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역중단' 못하는 정부..촛불시위 때 우려가 현실로

2012. 4. 25.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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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미국산 소 광우병 발생] 정부 왜 '즉각 검역중단' 못하나

2008년 협상때 구체적 문구 안넣어…사실상 '검역주권' 포기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했는데도, 우리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막는 적극적인 조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 본격적인 수입 중단은커녕 그 전 단계에 해당하는 검역 중단조차 유보했다. 광우병 발생 소식이 전해진 25일 오전까지만 해도 검역 중단 조처를 취하는 것은 당연시됐다. 하지만 오후 들어 상황이 급변했다. 2008년의 '촛불 사태'를 야기한 한-미 쇠고기 수입 협상이 얼마나 부실했는지 현실로 확인된 셈이다.

'국민 보호위해…필요한 조처' 추상적 표현만촛불시위 불렀던 쇠고기 '부실 협상' 확인돼담당자 "당시 실무자 아니어서" 궁색한 해명

■ 2008년 부실협상 "잘못 끼운 첫 단추"

농림수산식품부는 "미국의 광우병 발생 소에 대한 정보가 충분치 못한데, 서둘러 조처를 취했다가는 통상 마찰을 야기할 수 있다"고 검역 중단을 유보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여인홍 식품산업정책실장은 "광우병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충분히 따져보고, 과학적 근거를 확보해 후속 조처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럴 경우, 미국 쪽의 자료를 받고 우리가 현지에서 이를 확인하는 등의 절차를 거치는 데 한달은 소요된다. 물론 어느 정도 판단이 서면 한달이 되기 전에라도 검역 중단 조처 정도는 취할 수 있다.

정부의 태도가 이렇게 소극적인 이유는 한·미 양국이 2008년 합의한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위생조건에 '검역 중단' 절차를 적시한 명시적인 문구가 없기 때문이다. 2008년 6월의 추가협상 뒤에 확정된 최종고시에서도 "한국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수입 중단 등의 필요한 조처를 취할 권리를 가진다"고 추상적으로 표현했을 뿐, 추가협상의 본문과 부칙 어디에도 '검역 중단'이란 단어 자체가 들어 있지 않다.

검역 중단보다 무거운 단계인 수입 중단 조처를 취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미국과 2008년 4월에 맺은 수입위생조건 본문에서 "세계동물보건기구(IOE)의 광우병 지위 등급이 '통제국'에서 '비분류'로 떨어질 때에만 수입을 중단할 수 있다"고 이미 합의했기 때문이다. 박상표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정책국장은 "광우병 지위 등급이 '비분류'로 떨어져야 수입을 중단한다는 조항은 실제로 한 나라에서 100건 이상 광우병이 발생할 때나 적용이 가능한 것으로 사실상 유명무실하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광우병 쇠고기 수입에 대해서는 나라마다 양자협상을 통해 별도로 까다롭게 규제하고 있다. 실제로, 자국산 쇠고기의 무차별 수입을 요구하고 있는 미국 또한 "광우병이 발생한 적이 있다"는 이유로 영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여전히 금지하고 있다. 영국 역시 미국과 같은 등급인 광우병 '통제국'이지만,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 "당시 실무자 아니어서" 정부 해명도 군색

정부도 2008년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추가협상 내용이 부실하다는 점을 부인하지 못하고 있다. 농식품부의 실무자들은 25일 기자 브리핑에서 "(2008년 협상) 당시 실무자가 아니어서…" "구체적인 액션 플랜이 빠져 있다"는 식으로 얼버무리기에 급급했다.

미국과의 2008년 추가협상 뒤에 개정된 가축전염병예방법에서도 "수출국에서 광우병이 추가 발생하면 … 긴급한 조처가 필요한 경우 수입 중단 등을 취할 수 있다"는 선언적인 내용을 담는 데 그쳤다. 박상표 정책국장은 "아마도 정부가 광우병이 다시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알맹이 없는 '거짓말 협상'으로 대충 넘어가려 했던 것 같다"며 "이번에 미국에서 광우병이 추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부실 협상의 실상이 묻혔을 뻔했다"고 지적했다.

김성훈 전 농림부 장관은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했다면 일단은 수입을 중단한 뒤에 후속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 맞다"며 "우리 국민 1명의 생명이라도 중하게 여기는 정부라면 수입 중단 조처를 뒤로 미룬 채 검역이나 강화하겠다는 말을 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의 미온적인 조처가 오히려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우리 시민의 불신을 가중시키고, 유통 혼란을 가져온다"고 우려했다.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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