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환이 은퇴했습니다. 안정환은 힘겨운 어린 시절, 불안한 청소년기를 거쳐 한국을 대표하는 축구 선수로 성장하며 이름을 날렸죠. 2002년 월드컵에 앞서 이탈리아 페루자로 진출했다가 월드컵 이후 무적선수 신세도 됐고요. 이후 극적으로 일본으로 가서 선수생활을 이어갔고 독일, 프랑스 등을 거쳐 중국에서 커리어를 끝냈습니다. 아쉽지만 안정환이 K리그에서 뛰는 모습을 보고 싶은 소망, 이제는 접어야합니다. 지나간 15년. 안정환 만큼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온 선수는 몇몇 안 될 겁니다. 그리고 그 순간 그와 함께 한 몇몇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안종복 전 인천 사장, 김석현 현 인천 부단장, 김홍래 현 KOVO 홍보팀장, 청평에서 펜션을 운영하고 있는 김상훈씨, 챌린저리그 천안 FC 박윤기 감독 등입니다. 최근 이들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물었죠. "안정환은 어떤 선수였고 어떤 사람이었나"라고요. 그들은 아래와 같이 답했습니다.

■안종복 부산 대우 단장, 이플레이어 사장 어려운 어린 생활을 잘 극복한 게 대견하다. 한마디로 인간 승리다. 어린 시절 망가지고 엇나가기 쉬운데 그걸 이겨냈고 그게 안정환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당시 어려움을 극복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페루자에서 좌절을 맛보고 이탈리아 선수들에게 시달리면서도 잘 버틸 수 있었을 것이다. 이탈리아에서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고 월드컵 이탈리아전에서 골을 터뜨린 걸 보면 정말 너무 대단하다. 정환이는 아무리 어려워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런 모습을 보면 어떤 때는 '애늙은이'같다는 생각이 든다. 축구가 아니면 죽는다는 생각을 갖고 어려움을 극복했고 그게 어린 선수들에게 큰 귀감이 될 것이다. 축구 선수로서는 시대를 잘못 타고난영웅이라고 할까. 페루자에 처음 갔을 때 페루자 구단주와 시장과 밥을 먹었는데 시장이 하는 말이 "얼마나 많은 한국 관광객이 올 거며 얼마나 많은 유니폼이 팔릴 것 같은가"라고 묻더라. 안정환이 만일 나카타처럼 고국 관중을 몰고 다니며 유니폼도 많이 팔렸다면 페루자에서도 좋은 기회를 훨씬 더 많이 잡았을 것이다.
■김석현 부산 대우 사무국장 불우한 가정을 딛고 성공한 축구선수다. 프로에 들어와서도 주위 사람들과 동료들을 좋아했고 어려운 사람들은 도와 주려고 애썼다. 대우 입단 6개월 만에 빅 스타가 되면서 워낙 주위에서 지켜보는 눈이 많다보니 많이 고생스러웠을 것이다. 고종수, 이동국과 함께 안정환을 띄우기 위해 방송국에도 자주 데리고 다녔는데 그걸 너무 싫어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도 안정환 만큼 뛰어난 기술을 갖고 있는 한국선수는 과거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다.게다가 당시에는 지금처럼 조기유학도 없었고 제대로 축구를 배울 수 있는 시스템도 갖춰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척박한 환경 속에서 안정환은 대단한 기술을 갖고 있었다. 노력도 많이 했지만 정말 천부적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아마 안정환이 지금 시대에 태어나 어릴 때부터 축구를 제대로 배웠다면 정말 엄청난 선수가 됐을 것이다.
■김홍래 이플레이어 직원 페루자 진출한 뒤 한달 쯤 됐을 때다. 내가 이탈리아로 함께 가서 일을 봐주고 귀국준비를 하는데 호주머니에서 편지를 발견했다.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한국에서 바쁘고 힘든데 여기까지 와서 같이 있어줘서 고맙다는 글이었던 것 같다. 나는 그냥 내 일을 했을 뿐인데 막상 편지를 받으니 마음이 찡했다. 보통 선수들은 좀처럼 자기표현을 잘 하지 못하지 않나. 그 때 정환이를 보고 참으로 생각이 깊은 친구라는 걸 알게 됐다. 속도 있고 정도 있다는 걸 알고 감동도 받았다. 정환이도 나를 많이 믿었고 나도 동생으로, 팬으로 정환이를 좋아했다. 그래서 다른 방해 요소들을 많이 제거하면서 안정환이 운동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2002년 월드컵 이후 잉글랜드 블랙번으로부터 오퍼가 있었다. 연봉 등 다른 계약조건은 모두 만족했는데 워크퍼밋이 나오지 않아 결국 가지 못했다(당시 워크퍼밋은 최근 2년 동안 A매치 75% 출전을 요구했는데 안정환은 30% 정도밖에 채우지 못했다). 당시 정몽준 회장, 히딩크 감독이 부상 때문에 안정환을 뽑지 않았다면서 사인까지 한 서류를 영국에 보냈는데 결국 인정받지 못했다. 워크퍼밋만 해결됐다면 정환이는 블랙전에 무조건 갔다.블랙번 관계자도 이미 비행기표까지 마련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끝으로 선수생활을 한국에서 마무리하지 못한 게 개인적으로 너무 아쉽다. 지난해 전화통화를 한번 했는데 은퇴 후에도 축구계를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해줬다. 축구계를 떠난 안정환, 상상할 수도 없다. 다양한 외국리그를 경험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한국축구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이 있을 거라 기대한다.
■김상훈씨(김씨는 2002년 월드컵 전후 5,6년 동안 친형처럼 안정환 뒷일을 봐줬다) 이탈리아전에서 골을 넣은 뒤 "형, 꿈인지 생시인지 모르겠어요"라고 통화한 기억이 난다. 그 골로 인해 안정환은 모든 게 잘 될 거라고 기대했다.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고 할까.그러나 결과는 반대였다. 페루자에서 나와야했고 다른 유럽팀으로 갈 수도 없게 됐다. 당시 안정환은 은퇴할 나이도 아닌데 그만둬야하는 거 아니냐며 불안해했다. 그러나 무적선수 위기 속에서도 안정환은 파주까지 오고가면서 훈련을 쉬지 않았고 결국 우여곡절 끝에 일본으로 진출했다. 당시 일본행을 주선한 PM 야마모토 회장은 안정환에게는 은인이다. 안정환은 이후 독일, 프랑스에서 뛰었지만 본인이 입버릇처럼 말해온 "세계 최고리그에서 뛰고 싶다"는 꿈은 이루지 못했다. 그게 안정환으로서는 가장 아쉬운 부분일 게다.안정환은 정말 자기 관리를 철저히 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훈련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훈련 시간 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켰고 훈련을 할 때도 스스로 만족감을 느낄 때까지 했다. 방에서는 맨발로 공을 찼다.그게 감각을 익히는데 좋다는 이유에서였다. 축구 선수 중에는 후안베론을 가장 좋아했다. 패싱력과 볼 컨트롤이 워낙 좋았기 때문인 것 같다. 페루자에서 뛰던 시절에는 에드가 다비즈와 한번 부딪친 뒤 "무슨 쇳덩이랑 충돌하는 느낌이었다. 온몸이 모두 아팠다"고 말한 게 기억이 난다. 가수 이승철과 친했다. 서로 집을 오고 가면서 지냈고 정환이도 '잠도 오지 않는 밤에', '네버 엔딩 스토리' 등 이승철 노래를 즐겨 불렀다. ■박윤기 서울공고 감독 남서울 중학교에서 공을 너무 잘 찼다. 그래서 주위 교회의 도움을 받아 안정환을 비롯해 다른 선수들 대부분을 서울공고로 데려왔다. 정환이는 순발력과 슈팅은 참 좋았다. 그러나 아무래도 세기는 부족했고 몸도 작았다. 나도 키(1m70)가 작지 않나. 그래도 세밀한 슈팅으로 K리그 득점왕까지 했다. 그리고 그걸 안정환에게 가르쳐줬다. 안정환은 중학교에서는 미드필더였는데 센터포워드로 올린 게 나였다. 공을 예쁘게만 차려는 선수에서 상대 선수와 몸싸움에서도 이겨내야 한다는 걸 가르쳐줬다. 내가 워낙 무섭게 가르쳤고 정환이의 이해습득도 무척 빨랐다. 이탈리아전에서도 원톱으로 뛰면서 골을 넣는 걸 보고는 잘 가르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안정환은 고려대나 연세대를 가기를 원했다. 그러나 내가 안정환을 아주대로 보냈다. 아주대에 가면 축구에 집중하기 더 좋고 졸업 후 부산 대우로 임의 지명을 받아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1억원이라는 돈을 받을 수 있었고 그게 안정환에게 큰 보탬이 될 거라고 판단했다.
■김세훈 굿데이 기자(2001년 스포츠조선에서 굿데이로 갔고 2004년 경향신문으로 왔다) 내가 안정환과 처음으로 접촉한 것은 부산 시절 페루자 입단이 확정된 직후였다. 그 때 안정환의 소감을 듣기 위해 오전 9시30분쯤 전화를 했고 그 때 안정환은 "나가서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 뿐이다. 지금 훈련을 해야 하기 때문에 통화 오래 못한다. 바로 나가야한다"고 짧게 했다. 그 뒤 그가 2002년 월드컵 이후 일본에 가 있을 때 몇 차례 통화를 했는데 유럽으로 간 뒤에는 관계가 소원해졌다. 이혜원씨가 첫 딸을 낳았을 때 병원으로 꽃바구니를 보내고 찾아갔는데 안정환이 기억할지 모르겠다. 나는 2002년 월드컵 직후 안정환의 블랙번 진출을 1면 기사로 가장 먼저 보도했다. 안정환의 블랙번 진출을 추진하는 에이전트로부터 블랙번에서 온 계약서 초본까지 받아봤고 그 에이전트와 통화한 대로 안정환이 움직였고 그대로 일이 진행됐기 때문에 이후에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10년전 일이라 기억이 정확하게 나지 않는데 그 때 팩스로 받아본 계약서에 따르면 당시 이적료가 200만 달러였던 것 같다. 그 때 워크퍼밋 문제만 해결돼 블랙번으로 갔다면 나도 한국 축구사에 길이 남을 특종을 한 기자가 됐을 것이다.개인적으로 안정환을 볼 때는 마음의 그릇이 지금보다 점점 더 큰 사람이 돼서 그동안 챙기지 못한 사람들을 하나둘씩 끌어안으며 자기 사람들을 늘려가기를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