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드리 헵번과 '싱글걸'의 등장
'오드리와 티파니에서 아침을' 출간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머리에 수건을 두른 스웨터 차림의 오드리 헵번이 창문 턱에 걸터앉아 기타를 치며 감미로운 목소리로 '문 리버(Moon River)'를 부른다.
갓 서른을 넘긴 헵번의 사랑스러움을 한껏 보여준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한 장면이다.
영화 관련 저술가인 샘 왓슨이 쓴 책 '오드리와 티파니에서 아침을'(이봄 펴냄. 원제 'Fifth Avenue, 5 A.M.')은 1961년작 로맨틱 코미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제작을 둘러싼 이야기를 재구성한 책이다.
저자가 2년 동안 영화 관계자들을 직접 인터뷰하고 영화 자료실을 뒤져 1950년대 말 뉴욕의 영화촬영 현장을 생생하게 복원했다.
그러나 단순히 흥미로운 '영화 뒷얘기'에 그치지만은 않는다.
당시 헵번이 연기한 여인 '홀리'에서 미국 최초의 모던 싱글걸 이미지를 읽어내는 등 사회적인 맥락 속에서 영화를 다시 보고 있다.
영화의 원작은 논쟁적인 작가 트루먼 카포티(1924-1984)가 1958년 발표한 동명 소설이었다.
원작 속 홀리는 많은 사람이 기억하는 헵번의 사랑스러운 모습과는 차이가 있었다. 소설의 영화 제작이 추진될 때 카포티가 1순위로 떠올렸던 것도 헵번과는 정반대의 이미지를 지닌 메릴린 먼로였다고 한다.
"그녀(홀리)는 원하는 것을 말했고 원하는 것을 했으며 결혼과 정착을 완강히 거부했다. 야성의 여자라서 그런 건 아니었다. 삶의 목표이자 중심은 독립이었고 그녀는 자기를 팔아 그걸 얻을 수 있었다."(108쪽)
여성들은 결혼 후 새장 속에 갇힌 새처럼 남편 중심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던 1950년대 미국 사회에서 혼자 사는 여자는 '배드걸'로 여겨졌다.
거센 논란을 불러일으켰을 법한 이런 급진적인 '싱글걸'의 이미지가 대중에게 거부감 없이 인식될 수 있었던 것은 헵번의 힘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트루먼의 이 작품이 나왔을 때는 안주하는 삶이 최고라 생각한 미국인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중략) 그전에는 홀리란 여자는 또다시 등장한 저속한 여자 정도로 보였다.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세상에서 제일 이상한 여자 말이다. 1961년 우리의 순수한 공주님 오드리 헵번이 이 모든 것을 바꾸어버렸다."(116쪽)
실제로 영화가 만들어졌을 때 관객들은 헵번의 사랑스러운 매력 속에 홀리라는 새로운 여성상에 대한 가치판단을 접어두었다.
한 평론가는 "'티파니에서 아침을'은 다르게 만들었다면 정말 이상했을 영화"라며 "많은 사람이 이 영화를 좋아할 것이다. 푹 빠지지 않고 거리를 두면서도 매혹돼버리는 사람이 나 뿐만은 아닐 것"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오드리 헵번과 트루먼 카포티는 물론, 헵번의 남편 멜 페러, 시나리오 작가 조지 액슬로드, 뮤즈를 원했던 디자이너 위브르 드 지방시, 작곡가 헨리 맨시니 등 영화 안팎의 다양한 인물들을 등장시켜 복원한 생생한 영화 제작과정이 소설처럼 흥미진진하다.
노지양 옮김. 320쪽. 1만3천800원.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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