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P 떠난 '웹OS의 아버지' 의미는..

입력 2012. 1. 31. 11:29 수정 2012. 1. 31.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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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저널 버즈] HP에 인수된 팜과 웹OS 개발을 이끌던 존 루빈스타인 전 팜 회장이 HP를 떠났다. 애플의 아이맥과 아이팟 개발에 깊이 관여했으며 팜의 부흥을 모바일 플랫폼으로 꾀했던 그는 결국 자신의 개발품을 매각한 뒤 떠나게 됐다.

공교롭게도 존 루빈스타인의 첫 직장은 HP였다. 대학 졸업 후 HP의 워크스테이션 개발 업무를 인연으로 컴퓨터 하드웨어 개발 분야에 매진하게 된다. 그리고 1990년 넥스트에 합류하면서 스티브 잡스와 첫 인연을 맺게 되었다. 당시 넥스트는 RISC칩 기반의 워크스테이션을 개발하려고 했었으나 나중에 하드웨어 개발을 포기하고 소프트웨어로 돌아서면서 그는 회사를 떠나게 되었다.

이후 파워하우스시스템즈라는 워크스테이션 제조사에서 넥스트가 개발한 기술을 이용해서 서버 컴퓨터를 만들었다. 1996년 모토로라가 이 회사를 인수하면서 다시 회사를 나오게 되었다. 이때 스티브 잡스가 애플로 복귀할 시점이었는데 존 루빈스타인을 애플로 불러들였다.

애플에 합류한 존 루빈스타인은 하드웨어 엔지니어링 부문 수석 부사장직을 맡았고 스티브 잡스와 함께 애플의 기술 로드맵과 제품 전략을 함께 수립했다. 이때 함께 한 이들과 함께 아이맥을 주도적으로 개발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애플이 제2의 전성기를 시작한 제품을 존 루빈스타인이 맡았던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애플이 컴퓨터 외의 새로운 하드웨어 디바이스 사업으로 영역을 넓혀줬던 아이팟 개발도 존 루빈스타인이 맡게 되면서 그의 영향력과 능력은 검증이 되었다. 현재의 애플이 있기까지 존 루빈스타인의 기여도 상당한 부분을 차지한다고들 얘기하는 이유다.

존 루빈스타인 전 팜 회장.

2006년 3월말로 애플을 퇴사한 그는 사모펀드 엘레베이션파트너즈에 합류하면서 팜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한창 팜이 흔들리고 있는 2007년 엘레베이션파트너즈의 창업자 로저 맥나미와 함께 투자와 자문을 통해 팜 이사회에 합류하게 되었고 팜을 재건하는 임무를 맡았다.

존 루빈스타인은 팜 부흥의 핵심은 뛰어난 모바일 플랫폼에 있다는 것을 주장하며 R & D팀을 꾸려 웹OS 개발에 전념하게 된다. 그때까지 팜은 자체 개발한 팜 OS와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모바일 등을 이용하여 단말기를 제조하고 있었으며 경쟁사들에게 계속해서 밀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웹OS가 존 루빈스타인의 주도하에 개발되면서 애플의 iOS를 많이 벤치마크하게 되는데 이는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애플에 몸담으며 모바일 플랫폼의 경쟁력은 사용하기 쉬운 UI와 콘텐트를 연결하는 생태계에 있다는 것을 체득했기 때문이다. 팜 합류 2년만인 2009년 1월 웹OS는 CES2009를 통해 빛을 보게 된다.

팜의 회생전략은 웹OS를 탑재한 팜 프리 스마트폰으로부터 시작됐다. 이전 팜 OS에서는 볼 수 없었던 혁신적인 모바일 플랫폼을 탑재한 제품이었다. 특히 존 루빈스타인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더욱 관심을 모았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이미 스마트폰 시장은 애플의 iOS가 승기를 잡았고 구글이 안드로이드 OS를 오픈소스화하여 협력사를 늘리고 있었다. 단순히 모바일 플랫폼뿐만 아니라 기기의 디자인과 마케팅 능력도 스마트폰의 중요한 성공요소였는데 팜은 자금과 인적자원면에서 경쟁사에 비해 약했다.

프리와 픽시 등의 주력 모델은 시장에서 반짝 인기를 끌었지만 지속되지는 않았다. 그 사이 경쟁력을 갖춘 수많은 안드로이드폰들이 다양한 제조사를 통해 공급되면서 시장은 아이폰과 안드로이드폰의 대결 구도로 굳어갔다. 이미 거함 노키아는 이들의 희생양이 된 뒤였다.

팜은 현실의 장벽을 넘지 못했다. 팜이라는 기업 자체보다는 구체적으로 웹OS와 그를 탑재한 단말기가 스마트폰 시장에 먹혀들어가지 않았다. 결국 2010년 4월 HP에 인수된다. 독자 모바일 플랫폼 확보를 희망했던 HP는 현금 12억 달러에 팜을 인수했다. 더 정확하게는 웹OS라는 자산을 인수한 것이었다.

팜이 HP에 인수된 후에도 굴곡은 계속됐다. 인수 때 CEO였던 마크 허드의 갑작스런 사임과 신임 CEO 레오 아포테커의 소프트웨어, 서비스 중심의 정책 수립으로 웹OS 앞에는 깊은 어둠이 깔렸다.

HP의 정책이 오락가락하면서 웹OS의 운명도 오락가락했다. HP의 PC 사업 철수 발언 및 번복과 내부적으로 웹OS의 활용 등에 의문을 제시하면서 또 다른 시련을 맞게 된 것이다.

웹OS를 HP 제품과 서비스 전반에 활용하겠다던 인수 당시의 목소리는 점점 줄어들었다. 그 사이 웹OS를 개발했던 핵심 인력들은 구글 등 경쟁 기업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다만 존 루빈스타인은 인수 시 계약 조건으로 인해 HP를 떠나지 않았다.

HP가 팜을 인수한 뒤 처음으로 내놓은 웹OS 태블릿PC 터치패드는 흥행에 실패했다. 웹OS의 자체 문제라기보다는 아이패드가 주도하는 태블릿PC 시장 상황에 의해 다른 경쟁 태블릿PC들과 함께 희생된 것이다. 결국 헐값에 재고처리를 하면서 웹OS에 대해 일말의 희망을 걸었던 HP 내부 분위기는 점점 더 나빠졌다.

급기야 HP는 새로운 CEO 선임과 함께 사업 전반에 대한 전략을 새롭게 정비하면서 웹OS 부문을 대폭 정리하기에 이른다. 이미 그 전에 인력 감축과 기기 개발 중단 등의 굵직한 결정들이 내려진 상태였다.

HP는 최종적으로 웹OS의 오픈소스화를 선언했고 최근 개발 프레임워크인 엔요 2.0을 공개했다. HP는 리눅스 커널도 수용하겠다고 밝혀 본격적으로 개발자에게 문호를 개방했다. 웹OS와 엔요는 아파치 2.0 라이선스를 수용하고 있다.

존 루빈스타인의 HP 퇴사는 웹OS와의 완전한 결별을 의미한다. 직간접적으로 웹OS의 전략에 대해 조언해왔었기 때문에 HP를 떠난다는 것은 결국 웹OS로 부터의 완전한 이별이다. 이제 웹OS는 타이젠, 심비안 등과 함께 오픈소스로서 경쟁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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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근 버즈리포터(keunpark@ebuzz.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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