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하나 낳아주면 먹고 살 재산 줄게"

오현주 2011. 10. 25.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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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그 여자의 소설'
엄인희 희곡 '작은 할머니'
'사실주의 대표' 강영걸 연출
한국여인의 고단한 삶 다뤄

▲ 연극 `그 여자의 소설`(사진=좋은공연제작소)

[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여성주의 희곡작가 엄인희(1955~2001)가 쓴 희곡 중에 `작은 할머니`가 있다. 한국의 오래된 관습과 어긋난 사회제도를 `작은 할머니`란 한 단어로써 농축시킨 작품이다. 희곡 속 작은 할머니는 색다른 정체성이다. 이 정체성은 짧게는 한 여인의 척박한 인생과 같은 말이 되고, 보다 장구하게는 근·현대사에 휘둘리며 왜곡돼버린 가족사의 또다른 표현이 된다.

엄 작가의 `작은 할머니`를 무대언어로 옮겨낸 연극 `그 여자의 소설`이 앙코르 공연을 올린다. 일제강점기부터 6·25전쟁, 현대에 이르는 시간을 관통하는 배경으로 우리 시대 어머니, 그 어머니의 어머니 삶을 진한 회한과 함께 풀어낸 극이다.

어느 퇴락한 시골마을. 연해주로 떠난 독립군 남편은 소식이 없다. 열여섯 꽃다운 어린 아내는 딸과 가난한 시댁살림을 꾸려나가기엔 힘이 부친다. 그러던 중 이웃마을 김 부잣집 전갈을 받는다. `아들 하나 낳아주면 먹고 살 재산을 주겠다.` 시댁과 어린 딸을 위해 김 부잣집 `작은댁`을 택한 여인은 3년을 인내하며 아들을 낳아준다. 그러나 다시 돌아가기만을 기다렸던 여인은 김씨의 꼬임과 폭력에 붙잡혀 있는 신세가 되고, 그러던 어느 날 귀국선을 타고 돌아온 남편과 마주치게 된다.

한 여인의 피맺힌 정한을 풀어내고 있는 작품은 거대한 외부의 힘에 의해 휘둘리는 나약한 인간에 애정어린 시선을 던진다. 하지만 한 여자의 일대기로만 그치지 않은 데 작품의 숨은 가치가 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고단한 역사와 함께 견디어야 하는 사람 사는 이야기로써 세상을 봤다.

1995년 초연했다. 서울연극제 공연 당시 전회 만원을 기록하며 화제가 됐다. 엄 작가 특유의 섬세한 휴머니즘이 살아있는 원작에 우리 화술의 대가로 평가받는 강영걸 연출이 연극적 미학을 보태 시너지효과를 냈다. 이번 공연에도 강 연출이 나서, 세월에도 녹슬지 않은 사실주의 대표 연출가의 무대예술을 선뵐 예정이다.

배우 성병숙, 공호석, 최승일, 김미숙 등이 출연한다. 서울 대학로 원더스페이스 네모극장에서 다음달 2일부터 27일까지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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