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목소리로]작아진 '선물'
삼장사는 잘 되쇼? 삼 포장할 때 쓰는 이끼 있지. 그 이끼에 이끼가 낄 정도로 잘 안돼. 이끼에 끼는 이끼나 길러 이끼 장사나 해야 할까봐. 지인과 통화를 하며 이런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로 손님이 별로 없었다. 설 대목 장사를 하려고 삼을 다량 구입해놓은, 내가 장사하고 있는 상가의 상인들은 대부분 울상이었다. 작년처럼 구제역이 발생한 것도 아니고 눈이 많이 와 교통이 두절된 것도 아닌데 도통 선물을 포장하러 오는 사람들이 없었다.
상인들은 혀를 차며 불경기를 너나없이 들먹거렸다. 그러다가 택배 신청 마감일을 2~3일 남겨 놓고서야 손님들이 몰려왔다. 손님들은 선물할 사람들의 명단이 적힌 종이를 들고 와, 경기가 좋지 않아 선물할 곳을 줄였고 선물 액수도 줄였다고 했다. 어떤 손님은 상가까지 와 선물 대상을 한두 사람 줄이기도 했다. 힘들지만 억지춘향으로 선물을 장만하는 것 같은, 손님을 맞으면서는 상품을 포장하면서도 마음이 무거웠다.

이 과일 상자 보이죠. 몇 사람한테 과일상자나 선물하고 말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이 저렴한 인삼차라도 해야 할 것 같아, 선물을 돌리러 가던 중간에 이렇게 급히 들렀지요. 불경기라고 선물을 안 할 수는 없는 일이고, 오히려 경기가 안 좋을수록 거래처를 잘 관리해야 한다는 생각은 들고 해서요. 그놈의 747이고 나발이고 정부를 믿을 수도 없고 우리 영세사업자들만 죽어나니, 나 원 참. 인삼차 포장 봉투를 들고 배웅을 나선 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다가 그 정황에 고맙다는 말을 해도 될까 망설여지기도 했다.
1년 반 동안 난생처음 장사를 해보면서 많은 것을 공부했다. 처음에는 삼장사가 재미있기만 했다. 크기나 모양새에 따라 다르게 부르는 삼은 이름부터 흥미로웠다. 삼은 큰 것부터 별 둘, 별 하나, 왕왕대, 왕대, 특대, 대, 중, 소, 응애라 부르고 생김새와 사용용도에 따라 대란, 중란, 소란, 콩란, 믹서, 삼계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또 재배방법에 따라 이름이 나뉘기도 한다. 씨앗을 삼밭에 직접 파종해 키우는 삼을 직파삼이라 하고 1년 동안 모종을 기른 다음에 다른 밭으로 옮겨 심는 삼을 이식삼 또는 심은삼이라고 칭한다. 직파삼은 수분이 많아 생으로 갈아 먹거나 꿀에 졸여 가공하는 정과용으로 많이 쓰이고 조직이 단단한 이식삼은 홍삼을 만드는 데 주로 쓰인다.
삼장수들은 삼을 딱 보면 그 삼의 이름이 무엇인지 금방 안다. 수삼을 재는 단위를 채(차)라 하는데 한 채는 750g을 말한다. 한 채에 몇 개가 달려있느냐에 따라 삼의 이름이 결정되기 때문에 상인들은 경험상으로 삼의 크기만 보고도 삼의 이름을 알아볼 수 있다. 옛날부터 삼은 금처럼 소중해 금과 단위를 같이했다고 전해진다. 원래 반지란 말은 없었고 가락지란 말만 있었다고 한다. 가락지는 금 두 돈, 7.5g으로 만들었고 이게 금의 기본단위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가락지를 반으로 쪼개 만들면서 반지란 말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하여간 삼은 가락지의 100배인 750g을 기본단위로 하고 이를 채라 부른다.
손님과 나 사이에, 사람 인(人)자 인삼 수백개를 눕혀놓고 보낸 1년 반. 장사를 시작하면서부터는 일기예보도, 가게로 기어드는 돈 그리마나 거미도 예사스럽지 않았다. 하물며 시장경기 흐름의 좋고 나쁨에야 더 말할 나위도 없었다. 지난해 여름 긴 장마에 삼들이 상해 삼값이 치솟아 애를 먹기도 했다. 또 이른 추석에 맞춰 캔 물기 덜 마른 삼이 썩어 낭패를 보기도 했다.
인삼 썩는 냄새는 사람 송장 썩는 내와 같다는 나이 든 삼장수의 말도 전혀 문학적으로 들려오지 않았다. 삼장수뿐만 아니라 모든 서민도 점점 살기 힘들어지는 세월이 야속하기만 했다. 몇 해 전, 막걸리집은 불경기 영향을 안 받느냐고 묻자, 화천은 군민이 4만5000명인데 군인이 반을 넘는다며, 뭐, 군인들 월급이 불경기 타는 것 봤냐고 하던, 강원도 화천의 막걸리집 노파가 부럽기까지 했다.
설 대목 장사가 거지반 다 끝난 오늘 장부를 정리해보니, 이상하게도 작년 설보다 매출이 늘었다. 시간이 지나 단골손님이 늘어난 영향도 있겠지만, 불경기라 사업하기 힘들어진 사람들이 많아졌고, 그들이 사업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지갑을 털어 선물을 산 것 같아 미안한 맘이 들었다. 선물로 관계를 유지하려는 것도 문제가 없는 건 아니나 그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해할 수 없는 일도 아니다.
내일모레면 설날이다. 쌀이 없어 가래떡을 뽑지 못하고 싸라기 반말로 떡을 뽑아 떡국을 끓여먹던, 그 풀기 없는 떡국을 먹던, 그러나 행복했던 유년의 설날이 떠오른다.
새해는 모든 사람이 잘되어, 복 많이 받고 복 많이 나누어, 선물도 이권과 관계없이 감사의 마음으로 나누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 함민복 | 시인 >
경향신문 '오늘의 핫뉴스'
모바일 경향 [New 아이폰 App 다운받기!]| 공식 SNS 계정 [경향 트위터][미투데이][페이스북][세상과 경향의 소통 Khross]- ⓒ 경향신문 & 경향닷컴(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경향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3억원 돈다발’ 든 가방이 지하철에···역 직원 신고로 2시간 반 만에 주인 찾아
- 이정후의 미친 슬라이딩캐치, 기적 같은 9회···한국 야구, 17년 만에 WBC 8강 진출
- 국힘 “윤석열 복귀 반대” 의원 일동 결의문···오세훈·김태흠, 공천 신청할 듯
- 최가온 “두쫀쿠는 이제 그만”…왼손 3곳 골절 치료·재활 집중
- 김민석 “김어준 처벌 원치 않아···사필귀정 믿음으로 국정 수행 집중할 것”
- [단독] 박홍근 기획처 장관 후보, 연말정산 부당공제 받아 지명 직전 가산세 납부
- “월드컵 우승 때도 안 갔는데 왜”…아르헨 ‘메시 백악관 방문’ 싸고 시끌
- ‘강북 모텔 연쇄살인’ 피의자 신상공개···20세 김소영
- 박찬운 검찰개혁자문위원장 사퇴···“보완수사권 폐지하면 감내 어려운 혼란”
- 한국말로는 다 성당인데···영어로는 카테드랄·바실리카·처치? 대체 무슨 뜻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