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광장에 벼농사 짓나
서울시가 시내 한복판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뒤쪽 잔디밭에 991㎡(300평) 규모의 논을 만드는 방안을 놓고 기술적 검토를 진행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최종 검토 결과는 이르면 다음주 초 나올 예정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21일 "농부, 환경단체 활동가, 교수 등 전문가들과 함께 광화문에서 과연 벼가 제대로 자랄 수 있는지 타당성을 조사하고 있다"며 "벼농사를 짓게 된다면 모내기 일정에 맞춰 공사를 빨리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2월 말까지 결론을 내릴 방침"이라고 밝혔다.
광화문광장 벼농사는 지난 7일 환경연합·그린트러스트·시민환경정보센터·흙살림·쌈지농부·서울한살림 등 시민단체들이 공동으로 박원순 시장에게 정책제안을 한 사업이다. 지난해 오세훈 전 시장 시절 김영종 종로구청장이 처음 아이디어를 제안했으나 오 전 시장이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아 무산됐다가 박 시장이 들어선 후 다시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타당성 조사에 참여한 이태근 흙살림 대표는 "기술적으로 큰 문제가 없다"며 "가장 큰 우려 중 하나였던 불빛 문제도 장애가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보통 야간 조도가 5~6룩스(Lux·불빛의 세기를 나타내는 단위) 이상이면 벼가 자라기 어렵지만, 측정 결과 광화문광장 일대 조도는 1.5~2룩스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논 조성을 위해서는 현재 깔려 있는 잔디와 그 아래의 자갈·모래를 걷어내고, 비닐을 깔아 방수층을 만든 후 흙을 까는 작업이 필요하다. 관개시설은 잔디밭에 물을 주는 데 쓰이고 있는 스프링클러를 그대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 대표는 "오는 24일 광화문 벼농사를 제안한 시민단체 관계자들과 박 시장이 만나 긍정적 결론을 도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일각에서는 오 전 시장 시절 광화문광장이 잦은 시설변경으로 인해 예산 낭비의 전형이란 인식이 시민들에게 워낙 강하게 뿌리내린 탓에 이번 벼농사 시도가 자칫 또 다른 전시행정의 일환으로 비쳐질까 우려하고 있다. 오 전 시장 시절, 광화문광장은 2009년 8월 대형 꽃밭인 '플라워카펫'으로 조성됐다가 그해 12월 스케이트장으로 바뀌고, 2010년 3월에는 다시 지금의 '광화문의 앞뜰'로 세 차례 시설이 변경되면서 21억원의 세금이 낭비된 바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논농사를 짓기 위해 시설을 변경할 경우 또다시 구설수에 오를까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논을 조성하고 농부를 채용하는 등 비용을 투입해놓고 추수에 실패라도 하는 연도에는 세금을 낭비했다는 비판이 나오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시민단체들은 "광화문이 갖는 상징성을 생각해볼 때 광화문 벼농사는 돈으로 따질 수 없는 무한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조선시대에도 창덕궁 내 창의정에서 임금이 직접 벼를 수확하며 농사의 소중함을 일깨웠듯이, 도심 한복판에 벼농사를 지으면 농사를 천하의 근본으로 삼았던 전통을 되살리는 것은 물론 농업의 중요성과 의미를 시민들이 다시 한번 공유하는 계기가 될 것이란 얘기다.
<정유진 기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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