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린 女帝 정경화 & 조성진 피아노계 新星
드뷔시 소나타 화음은…혀 밑에 넣은 레몬즙처럼 신맛연주를 색채와 입맛으로 표현해보렴
[2012 신년기획 / 세대간 멘토링③]46세 차이. 아득한 세월의 간격 사이에서 '음악'이라는 교집합을 갖고 있는 두 사람이 만났다. 살을 베듯 날카롭고 뜨거운 바이올린 선율로 세상을 호령했던 '바이올린의 여제' 정경화 줄리아드음악원 교수(64)와 깊고 선명한 선율로 지난해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 3위에 오른 차세대 피아니스트 조성진 군(18ㆍ서울예고 3학년). 밖에는 삭풍이 몰아쳤지만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서울 구기동 정 교수 자택 거실은 따뜻했다. 붉은 스웨터를 입은 정 교수는 "서울이 너무 춥다"며 "숨을 쉬면 콧속이 금방 얼어붙고 손이 쩍쩍 갈라지던 어린 시절 겨울이 생각난다"고 잠시 옛 생각에 잠겼다. 회색 니트를 입은 조군은 알 길이 없는 1950년대 한국 풍경이다.
그들 사이에 강아지 두 마리가 뛰어들었다. 작곡가 브람스와 그가 평생 짝사랑했던 피아니스트 클라라 이름을 붙인 정 교수 애견들이다. 클라라는 작곡가 슈만의 아내였다. '브람스'를 쓰다듬던 정 교수가 "바이올린도 배웠다지"라며 반갑게 물었다. '클라라'를 안고 있던 조군은 "네, 여덟 살 때 동네 콩쿠르에 나갔는데 피아노는 떨어지고 바이올린만 4등 장려상을 받았어요"라며 웃었다. 그는 6세에 피아노를 시작했고 1년 후 바이올린을 켰다.
정 교수는 "요새도 하니? 한번 시켜봐야겠다"며 호기심을 보였다. 조군은 "취미로 연주하는 수준이에요. 초등학교 6학년 때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G장조까지 배웠을 뿐이에요"라며 얼굴을 붉혔다.
이제 막 음악 세계로 나온 그에게 정 교수는 '신화' 같은 존재다. "책에서 보던 대가를 만나 영광"이라고 말하는 10대 연주자가 정 교수에게 음악의 길을 물었다. 조심스럽고 신중한 질문과 화끈하고 정열적인 대답이 오갔다.
▶조성진 군=손을 다칠까봐 농구와 축구를 못해요. 선생님은 여가를 어떻게 보내세요? ▶정경화 교수=어렸을 때 의상 만드는 것을 좋아했어. 난 여동생을 원했는데 남동생만 내리 3명 태어났어. 심통이 나서 남동생이 세 살 될 때까지 여자옷을 만들어 입혔어. 미국에서 연주할 때도 내 드레스를 직접 만들었어. 그림을 좋아해서 박물관도 많이 찾아다녔지. 막상 그림을 그려보니 재주가 없었어. 책 읽는 것도 좋아하는데 눈 때문에 많이 못 읽어. 요즘에는 강아지들이 있으니까 많이 걸으려고 해. 연주자에게는 수영과 탁구도 좋단다.
▶조군=수영은 하고 있어요. 옛날 영화를 좋아해 '폭풍의 언덕'과 '셸부르의 우산' 등을 봤어요.
▶정 교수=바로크부터 고전주의, 낭만주의 음악을 해야 되니까 고전 작품을 많이 보면 좋아. 요즘 미국 학교에는 셰익스피어도 모르는 아이들이 많아. 문학과 그림, 음악은 다 연결돼 있어. 스승인 조지프 시게티는 연주를 색채와 입맛으로 표현하시곤 했어. 드뷔시의 소나타 화음을 '혀 밑에 넣은 레몬즙처럼 신맛'이라고 했어. 돌체(부드럽게 연주하라는 음악 용어)는 '달콤한 맛'으로 묘사했고. 머릿속에 그렇게 저장해 놓으면 금방 연주로 나와. 한도 끝도 없이 연구해야 가능하지.
▶정 교수=근데 어떻게 색채감을 연습하지? ▶조군=악보를 다른 방법으로 계속 쳐보는데, 찾는 게 쉽지 않아요.
▶정 교수=음반을 들으면서 와닿는 소리를 흉내내려고 하지? 제일 좋아하는 피아니스트 소리는 누구지? ▶조군=라두 루푸(루마니아 거장 피아니스트)예요. 사운드가 신선해요. 어떤 사람은 소리를 만들려고 하지만 루푸는 자연스럽게 긴장 없이 쳐요. 소리가 열려 있고요.
▶정 교수=어떻게 특별하다는 거지? 음악은 오감과 영감으로 표현해야 작곡가와 통할 수 있어. 루푸는 하모니를 완전히 소화시켜 원하는 목소리로 전부 표현할 수 있어. 베이스, 메조소프라노, 소프라노로 다 표현하는 사람은 처음 봤어. 그는 이 세상을 떠나 완전히 다른 세계로 끌어들여. 음악에 가사와 감정, 표현을 붙여 느껴야 해. 그리고 마음에 와 닿은 것을 표현해. 처음부터 어느 길로 가는지 알아야 곡을 잘 마무리해서 도착할 수 있어.
▶정 교수=첫 번째 독주회는 언제였지? ▶조군=11세에 금호아트홀에서요.
▶정 교수=연주할 때 누구를 목표로 하니?▶조군=작곡가도 생각하지만 청중에게 작곡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 초점을 맞춰요.
▶정 교수=너 자신은? ▶조군=저 자신을 위해 연주하는 것도 있지만 모든 것을 위합니다. 나 자신만을 위해 연주하지는 않아요.
▶정 교수=그 대답을 하기에는 너무 어려. 있는 대로 자신을 채워야 해. 좋은 욕심은 한도 끝도 없어야 해. 무대에 나가면 야망을 가져야 해. 이 세상을 다 통째로 삼키고 싶어야지. 나 자신이 가장 중요해. 우리 어머니는 '남을 밟고 가서는 안 되지만 이 세상에서 네가 제일'이라고 했어.
▶조군=무대에서 떨리지는 않아요.
▶정 교수=내가 열여섯 살에 오케스트라와 협연할 때도 내 자신을 고집했어. 지휘자 선생님도 내 개성을 살려줬지. 성진이도 말도 못하게 고집이 셀 거야. 꺾을 수 없는 고집이 있어야 해. 하지만 겸손과 고집이 같이 가지 않으면 큰일 나. 저자세도 안 되고 판단을 제대로 해야지.
▶조군=최근 들어 유럽 유학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정 교수=외국에 나가는 것도 좋은데 선생을 정말 잘 만나야 해. 암만 줏대가 강해도 (선생을 잘못 만나면)수습이 힘들어. 자기 마음대로 안 되지. 나중에야 결과를 알 수 있는 선택이야. 하지만 미칠 정도로 힘들어도 음악이란 너무나 좋은 친구가 있잖아. 악기는 원하는 말을 다 들어줄 수 있지. 너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고, 나도 정말 행복하고. 우리 아버지는 항상 "너는 일곱 살 때 갈 길을 찾았는데 나는 평생 찾지 못했다"고 말씀하셨어. 성진이도 지금 신날 때야.
▶정 교수=지금까지 제일 잘 소화하는 곡은 무엇이니? ▶조군=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을 제일 많이 쳤어요. 지난해 3월 정명훈 선생님과 5일 연속 연주하면서 정말 도움이 많이 됐어요.
▶정 교수=지독하게 깊이 파고들어 완벽하게 내것으로 만드는 게 중요해. 그러면서 성장하지. 한 곡을 또 치는 게 좋니? ▶조군=계속 연주하면 제 것이 되는 기분이에요.
▶정 교수=나도 반복해서 연주하는 것을 정말 좋아해. 원하는 소리가 나올 때까지 이를 악물고 연구했어. 고집도 셌지. 너무 난리 법석을 떨어서 지휘자들이 나를 너무 싫어했어. 같은 대목을 계속 연습하자고 하니까. 동생 명훈이도 "지긋지긋하니 저리 가라"고 했어. 당돌했지만 대가들은 나를 귀엽게 봐줬어. 재능이 있고 원하는 게 너무 강해서였지. 요즘 성진이가 미치는 작곡가는 누구지? ▶조군=쇼팽과 리스트요. 낭만주의가 좋아요.
▶정 교수=그럴 때지. 쇼팽은 매직이야. 하지만 리스트 음반은 내가 찾아서 듣지 않아. 베토벤은 골치고.
두 사람은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를 함께 연주하며 서로를 좀 더 알아갔다. 그리고 언젠가 함께 무대에 설 날도 가늠해봤다.
■세계 주름잡은 '동양의 마녀' 정경화
젊은 시절 하루 11시간 이상 연습했던 완벽주의자. 1967년 레번트릿 콩쿠르에서 우승한 후 세계 무대를 장악해나갔다. 전성기 별명은 '동양의 마녀'. 기절할 정도로 음악을 사랑했고, 원하는 소리를 위해 스스로를 혹독하게 채찍질했다. 영국 선데이타임스는 그를 '최근 20년간 가장 위대한 기악 연주자'로 꼽았다.
바이올린의 여제는 2005년 손가락 부상으로 연주를 중단했다. 2007년부터 모교인 줄리아드음악원 교수로 교편을 잡아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맑고 단아한 선율 청중 홀려 조성진
가수 아이유와 태연을 좋아하는 평범한 고등학생. 하지만 피아노 앞에 앉으면 달라진다. 곡을 장악하는 힘이 대가 못지않다. 맑고 단단한 선율로 청중을 홀린다. 2009년 성인들을 제치고 하마마쓰 국제 콩쿠르 1위를 차지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3위에 올랐다. 대회가 끝난 후 심사위원장이었던 거장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직접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러시아 마린스키극장 독주회를 부탁한다고. 지난 10월 이 무대에 올라 기립박수를 받았다.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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