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서 길고양이 먹이 주면 녀석들은 내게 '글감' 줘요

2011. 11. 18.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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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최재봉 기자의 그 작가, 그 공간 ④ 황인숙의 해방촌 골목

"야옹아, 이거 먹어. 괜찮아, 이리 와!"

황인숙 시인이 낮은 목소리로 길고양이들을 부른다. 오후 두 시의 해방촌 골목. 연립주택 담 옆으로 주차된 차량 아래 먹이통에 사료와 물을 놓아둔 시인이 몸을 일으키며 주위를 둘러본다. 주차된 차 옆 낮은 시멘트 담 안쪽에 작고 예쁜 고양이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다. 태어난 지 두어 달이나 되었을까. 어린 짐승 특유의 무구한 표정에 경계의 기미가 서려 있다. 기자가 시인과 함께 다가가자 몸을 움찔한다. 여차하면 도망칠 기세다.

한번 먹이 준 뒤 마음에 남아5년 넘게 30여마리 보살펴와옥탑방 살며 사료값 1500만원

"사람으로 치면 서너 살짜리나 될까요? 어린아이가 혼자 살아가는 게 대견하지요. 이 골목에 또래가 네다섯 마리쯤 되는데 그중에서 제일 똘똘한 녀석이야. 우리가 가고 나면 먹을 거예요. 물러납시다."

시인의 말을 좇아 뒷걸음질치며 물러나는 일행을 시종 주시하고 있던 녀석이 어느 정도 거리가 확보되었다 싶자 비로소 먹이통에 다가든다. 조심스레 먹이를 먹으면서도 수시로 차량 바깥을 관찰하며 긴장을 늦추지 않는 모습이다. 오토바이나 행인이 지날 때마다 그 작은 몸의 근육이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는 게 멀리서도 보인다.

또다른 골목으로 옮긴다. "여긴 사료는 마다하고 간식 캔만 밝히는 '캔 귀신'의 구역이에요. 어떤 때는 캔을 달라고 울면서 내내 쫓아오기도 한다니까요. 할 수 없이 입막음용으로 비상 캔 하나씩은 꼭 가지고 다녀요." 시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어디선가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난다. 기다렸다는 투다. 바로 '캔 귀신'이었다. 노랑색 털을 한 이 녀석은 다른 길고양이들에 비한다면 경계심이 아예 없어 보였다. 거리낌 없이 시인의 발치를 쫓으며 간식을 달라고 울어댄다. 할 수 없다는 듯 시인이 천 가방에서 간식 캔을 꺼낸다. 다랑어와 닭가슴살 등을 섞은 통조림이다. 역시 주차된 차량 아래 먹이통에 놓아 준 간식을 먹는 동안 시인이 다가가서 몸을 쓰다듬어도 도망치거나 경계하는 눈치를 보이지 않는다. 시인이 자리를 옮겨 그 옆 가로등 아래에 다른 고양이를 위한 먹이를 놓고 있자 어느새 간식을 다 먹은 '캔 귀신'이 거기까지 따라와 더 달라고 보챈다. 그 모습을 가로등 옆 담 위에서 검은 털 고양이가 내려다보고 있다.

황인숙 시인이 이렇듯 길고양이들의 밥을 챙기기는 5년 전부터였다.

"그냥 동네에서 길고양이 한 마리랑 마주쳐서 한번 먹이를 주고 나니까 마음에 걸려서 계속 주고, 그러자니 다른 아이들도 마음에 걸려서 주고 하던 게 이렇게 됐네요."

그는 남산 아래 해방촌 오거리에서부터 남영동 건너편에 이르는 후암동의 골목골목을 누비며 하루 두 차례씩 길고양이들의 먹이를 챙긴다. 그가 놓아 두는 먹이를 먹는 고양이가 얼추 서른 마리 정도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5년을 계속하다 보니 어느덧 이 일은 그에게 가장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그 사이 고양이 사료 값으로 든 돈이 1500만원 정도. 옥탑방에 혼자 살면서 그 흔한 문학강연도 하지 않고 오로지 원고료 수입만으로 생활하는 가난한 시인에게는 제법 부담 되는 액수다.

"돈도 돈이지만, 어디 마음 놓고 여행조차 갈 수 없다는 게 제일 힘들어요. 마지막으로 긴 여행을 했던 게 2년 전이었네요. 그땐 그래도 이 일을 대신 해 줄 착한 이웃이 있었지요. 지금은 주변에 아무도 없어서 혼자서 챙겨야 해요."

누가 시키는 일도 아니고, 잘했다고 상을 주는 일도 아니다. 상은커녕 싫어하는 이웃들의 눈치를 보아 가며 죄지은 듯 해야 하는 일이다. 길고양이가 음식 쓰레기를 뒤지고 여기저기 똥을 누는가 하면 흉측한 소리를 낸다며 질색하는 이들은 그가 놓아 둔 먹이통을 없애거나 심지어는 시인이 먹이 주러 오기를 기다렸다가 한바탕 퍼부어대기도 한다.

"고양이들한테 적대적인 이웃을 마주치지 않는 게 제일 큰 소원이에요. 때론 저도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도 하지만, 돌아서면 후회하지요. 지금은, 그이들이 돈을 많이 벌어서 다른 부자 동네로 이사 갔으면 좋겠다 싶어요. 다음 소원은 좋은 이웃을 만나서, 잠시라도 이 일을 맡길 수 있었으면 하는 거구요."

고양이에 대한 시인의 사랑은 이미 문단 안팎에 호가 나 있다. 그의 1984년 신춘문예 등단작부터가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다. "이다음에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윤기 잘잘 흐르는 까망 얼룩 고양이로 태어나리라/ 사뿐사뿐 뛸 때면 커다란 까치 같고/ 공처럼 둥글릴 줄도 아는/ 작은 고양이로 태어나리라"로 시작하는 작품이다.

2년 넘게 여행도 못간 대신'캔귀신' '란아' '보꼬' 등 모습시 40편·산문·소설에 오롯이

"그때만 해도 고양이에 대한 막연한 이미지만 있을 때였죠. 이쁘고 도도하고 자유로우며 앙큼한. 고양이는 우선 생김새가 매력적이잖아요? 강아지랑 비교해서 사람을 안 따른다고들 하지만, 개묘차(個猫差)가 있어요. 경계심이 강하고 독립적인 고양이는 그것대로 매력 있지만, 고양이가 애기처럼 순정적인 눈빛으로 쳐다볼 때면 얼마나 예쁘다구요."

화제가 고양이인 한 시인은 세상 누구보다 열성적인 다변가가 된다. 그는 지금 길고양이 세 마리를 입양해서 옥탑방에서 키우고 있다. 고양이를 싫어하는 이웃이 놓은 덫에 걸려서 양주의 '동물구조협회'로 보내져 지옥 같은 철창에 갇혀 있던 '란아'를 구출해 와서는 반려로 삼은 것을 시작으로 그 뒤 '보꼬'와 '명랑이'가 합류했다. 더 키우면 좋겠지만, 여러모로 능력에 부치는 노릇이어서 먹이를 놓아 주는 정도에서 만족하고 있다.

고양이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고스란히 글쓰기로 이어졌다. 등단작을 비롯해 <밤과 고양이> <시와 고양이와 나> <란아, 내 고양이였던> 등 그동안 고양이를 소재로 쓴 시만도 40여 편이 된다. 그 시들은 고양이에 대한 시인의 변함없는 애정과 고양이의 다함없는 매력을 다채롭게 노래한다.

"고양이가 운다/ 자기 울음에 스스로 반한 듯/ 부드럽게/ 고양이가 길게 울어서/ 고양이처럼 밤은 부드럽고 까실까실한 혀로/ 고양이를 핥고/ 그래서 고양이가 또 운다"(<밤과 고양이> 전문)

지난해에는 고양이들과 웃고 울며 부대끼는 일상을 산문집 <해방촌 고양이>에 담아 펴냈고, 얼마 전에는 첫 소설 <도둑괭이 공주>도 출간했다. 스무 살 처녀 화열을 주인공 삼은 소설에는 해방촌 골목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챙겨 주는 시인 자신의 이야기가 오롯이 담겼다. 가령 소설 첫 장면에서 주인공의 애를 태웠던 길고양이 '베티'의 손주인 '미향이'는 다행히 한강대로 92길 세탁소에 입양되었다. 잠은 세탁소에서 자고 밥은 건너편 수선집 아주머니한테서 얻어먹는 이 녀석은 오랜만에 찾아온 시인을 보자 반가워하면서 시인의 다리에 온몸을 문지른다. 길고양이의 자유 대신 집고양이의 안락을 얻은 미향이의 표정은 편안하고 나른해 보였다.

"고양이 얘기라면 지긋지긋해서 이제 더는 안 쓰려 하는데, 매일 이렇게 살다 보니 나오느니 고양이 얘기네요."

다음에 낼 책들 역시 고양이를 소재로 한 동화와 에세이다. 소설도 더 쓰려 하는데, 아직 구체적인 구상이 있는 건 아니란다.

"'길고양이들과 인연을 맺은 이래 불행감을 맛보지 않은 날이 드물다'고 <도둑괭이 공주> 후기에 썼지만, 생각해 보니 고양이들이 밥값은 하는 거네요! 이렇게 많은 글감을 주잖아요? 하하!"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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