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인터뷰>이순재가 경험한 '정치'.. 친구 이낙훈 따라 政界입문했다가..'연속극이 더 국민에 기쁨'생각 그만둬

이순재씨는 정치에 발을 들여놓게 된 건 "친구인 고(故) 이낙훈군 때문이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11대 국회의원 선거였는데 이낙훈군이 우리 탤런트협회 회장일 때 비례대표를 받았어요. 전두환 대통령 시절이었는데, 그 당시만 해도 '탤런트 나부랭이'라 불리던 배우들을 정치권에 영입하는 일은 있을 수가 없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이낙훈군한테 비례대표 제의가 온 것을 보고 '아, 이건 획기적인 사건이다'고 생각했지요. 이낙훈군이 그런 충분한 능력이 있었기에 직능을 대표하는 입장에서 도울 게 뭐 있냐고 했더니 '야, 같이 입당을 하자'고 해 민정당에 입당했지요."
그는 "소선거구제로 바뀐 13대 국회의원 선거 때, 제가 정치 안 한다고 하니까 서울에서 가장 열세 지역 중랑갑 공천을 받았다"며 "사실 13대, 14대 때 돈 한 푼도 안 썼습니다. 13대 때 이상수 의원한테 750표, 근소한 차로 졌지만 14대 때는 3800표 차로 압승을 거뒀다"고 했다.
그는 국회의원은 '직업'이 아니라고 했다. "15대 국회의원 선거 때 제 나이가 60세였는데 이한동, 이회창 등 동창들이 대통령 나가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거기서 국회의원 한 번 더해서 뭘 하겠느냐, 정치를 하려면 40대 때 했어야 했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가만히 보니까 연속극 하나 신나게 해서 국민들 즐겁게 해드리는 게 훨씬 효과적이고 기여하는 바가 크다는 생각이 들어 공천을 포기했습니다."
그는 14대 때 국회 문화공보위원으로 활동했다. 1993년 부대변인을 거쳐 1995년 교육연수원 부위원장을 맡았다. 정원식 서울시장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문화본부장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4년 국회의원을 하는 동안 신의가 없는 정치에 실망해 불출마를 선언했다. 2006년 경기도청 재·보궐선거에 나선 정치적 경쟁자 이상수 의원의 후원회장을 맡기도 했다. 그의 소신인 신의의 정치, 화해의 정치를 몸으로 보여준 사례로 회자된다.
그는 정치 경험을 통해 '올바른 리더'의 조건으로 대중화·포용·협력 3가지를 제시했다. "첫째 리더가 될수록 대중을 이끌 수 있는 힘과 정성이 있어야 되며, 혼자 잘나서는 절대 안 됩니다. 둘째 나를 반대하는 사람들을 내 편으로 만들 수 있는 노력과 의지가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높은 지위에 올라가고 독특하고 특별한 인간이 될수록 내 밑에 있는 계층들을 포용할 수 있는 이해력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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