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난 설봉호 근처에 순찰 해경..하늘이 도왔다

[한겨레] 130명 탄 제주 여객선 화재
해경·해군 공조 발빠른 대처
승객들도 노약자 배려 '침착'
사고 1시간여만에 전원 구조
'쿵' 하는 소리에 잠을 깼다. 객실 밖으로 나서보니 매캐한 냄새가 확 끼쳤다. "불이 났다"는 안내방송을 듣는 순간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임신 5개월째인 아내(33)와 아들(5)을 깨웠다. 아이를 달래 구명조끼를 입힌 다음 배 맨위층으로 올라갔다. 불길이 보였다. 칠흑 같은 바다를 보며 '가족들만은 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연기에 쫓겨 뱃머리 끝까지 내몰렸다. '바다에 뛰어들어야 하나….' 다급한 순간, 서치라이트가 비쳤다. "깜깜한 망망대해에서 겁이 났지요. 경비함 불빛이 보이니까 안심이 되더라고요."
제주도 서귀포시에 사는 이아무개(36·자영업)씨는 6일 새벽의 급박했던 사고 순간을 떠올리다 아내의 손을 꼭 잡았다. 이씨 부부는 강원도 고성에 벌초하러 갔다가 제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이들이 탄 4000t급 여객선 설봉호는 5일 저녁 7시 부산에서 출항해 제주로 향하던 중, 6일 새벽 1시20분께 화물칸 쪽부터 화재에 휩싸였다. 설봉호엔 승객 105명과 승조원 25명 등 130명이 타고 있었다.
화재 당시 설봉호는 전남 여수시 백도 북동쪽 13㎞ 해상의 먼바다를 항해중이었다. 119로 사고가 접수된 시각은 새벽 1시20분. 마침 설봉호에서 12㎞ 떨어진 해상에서 순찰중이던 여수해양경찰서 경비정 '제317함'(함장 임재철·52)이 20분 만에 화재 현장에 도착했다. 이기춘 여수해경 경비구난계장은 "사고 지점 가까이에서 경비함이 순찰중이었던 것이 다행이었다"고 말했다. 317함이 설봉호에 근접했을 때는 남성 20여명이 구명조끼를 입은 채 바다에 뛰어들 만큼 급박한 상황이었다.
317함은 설봉호에 100m쯤 떨어진 곳에서부터 서치라이트를 비추며 고속단정 2대를 띄웠다. 어린이와 임신부, 노인과 여성들부터 차례차례 줄을 잡고 내려오도록 해 고속단정에 태워 경비함으로 옮겼다. 이씨는 "승객들이 우왕좌왕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응했다"며 "아내와 함께 경비정에 구조되기까지 50분 남짓 시간이 악몽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새벽 3시께 배에 탔던 130명을 모두 구조했다.
여수해경 관계자는 "해상 파고도 0.6~1m로 다소 낮아, 인명 구조에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부산과 제주에서 달려온 1500t급과 3000t급 해경 경비정들과 해군 경비함들이 잇따라 도착해 물대포를 쏘며 화재 진압에 나섰다. 사고 해역에 모두 23척이 출동했다.
317함은 이날 아침 6시께 여수시 부두에 설봉호 승객들을 무사히 하선시켰다. 찰과상을 입은 승객 10여명만 병원에서 치료받았고, 나머지 승객들은 이날 오후 부산으로 돌아갔다. 해경은 설봉호 화물칸에서 처음 불길이 치솟았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승조원 등을 상대로 불이 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광주/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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