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고등학생 평균키 차이의 비밀
실업계 고등학생 김형석군(가명·17)은 매주 학교 보건실에 출석 도장을 찍는다. 보건실에 들어서자마자 키 재는 기계로 직행한다. 0.1㎝라도 자란 걸 확인하는 날은 연방 "대~박"을 외쳐댄다. 현재 172㎝인 그는 180㎝까지 자랐으면 한다. 키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는 기자의 말에 김군은 반문했다. "남자 고등학생 중에서 키에 관심 없는 사람이 있어요?"
몸이 한창 자라는 시기인 청소년들은 키 성장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 김종림 공주여자고등학교 보건교사는 "전문계·인문계 학교를 막론하고 그 나이 또래는 키에 관심이 많다. 특히 남학생들은 더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보건 수업을 하는데, 아이들이 가장 재미있게 듣는 부분 중 하나가 키에 관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성장 클리닉을 다니며 매주 다리 당기는 기계에 몸을 맡기는 김군의 친구도, 키 큰 남자친구를 만나고 싶다는 162㎝의 이혜영양(가명·18)도 관심사는 같았다. '어떻게 해야 키가 크지?'

키 성장에 유전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 밖에 전문가들이 꼽는 것 중 하나가 사회경제적 요인이다. 최경희 이화여대 교수(예방의학)는 "건강을 결정하는 요인은 △우연 △유전자 △환경 △유전과 환경 상호작용, 이렇게 네 가지로 범주화할 수 있다. 특히 건강에 중요한 요소는 어릴 적 사회경제적 환경에 따라 결정된다는 시각이 있는데, 키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라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 시사IN > 이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실로부터 단독 입수한 보고서는 눈여겨볼 만하다. 키와 계급 사이의 관계를 짚었다. 이른바 '건강 불평등'에 관한 최신 보고서라 할 만하다.
지난해 서울시내 전체 고등학교(235개교) 1학년의 키를 전수조사한 이 보고서는 평균 키순으로 상·하위 10위권 학교를 비교했다(제일 아래 표 참조). 조사에 따르면 전체 221개 고교 남학생의 평균 키는 172.3㎝. 이 중 하위 10위권 학교 평균은 170.8㎝, 상위 10위권 학교 평균은 173.4㎝였다. 2.6㎝ 차이다. 지난해 서울시 고등학교 1학년과 3학년 간의 평균 키 차이(1.9㎝)를 뛰어넘는다.
키 작은 학교와 키 큰 학교 '5.4㎝' 차이
평균 키 최상위와 최하위 학교를 비교하면 간격은 더욱 벌어진다. 서울시내 고등학교 1학년 중 가장 신장이 작은 A고(전문계고)의 평균 키가 170.1㎝인 데 비해 가장 큰 ㄱ고(일반고)는 평균 키가 175.5㎝이다. 2㎝ 신발 깔창 두 개 이상을 깔아놓은 만큼의 차이다.
키가 작을수록 뚱뚱한 경향도 나타났다. 지난해 서울시 고등학교 1학년 남학생의 평균 상대체중은 15.1%였다(평균 상대체중이란 비만자 비율을 의미한다. 숫자가 높을수록 뚱뚱하다). 그중 평균 키 하위 10위권 학교의 평균 상대체중은 16.3%, 상위 10위권 학교는 10.7%였다. 상대적으로 '키 작고 뚱뚱한 학교'와 '키 크고 날씬한 학교'라는 분류가 가능한 셈이다.
여학생이라고 딱히 상황이 다르지 않다. 되레 남학생보다 키 차이가 더 컸다. 지난해 서울시 고등학교 1학년 여학생의 평균 키는 160.9㎝였다. 하위 10위권의 평균 키는 159㎝, 상위 10위권은 162㎝로 3㎝ 차이가 났다. 평균 키가 가장 큰 학교와 가장 작은 학교 간의 차이는 6.3㎝나 벌어졌다. 키 작은 학교일수록 비만도가 높아지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상위 10위권 학교의 평균 상대체중이 9.5%인 데 비해 하위 10위권 학교는 13%였다(여학생 전체 평균은 11.6%).
그렇다면 이 격차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먼저 눈에 띄는 것이 학교 분류다. 묘하게도 하위 10위권 11개 고등학교(공동 순위 포함) 중 8개가 전문계 고교였다. 두 일반계 고교는 각각 금천구·노원구에 있었다. 나머지 한 학교만이 과학고였다. 반대로 상위 10위권 12개 학교(공동 순위 포함)에는 전문계 고교가 하나도 없었다. 대신 하위권에 보이지 않던 자립형 사립고(4개)와 외국어고(3개)가 대거 상위권에 등장했다. 특히 외고는 서울시내에 6개뿐인데, 그중 절반이 평균 키 상위 1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단 상위권을 나누는 데 서울체육고등학교는 뺐다. 체육 특기생이 다니는 이 학교는 체격에서 예외적인 경우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인문계·실업계·특수목적고 등 학교 분류별 키 발달 상황 통계(위 표 참조)는 이 차이를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낸다. 고교별 분류에서는 전문계고 학생들이 1~3학년 내내 가장 평균 키가 작다. 평균 몸무게도 전체 학년 동안 고교생 전체 평균에 못 미친다. 키와 몸무게 모두 전체 평균 아래로, '덩치 큰 전문계 고교생'이라는 이미지는 현실이 아니었다.
오히려 보고서에 담긴 서울특별시 학교보건진흥원의 < 학교 보건연보 > 를 보면, 전문계고 남학생의 키 발달이 7년 정도 늦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 전문계고 1학년 평균 키(171.8㎝)는 2003년 서울시 남자 고등학생 평균 키(171.6㎝)와 2004년 평균 키(172.6㎝) 사이에 있다. 서울시내 한 실업계 고등학교에서 20년 넘게 근무한 김성진 교사는 "사람 체형이라는 게 제각각이라 눈치를 못 챘다. 수치로 그 차이를 보니 놀랍다. 하지만 단순히 '실업계 애들이 키가 작다'가 아니라 이 격차가 어디서 왔는지 봐야 한다. 실업계는 부모의 소득이 높지 않은 가정의 자녀가 많다보니 이런 결과가 나온 것 같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랬다. 부모 직업을 살펴보면 이 사실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남학생 평균 키 하위 10위권 학교 학생 열 명 중 한 명은 아버지가 일용직과 같은 비숙련 노동자다(위 표 참조). 무직과 실업자는 6%가량을 차지한다. 아버지가 없는 경우도 아홉 명 중 한 명꼴(11.2%)이었다. 전문직·경영관리직 등 고소득 직종은 10%가 채 안 되었다. 평균 키 상위 10위권 학교 학생의 아버지가 고소득 직업군에 종사하는 비율(29.1%)과는 대조적이다. 그 외 직업군도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상·하위권 학교 간 격차가 확연하다. 어머니의 직업도 사정은 비슷했다. 이 중에서도 어머니가 전업 주부일 때 차이가 두드러져 보인다. 평균 키 상위 10위권 학생의 어머니가 전업 주부인 비율은 51.5%, 하위 10위권 학생 어머니가 전업 주부인 비율은 34.8%로 약 17% 포인트 차이가 났다.
키 작은 학생, 아버지 없는 경우 많아
이에 대해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은 "흔히 명문대 입학 공식으로 불리는 '아버지의 재력과 어머니의 정보력'이 학생 체격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라고 해석했다. 부의 대물림이 신체에까지 나타나는 경향을 보인다는 얘기다. 한성숙 박사가 쓴 < 초중고 학생들의 식생활과 영양섭취 실태가 학업성취와 체력에 미치는 영향 > (1997년)이라는 논문도 권 의원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논문은 "부모 학력이 높고 경제 상태가 좋을수록 학생의 체력과 체격, 영양 상태가 좋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학교 현장에 있는 김종림 보건교사도 말을 보탰다. 김 교사는 "통계치를 따로 뽑아본 적은 없지만 경험상 느낀 부분이다. 2008년 신종플루가 유행했을 때, 전교생 환자 중 66%가 학비나 의료보험 면제 대상에 속하는 저소득 가정 학생이었다"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평균 키 상·하위권 학교별 급식 지원 대상자 비율은 '키와 계급 간 연관관계'에 마침표를 찍는다. 남학생·여학생 하위 10위권 학교 모두 급식 지원 대상자가 전체 학생 열 명 중 세 명가량(29.8%)이었다. 반면 남학생 상위 10위권 학교는 5%, 여학생 상위 10위권 학교는 12%였다. 서울시 교육청의 급식 지원 대상자에는 기초수급자 및 차상위 계층 자녀, 한부모 가정 자녀, 지역·직장 건강보험료 월 3만4000원 이하 자녀 등이 속해 있다. 실업계 고등학교에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이 많고, 그런 학교일수록 학생들이 키가 작다는 결론에 이르는 셈이다.
더 큰 우려는 체격 격차가 더 심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박희숙 교사(전국교직원노동조합 보건위원장)는 "현장에 있는 교사가 체감할 뿐이었던 부모 소득에 따른 학생 체격 차이가 수치로 드러났다. 더 이상 이런 차이를 지켜보기만 해서는 안 되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뜻이다. 건강 불평등을 극복하기 위해 학교가 모자란 영양을 보충해주고 운동을 시켜주는 등의 역할을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권영길 의원은 "경제 규모 세계 13위 대한민국에서 부모의 소득수준에 따라 자녀의 체격이 크게 차이 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정부는 학생의 먹을거리와 체력을 관리하지 못했다는 점을 반성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김은지·허은선 기자 / smile@sisain.co.kr
싱싱한 뉴스 생생한 분석 시사IN Live - [ 시사IN 구독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