고 있는데 미국 다음으로 많이 투자하고 있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예컨대 메트로9호선의 주주인 맥쿼리한국인프라투융자회사는 국내 SOC 14곳에 1조7700억원을 투자하고 있다. 그런데 공통점은 상당수가 자본잠식 상태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메트로9호선 측은 자사의 자본잠식 상태를 매우 절박하게 호소하고 있지만, 이는 맥쿼리가 지배하는 여러 SOC 기업에서는 결코 특별한 경우가 아니다.
그중 하나가 1997년에 설립된 대구동부순환도로주식회사다. 이 회사는 2002년 준공된 4차 순환도로(범물지구~안심국도)를 관리, 운영하는 업체다. 원래 지배주주는 코오롱건설·영남건설 등으로, 국민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들과 1365억원 규모의 대출약정을 하고 있었다. 금리는 5.37~6.91%로 5년 거치 11년 분할 상환 조건이었다. 그런데 2005년 이 회사를 인수(지분 100%)한 맥쿼리인프라는 우선 대출금을 모두 갚아버린다. 메트로9호선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직접 돈을 빌려주기 위해서다. 맥쿼리인프라는 국민은행 등 다른 금융사들을 끌어들여 대주단을 구성한 뒤 다시 대출약정을 만들었는데, 이에 따르면 선순위 대출금리는 6.5~7%, 후순위 대출금리는 무려 15~17%다. 맥쿼리인프라는 주로 후순위 대출로 대출했다. 한마디로 회사의 대출 조건을 더욱 악화시키는 짓을 대주주가 저지른 것이다.
메트로9호선과 마찬가지로 대구동부순환도로에서도 이자비용은 수익성을 치명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이 회사는 당기순손실 132억원을 냈는데, 이 시기의 이자비용이 110억원에 달한다. 특히 2006년엔 순손실 90억원에 이자비용 130억원, 2008년엔 순손실 8억원에 이자비용 135억원 등으로 이자가 순손실보다 훨씬 많을 정도다. 이런 와중에도 2002~2011년 사이, 최소운영수입보장 규정에 따라 876억원의 정부 보조금을 받았다. 현재 자본잠식 상태다.
금융자본의 민낯
광주제2순환도로 1구간을 관리, 운영하고 있는 광주순환도로투자주식회사는 더 심한 경우다. 맥쿼리 계열사인 한국도로인프라투융자회사(KRIF)가 한국도로관리주식회사로부터 100% 지분을 인수한 것은 2003년 3월이다. 2003년까지 이 회사는 국민은행 등으로부터 7.25%로 1420억원을 빌리고 있었다. 그런데 맥쿼리가 채무구조를 완전히 바꿨다. 기존 대출금을 상환한 뒤 다른 금융기관들을 끌어들이지 않고 유일한 채권자로 등장했다. 맥쿼리인프라 단독으로 1420억원을 10% 이자율로(선순위 대출), 319억원은 20% 이자율(후순위 대출)로, 자사가 오너인 광주순환도로투자주식회사에 대출했다.
그래서인지 광주순환도로투자주식회사는 이자비용이 순손실보다 많은 정도를 넘어 2~3배에 이른다. 2011년의 경우, 순손실이 134억원인데, 이자비용은 333억원이다. 2010년엔 순손실 140억원에 이자비용 305억원. 2005년 이후 매년 150억원 내외의 정부 보조금을 받고 있으나 자본잠식 규모가 날로 확대되고 있다.
심지어 이런 장사에 공기업이 끼는 경우도 있다. 우면산인프라웨이주식회사가 뚜렷한 사례다. 우면산인프라웨이의 경우, 맥쿼리인프라가 36%, SH공사가 25%, 대한민국재향군인회가 24%를 보유하고 있다. 후순위 대출 이자율은 20%인데, 맥쿼리는 95억원을, SH공사는 66억원을 이 조건으로 운용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공공 부문에 민간기업, 특히 금융수익 극대화의 논리를 개입시키는 것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보여준다. 금융자본의 처지에서 해당 기업의 유지·발전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되도록 빨리 큰 규모의 금융수익을 얻어내는 것이 목표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는 오는 2015년 개통될 수서발 KTX 민영화를 위한 사업자 선정 절차를 서두르고 있다. 이에도 외국 자본의 지분 참여가 가능할 전망이다.
윤준병 서울시 도시교통본부장은 시가 지급보증하면 4%대에서 이자율을 맞출 수 있는데, 메트로9호선 측은 이런 비용절감 노력은 하지 않고 돌연 '사고를 쳤다'며 '금융자본의 부도덕성이 드러난' 사례라고 말한다. 세림회계법인 이상근 회계사는 "맥쿼리가 메트로9호선의 대주주가 되고 '부도 위험 없는' 기업에 후순위 대출을 할 수 있게 된 경위를 조사해야 한다"라고 제안한다.
사실 지난 10여 년 동안 한국 사회에서는 공공 부문의 민영화가 소리 소문 없이 진행되어왔다. 위에서 봤듯이 대구와 광주의 민자 참여 도로에서 자행된 해외 금융자본의 '공공성 파괴' 사례는 아직 국가적 차원의 파문으로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메트로9호선의 '50% 인상 공고' 사건은, 공공 부문을 장악한 민간 부문이 그 섬뜩한 민낯을 대중에게 서슴없이 공개한 최초의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종태 기자 /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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