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멋있게 찍지마요, 중매들어오니까"
[한겨레] '서울모현가정호스피스의 집' 김갑경 안나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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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또는 당신이 매일 사람이 죽는 모습을 지켜보거나 죽음을 앞둔 말기암 환자들과 만나게 된다면 우울해질까, 아니면 행복해질까.
말도 안되는 질문을 안고 서울 남산 아래 용산구 후암동 44 '서울모현가정호스피스'의 집에 들어섰다. 마리아작은자매회가 호스피스병원인 강원도 강릉 갈바리의원과 경기도 포천 모현의료센터와 함께 가정의 말기암 환자들을 돌보기 위해 설립한 곳이다.
"김갑경 안나 수녀님을 보러왔는데요."
"전데요."
'설마 나일 줄은 몰랐지롱' 하는 듯한 장난기 가득한 표정의 안나(46) 수녀는 머리에 베일도 쓰지 않고 수녀복도 입지 않았다. '인상착의'부터 예상을 벗어난다.
죽어가는 사람들 돌보는마리아작은자매회서 24년"저는 고난·극기엔 관심 없고행복하려고 들어왔거든요"
베일을 벗거나 사복을 입을 수 있는 건 그가 속한 수도회인 마리아작은자매회의 선택사항이다. 하지만 이 수도회 한국관구 소속 38명의 수녀 가운데 그런 선택을 한 이들이 4명뿐인 것을 보면, 그가 튀는 쪽인 것 같다.
그의 주변에 수녀복을 입은 동료 수녀들도 만만치 않다. 안나 수녀의 사진을 찍자 "너무 멋있게 찍어주지 마세요. 중매 들어오니까"라고 말한다. '하하호호' 배꼽이 쉴 새가 없다. 이곳이 죽어가는 사람들 돌보는 집 맞아? 아무래도 번지수를 잘못 찾아온 것 같은 표정을 짓자 안나 수녀는 "저는 고난이나 극기엔 관심 없고, 행복하려고 수도원에 들어왔거든요" 하며 웃는다.
서울 보문동에 살며 성당에 다니던 그는 대학 1학년 때 언니의 권고로 여름에 행려병자 20여명과 수사들이 함께 살아가던 '사랑의 선교회' 봉사를 갔다. 이 대목에서 그는 "내쪽에선 봉사라고 하지만, 수사님들은 밥만 축냈다고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때까지 밥을 해본 적도 반찬을 만들어본 적도 없던 그는 호박볶음을 하다가 호박죽을 만들어 수사로부터 "못해도 못해도 너처럼 못하는 아이는 처음 본다"는 구박도 받았다.
수녀복 벗고 '사복' 차림하하호호 배꼽이 쉴 새 없다"죽고 사는 일 아니면근심 걱정 할 것 없잖아요"
하지만 그도 수사들의 구원자가 된 적도 있었다고 자랑한다. '사랑의 선교회'가 노숙인들을 위해 만든 식당이 영등포 사창가에 있었다. 수사들은 골목을 지날 때마다 '업소' 여성들에게 손목이 잡혀 곤혹을 치르곤 했기에 그 골목에선 수사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여성 보디가드' 구실을 했다는 것이다.
그도 애초 행려병자나 노숙인들이 지내는 곳은 행복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머지않아 그 편견의 골짜기를 뭔가 알 수 없는 행복감이 메우기 시작했다. 그가 수도회에 들어온 이후에도 마치 친정 나들이 가듯 사랑의 선교회에 가서 행려병자들과 어울리는 것은 욕망만을 추구하는 세상에선 결코 맛볼 수 없는 따스함 같은 것이 느껴지면서 저절로 행복해지기 때문이란다.
그가 하필 죽어가는 사람들을 돌보는 호스피스를 전문으로 하는 수도회에 입회하게 된 것은 기이한 우연 때문이었다. 대학 2학년때 아침에 골목을 나서다 막 사망한 듯 구급차에 실리는 주검을 보고 차도에 갔다가 불난 상가에서 몸에 불이 붙은 채 뛰쳐나오는 사람을 목격했다. 그렇게 학교에 가보니 선배 언니 3명이 시험 공부를 하려고 한방에 모였다가 밤사이 연탄가스 중독으로 사망했다는 비보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 나절에 연속된 세 사건을 접한 뒤, 전엔 생각해보지 않았던 '죽음'이 그의 화두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일반인들을 위해 여의도성모병원에서 실시한 '호스피스 교육' 1기생으로 참여하며 '죽어가는 이들을 돌보는 일'과 인연을 맺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989년 이 수도회에 입회한 그는 때론 교육을 받거나 성당에 배치돼 일하고, 수도회 식구들의 생계를 위해 '임상병리' 전공을 살려 병원에 취업해 일도 했지만, 대부분을 호스피스 일에 몸담은 채 보냈다.
죽는 순간 상당수 사람들이'이제 집에 가자' 하는데어떤 집을 말하는지는 몰라"그 순간 지극한 평화로움 보여"
호스피스를 하는 동료 수녀들과 함께 지난해 <죽이는 수녀들 이야기>(휴 펴냄)를 써 감동을 주기도 한 그는 지난해 어머니의 죽음을 맞았다. 암에 걸려 1년 전 72살에 사망한 어머니는 장례식 뒤 살펴보니, 스스로 모든 옷 등 소유품을 다 정리했고, 함께 산 오빠와 다소 불편한 관계도 마지막에 용서와 화해로 마무리하고 갔다.
그는 "아버지는 벌써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자랑한다. 그러면서 "예전엔 부모님이 불러도 형제들은 물론 저도 수도회 일이 바쁘다고 안갔는데, 며칠 전엔 아버지로부터 '나 힘들다'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네 형제자매가 달려가 아버지를 모시고 강화도에 가 재롱을 피웠다"고 했다. 죽음을 통해 뭐가 더 중요하고 뭐가 덜 중요한지 분명히 알게 되면 저절로 그렇게 된단다. 웃음꽃이 절로 피는 '삶의 비결'이 그에겐 얼마나 쉬운지 모른다.
"죽고 사는 일 아니면, 그렇게 근심 걱정 할 것 없잖아요."
죽고 사는 일도 아닌데, 대부분 더 욕심을 내는 바람에 근심 걱정을 산다는 것이다. 도인 같은 폼을 재긴커녕 이웃 아주머니보다 더 스스럼 없는 모습인데도 한마디 한마디가 해탈의 경지다. 그뿐이 아니다. 수많은 죽음을 직접 지켜본 그는 죽음의 두려움마저 말끔히 씻어준다.
'나쁜 의사'를 만나 죽기 전날이나 당일까지 내시경을 하거나 항암치료를 받아 고통을 사는 경우를 제외하곤, 말기 환자들이 사망을 며칠 앞두고 몸이 부서지는 듯한 고통이 지나고 나면 대부분 지극한 평화 속에서 마지막을 맞는다는 것이다. 그는 "죽는 순간에 상당수 사람들이 '이제 집에 가자'고 하는데, 그 집이 어떤 집을 말하는지는 모르겠다"며 "그 순간 지극한 평화로움을 보인다"고 삶 너머의 축복을 전한다.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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