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호랑이 엄태웅과 밉지 않은 치타 이선균

- 엄태웅·이선균, 정말 비슷한가요?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무명의 두 남자배우가 있다. 오디션을 볼 때마다 그들은 같은 역할을 따내기 위해 서로 부딪치는 운명에 처해 있다. 남자와 남자는 비슷한 이미지의 거울, 두 남자는 언제나 바늘 끝에 서서 서로를 마주본다. 황야의 결투처럼 마지막에 승리하는 사람만이 캐스팅을 따 낼 수 있다. 비슷한 이미지였다던 이 두 배우가 바로 엄태웅과 이선균이다. 영화와 드라마 곳곳에서 활약하는 두 사람 모두 무명시절의 이야기를 할 때마다 이 에피소드를 빼놓지 않는다.
하지만 정말로 궁금했다. 엄태웅과 이선균의 이미지에서 어떤 부분이 비슷한가? 두 사람의 영화와 드라마를 봤던 나에게 두 사람의 캐릭터는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 건축학개론 > 에서 엄태웅이 맡은 역할을 이선균이 한다는 건 상상이 가지 않는다. < 파스타 > 에서 버럭 소리를 지르는 엄태웅 셰프 역시 마찬가지.
도대체 두 배우의 이미지가 어디가 비슷하다는 거지? 그렇다면 혹시 관상이 비슷한가? 둘의 사진을 꼼꼼히 살펴보던 나는 비슷한 점을 찾아내긴 했다. 어딘지 둘의 얼굴이 강인한 맹수의 상과 비슷하다는 것,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포효하는 무서운 맹수라기보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정감 가는 맹수의 얼굴이었다. 두 사람 모두 남자답지만 영화 < 장군의 아들 > 이나 < 친구 > 속의 마초들과는 또 결이 약간 다르다.
우선 엄태웅의 얼굴은 호랑이를 닮았다. 특히 < 부활 > 이나 < 마왕 > 에서 묵묵한 얼굴로 복수를 다짐하는 갈색 눈동자는 고요하지만 무서운 맹수의 눈 그대로다. 하지만 그의 전체적인 이미지가 초원을 거침없이 뛰어다니며 사냥하는 백수의 왕은 아니다. 오히려 억울한 호랑이에 더 가깝다. 사냥꾼의 총에 맞아 동굴에 몸을 숨기고서 잠시 숨을 고르는, 혹은 동물원 우리에 갇혀 자유를 꿈꾸는 맹수를 떠올려 보라. 이빨을 드러내고 날고기를 물어뜯기보다 고요히 자신의 운명을 곱씹는 호랑이 말이다.
그래서 엄태웅에게는 무언가 억울한 사연을 담고 있는 역할이 최적이다 싶다. < 적도의 남자 > 에서의 선우 역할 역시 그에게 딱 맞아떨어지는 '엄태웅'표다. 이보다 더 억울할 순 없는 남자주인공이니 말이다. < 건축학개론 > 의 주인공 역시 억울하긴 억울하다. 한순간의 오해로 첫사랑을 나쁜 여자로 오해한 채 이십대를 훌쩍 보낸 청춘이니까. 반면 억울함 없이 다부지고 씩씩한 캐릭터는 오히려 엄태웅과는 살짝 어긋난다. < 선덕여왕 > 에서의 유신이 그러했다.

반대로 이선균의 얼굴과 연기에서는 날렵하고 정확한 치타가 엿보인다. 엄태웅의 연기가 어딘가 느릿해 보인다면 이선균은 훨씬 재빠르다. 이선균의 매력은 특이하게도 그가 큰 목소리로 버럭 화를 낼 때 드러난다. 낮은 톤의 목소리가 정확한 발음으로 딱딱 떨어지면서 펑펑 터지는 경쾌한 팝콘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서 그가 아무리 드라마나 영화 안에서 얼굴을 찌푸리며 화를 내도 시청자들은 별로 기분이 나쁘지 않다. 심지어 아무리 깐죽거리는 역할을 해도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로 바꿔놓는다.
이선균은 드라마 < 파스타 > 에서 자신과 가장 잘 맞는 옷을 입었지만 밉지 않은 악역을 해도 잘 어울릴 배우란 생각이 든다. 멋있는 사기꾼 역할을 맡은 이선균을 드라마나 영화에서 한 번 보고 싶다. 다만 섬세한 감성의 결이 필요한 영화에서 이선균의 '버럭'톤이 도드라질 때 어딘지 전체적인 맥락이 깨져 보일 때가 있다. 영화 < 화차 > 의 남자주인공이 이선균이 아닌 조금 더 맥없고 기운 없는 연기를 하는 배우였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 건 그래서다. 아무래도 이선균하고 가장 어울리지 않는 건 억울한 남자 같다. 아무리 억울한 일을 겪은들 따닥따닥 잘 따질 캐릭터 같으니까.
문득 엄태웅과 이선균이 함께 출연하는 영화나 드라마는 어떨지 궁금해진다. 둘이 함께 한 작품에 출연한다면 진한 우정을 나누는 역할은 오히려 시시할 것이다. 실제의 둘은 절친이라지만 전혀 다른 캐릭터를 가지고 있기에 작품 안에서는 악연으로 맺어지길 기대한다. 갑자기 나타나 친한 척하다 뒤통수를 치는 남자 A와, A에게 당하지만 결국 끝내주는 한방으로 상대를 녹다운시키는 남자 B의 이야기. 아니면 영화 < 파이트클럽 > 에서처럼 두 사람이 전혀 다른 다중인격을 지닌 한 명의 인물로 등장해도 재밌겠다. 혹은 무인도에 버려진 두 명의 현대판 '로빈슨 크루소'로 분해 각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섬을 탈출하려 애쓰는 남자의 모습을 보여주면 어떨까?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KBS,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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