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 악역 연기 정말 어설펐나

- 악당을 미화하지 않은 '도가니'의 탁월한 선택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도가니]는 관객들의 호평을 받고 있지만, 관객들과 평론가들 모두에게 단점이라고 지적되는 부분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악역을 맡은 배우들의 연기인데, 사람들은 대부분 이들의 연기가 지나치게 노골적이고 단순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영화를 봤을 때 처음 받은 인상도 바로 그런 것이었다. 그들은 마치 영화 악역을 위해 태어난 종자들 같았다. 영화 속에서 그들은 전혀 사실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혐오감과 분노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도구였다.
그러나 나는 다시 한 번 생각을 해 보았다. 과연 저들이 보이는 것만큼 사실적이지 않은가? 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실제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을 만난 적이 없다. 하지만 그들이 영화 속 악당들처럼 노골적으로 뻔뻔한 얼굴을 하고 있었을 거라는 데에 500원을 걸 수 있다.
악당들은 그럴 필요가 있을 때에나 위장을 한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많은 영역에서는 그런 뻔뻔스러움이 당연시된다. 여러분도 알 것이다. 이 나라에서 '사회생활을 배운다'라는 것이 그런 뻔뻔함을 용납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라는 걸. [도가니]에서 그리는 사건은 자신의 죄에 조금의 죄의식도 느끼지 않으며 그를 굳이 감출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 저지른 행위의 결과이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들의 얼굴을 안다.
얼마 전 공지영 작가가 [도가니] 관객과의 만남에서 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실제 사건은 소설에서 그린 것보다 몇 배는 더 심했는데, 그걸 다 담다가는 소설이 후지게 될까봐 사건을 줄이고 피해자 수도 줄였단다. 이해가 되는 일이다. 너무 사실적인 이야기는 오히려 이야기 전달에 방해가 된다. 상황이 끔찍해서가 아니라 그 상황의 천박함이 이야기를 망쳐버린다.
의심난다면, 영화나 소설에 나오는 인상적인 악당들을 떠올려보라. 테나르디에 부부를, 밀라디를, 해리 라임을, 한니발 렉터를, 노먼 베이츠를, 다스 베이더를 보라. 만만한 사람들을 찾지 못할 거다. 그들은 모두 미학적으로 다듬어진 괴물들이다. 그들은 우리나 주인공보다 위대하거나 다채롭거나 아름답다. 그들의 수준에 도달하는 건 현실세계에서는 결코 쉽지 않다. 현실세계에서 우리가 마주치는 악당들은 대부분 [도가니] 악당들 수준이다. 영화에서라면 소모품 악역으로 10분 정도 나오다 주인공의 총에 머리가 날아갈 수준의 것들이 최종 악당 흉내를 내고 있는 거다.
만약 영화의 악당들이 보다 섬세하게 자신의 사악함을 숨기고 있었다면 영화는 더 사실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적으로 보이는 것과 사실적인 것은 다르다. 영화를 만들고 소설을 쓰는 사람들은 이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 예술을 위해 미화를 할 것인가, 아니면 현실 세계의 조야함과 천박함을 있는 그대로 그릴 것인가? 중간을 택해야 한다면 그 선은 어디에 있는가.

물론 현실세계의 조잡함을 사실적으로 그리면서 예술적으로 성공하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다. 봉준호가 그렇다. 아마 홍상수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를 위해 코미디를 사용한다. 아마 차가운 외계인의 눈으로 본다면 [도가니]의 사건은 성폭행과 학대가 개입된 끔찍한 코미디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도가니]의 감독이 그 도구를 선택하지 않은 건 당연한 일이 아닌가.
여기서 이야기는 현실과 예술의 연관관계로 흘러간다. 현실세계는 어쩔 수 없이 예술가들의 재료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재료의 선택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현실을 조작하며 작품의 질을 높이거나 현실을 받아들여 스스로의 수준을 낮추거나 둘 중 하나다. 어느 쪽이건 그리 만족스럽지는 않다. 다시 말해 현실세계의 수준은 그 세계를 사는 사람들이 만드는 예술작품에 영향을 끼친다.
얼마 전에 보았던 이탈리아의 부패 정치가 줄리오 안드레오티의 전기 영화 [일 디보]가 생각난다. 안드레오티는 나라를 말아먹은 악당이었지만 그만큼이나 복잡하고 매력적이고 흥미진진한 괴물이었다. 그의 존재는 영화를 걸작으로 만들었다. 과연 우리가 비슷한 위치에 있는 국내 인물을 소재로 같은 수준의 걸작을 만들 수 있을까?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도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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