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팀장 지시로 공PC로 교체했다"..삼성전자, 공정위 조사방해 치밀하고 조직적

김다슬 기자 입력 2012. 3. 18. 14:48 수정 2012. 3. 18.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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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를 조직적이고 상습적으로 방해한 혐의로 역대 최고 액수인 4억원의 과태료를 부과받았다. 삼성전자의 조사방해는 고위임원부터 용역업체 직원까지 다수가 가담해 미리 마련해둔 시나리오에 따라 조사원들의 출입을 막고 자료를 폐기하는 등 첩보작전을 방불케했다.

공정위는 18일 "삼성전자에 조사방해와 관련한 역대 최고 액수인 4억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연간 매출액 165조원의 국내 최고 기업이라는 삼성전자는 과거에도 두 번이나 공정위 조사를 방해하다 과태료를 부과받은 전과가 있다.

공정위가 공개한 삼성전자의 조사활동 방해 실태는 매우 조직적이고 치밀했다. 증거인멸 노력은 내부 보고문서, 폐쇄회로(CC)TV, 임원 간 이메일 등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지난해 3월 24일 오후 2시 20분. 공정위 직원들은 삼성전자가 휴대전화 유통과 관련해 가격을 부풀린 혐의를 잡고 수원사업장에 예고 없이 들이닥쳤다. 그러나 삼성전자의 보안담당 용역업체인 휴먼·에스원 직원 11명에게 가로막혔다. 신분을 밝혔지만 내부규정상 사전약속을 하지 않은 경우 담당자가 나와야만 출입을 허용할 수 있다는 이유로 50분간 몸싸움까지 벌였다.

결국 조사요원들은 오후 3시10분에야 조사 대상 사무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무실에는 직원 김모씨만 혼자 있었고, 핵심 자료가 들어 있던 컴퓨터(PC) 3대는 2시40분에서 3시 사이에 텅빈 PC로 교체된 상태였다. 출입이 지연되는 동안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지원팀장 박모 전무의 지시에 따라 증거인멸이 이뤄진 것이다.

공정위가 입수한 당시 보안담당 용역업체 내부 보고문서를 보면 용역업체 주임은 전화로 직원들에게 출입지연을 지시하고 사무실 중문을 폐쇄했다. 삼성전자 내부보고 이메일에서도 '지원팀장 지시로 공 PC로 교체했다'는 문구가 발견됐다. 오후 2시 51분 CCTV에 찍힌 영상에는 직원들이 서류를 폐기하고 책상 서랍장을 이동하는 장면이 생생하게 담겼다.

삼성전자 보안담당 부서인 정보보호그룹은 이틀 뒤인 26일 그룹장 정모씨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회의에서 '에스원과 휴면 직원들이 대처를 잘했다. 정보보호그룹 지시를 충실히 이행했다'고 자평하기도 했다. 상부가 조사 방해에 개입한 정황이다.

삼성전자는 이 사건 이후 어이 없게도 국가기관을 상대로 한 보안규정을 강화했다. 조사공무원이 방문해도 사전연락이 없으면 정문에서부터 차가 못 들어오게 하고, 바리케이드 설치, 주요 파일에 대해 대외비 지정 및 영구삭제, 자료는 서버로 집중할 것 등이 보안규정의 골자다.

이게 다가 아니다. 무선사업부의 부서장인 김 모 상무는 사건 당시 수원사업장에 있었음에도 조사 공무원의 전화에 '서울 본사에 출장 중이다'라며 조사를 거부했다.

공정위는 이는 자체 수립된 사전 시나리오에 따른 것이라고 보고 있다. 공정위가 찾아낸 내부 보고문서에는 '사전 시나리오대로 김 상무는 서울 출장 중인 것으로 응대하고 조사관의 의도를 명확히 확인 후 다음날에 조사에 응하라'라는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김 상무가 부사장에게 보고한 이메일에도 이 내용이 담긴 것으로 미뤄볼 때 김 상무 윗선도 공정위의 조사 방해에 깊숙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다.

조사공무원들이 조사가 더는 불가능하다고 보고 철수하자 부서장은 숨겨뒀던 PC를 가져와 파일삭제프로그램으로 조사대상 자료를 모두 없앴다. 김 상무는 훗날 공정위의 조사가 시작되자 갤럭시 탭의 가격정책, SK텔레콤 관련 파일을 삭제했음을 시인했다.

삼성전자의 조직적인 방해로 허탕을 친 공정위는 이후 사건정황 파악에 나섰다. 그러자 삼성전자는 허위자료 제출로 또 한 번 공정위를 눈속임하려 시도했다.

조사공무원의 출입지연 사유를 확인하기 위해 관련 부서가 속한 건물의 출입기록을 공정위가 요청하자 7월 11일부터 두 차례 대책회의를 열었다. 이 회의에서 삼성전자는 당시 PC교체를 수행한 직원 이 모 씨의 이름이 삭제된 허위 출입기록을 제출했다.

삼성그룹의 조사방해는 이번만이 아니다. 1998년부터 작년까지 공정위가 주요 조사방해 행위와 관련해 과태료를 부과한 15건 중 5건이 삼성계열사에서 일어났다. 1998년에는 삼성자동차와 임직원의 조사거부 및 방해(과태료 1억2000만원)가 있었고 2003년은 삼성카드가 허위보고, 허위자료 제출(2000만원)을 했다. 2005년은 삼성토탈 직원의 조사 방해(1억8500만원)도 있었다. 삼성전자는 2005년과 2008년 조사 방해로 5000만원, 4000만원의 과태료를 각각 부과받았다.

공정위는 휴대전화 가격을 부풀리고서 마치 엄청난 할인혜택을 부여하는 것처럼 소비자를 속인 사건과 관련해 과징금 23억8000만원을 결정할 때 조사방해 행위를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기업들의 조사 방해가 나날이 교묘해지고 있다"며 "불공정행위의 적발·시정을 어렵게 하는 기업에는 모든 법적 수단을 동원해 강력하게 대응할 것이며 현장진입 지연 등에는 형벌을 적용할 계획"이라고 경고했다. 지난달 27일 국회를 통과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에는 폭언, 폭행, 현장진입 지연6저지 등 조사방해에 형벌(3년 이하 징역, 2억원 이하 벌금)을 부과하는 조항이 신설됐다.

<김다슬 기자 amorfat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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