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감하고 오피스텔 들어가라고?"..맞춤형 전세대책 절실
서울 마포구 대흥동에 사는 김 모 씨(62)는 최근 전셋집을 알아보다 시름이 깊어졌다. 김 씨가 세들어 사는 집은 방 3개짜리 단독주택. 2년 전만 해도 자녀들과 함께 살았다. 하지만 자녀들이 최근 잇따라 출가하고 나서는 방 3개짜리 집이 부부가 살기에는 크다는 생각에 다른 전셋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집주인이 전세금만 올리지 않았다면 현재 집에 그대로 살려고도 했다. 하지만 집주인은 재개발 대상 지역의 낡을 대로 낡은 집의 전세금을 최근 3000만원 정도 올려달라고 했다. 지난달부터 김 씨는 방 2개짜리 집을 알아보고 있지만 인근에는 마땅한 집이 없었다. 대학가 근처라 새로 들어서는 주택도 대부분 오피스텔과 원룸 뿐이었다.
김 씨는 "예순이 넘은 부부가 살기에는 오피스텔과 원룸은 적당하지 않다"며 "대부분 월세인데다 관리비도 비싸 수입이 한정된 노부부들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정부의 연이은 전·월세 대책 발표에도 전세금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권도엽 국토부 장관이 나서서 "올해 세 차례 발표된 전·월세 대책이 전세난 해소에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전세금은 이를 비웃듯 연일 최고가를 경신하는 모습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최근의 전세난 심화 현상에 대해 정부가 시장의 상황과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대책만을 내놓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박원갑 부동산1번지 부동산연구소장은 "전·월세난이라고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지금은 월세가 아닌 전세난"이라며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젊은 세대들에게 맞는 월세 주택 공급에만 치우쳐 있어 전세난이 완화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 70대 여성 1인가구 비중 가장 높아…이들 위한 주택은 '절대 부족'
정부가 올해 내놓은 전·월세 대책의 핵심은 민간 임대사업의 활성화를 통해 임대용 주택 공급을 늘리겠다는 것. 이와 함께 도시형 생활주택과 오피스텔 건설 사업자에게 혜택을 줘 소형주택의 공급을 늘리고자 했다.
정부가 이런 판단을 하게 한 가장 큰 이유는 1~2인 가구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파트나 연립주택 등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공사기간이 짧은 도시형 생활주택과 오피스텔을 공급해 급증하는 1~2인 가구 수요를 흡수하겠다는 복안이다.
실제로 국내 1인 가구와 2인 가구는 2005년 669만 가구에서 지난해 834만 가구로 165만여 가구 증가했다. 1인 가구가 97만1490가구, 2인 가구가 68만4507가구 늘었다. 이에 따라 전체 가구 수 중 1~2인 가구의 비중도 42%에서 48%로 급격히 증가했다.
하지만 통계를 조금 더 면밀히 살펴보면 실제 시장 상황은 정부의 판단과는 상당히 다르다. 국가통계포탈에서 제공한 지난해 1인 가구 수 관련 자료를 보면 1인 가구 급증 추세는 분명하다. 하지만 39세 미만의 젊은 세대의 1인 가구는 2005년에 비해 오히려 줄고 있다. 특히 지난해 20대 1인 가구(18.4%)는 2005년에 비해 3.0% 포인트나 줄었다. 반면 70세 이상의 고령 1인 가구는 2005년 17.3%에서 2010년 19.2%로 1.9% 포인트 늘었다.
젊은 세대의 1인 가구가 예전보다 줄고 노령 1인 가구는 늘어나는 상황에서 정부는 젊은 세대들이 주로 이용하는 원룸·도시형 생활주택·오피스텔 공급에만 목을 매고 있는 셈이다.
◆ "애 맡기고 오피스텔 들어가야 할 판"…3인 가구도 37만가구 증가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사는 백 모 씨(36)는 80㎡(24평)짜리 아파트에 살다가 집주인이 전세금을 올려달라고 해서 인근의 신규 오피스텔로 전셋집을 옮겼다. 네 살배기 딸이 있는 백 씨는 적어도 방 2개 이상의 아파트를 찾았지만 전세매물이 없어 포기하고 말았다. 다달이 월세를 내는 반(半)전세로 바꿀까도 생각해봤지만 치솟는 물가와 얇은 월급봉투를 생각하면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결국 딸애는 경기도 일산에 사는 부모님댁에 맡겨놓고 당분간 백 씨 부부는 오피스텔에 들어가 살기로 했다. 백 씨는 "부모님께 한 2년 정도만 애를 맡아달라고 부탁했다"며 "다음 재계약 시기엔 애 학교도 들어가야 하는데 상황이 좋아지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1~2인 가구 뿐만 아니라 중소형아파트가 필요한 3인 가구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05년과 비교하면 지난해 기준 3인 가구 수는 369만여 가구로 37만여 가구가 늘었다. 3인 가구는 대개 2세대가 함께 사는 가구가 많아 오피스텔과 도시형 생활주택으로 수요를 흡수하기는 어렵다.
정부 대책에도 다세대 매입 전세주택 공급 등도 포함돼 있지만 늘어나는 3인 가구 수에 비해서는 턱없이 부족하다. 실제로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들어 69~99㎡(21~30평)형대 아파트 전세금 상승률이 9.99%로 66㎡(20평) 미만 아파트 전세금 상승률(9.53%)을 눌렀다. 또 102~132㎡(31~40평)형대 아파트 전세금 상승률도 9.21%로 소형아파트 전세금 상승세 못지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함영진 부동산써브 부동산연구실장은 "3인 가구 이상 세대는 적어도 60㎡ 이상의 아파트나 연립주택 등을 구하고 있다"며 "정부 대책에는 시장에서 원하는 주택에 대한 공급 대책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 매매 수요 진작대책도 함께 고려…획기적인 도심 내 공급 대책 마련해야
시장 전문가들은 정부가 올해 들어 세번의 전세대책을 발표했으나 전세난은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단기 공급책은 전무한데다, 중·장기적인 공급대책마저도 시장에서 요구하는 주택 유형별 수요를 감안하지 않은 오피스텔·도시형 생활주택이 중심이어서 수급 불균형은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박 소장은 "도시형 생활주택과 오피스텔 공급 활성화는 엄밀히 따져 현재 전세난에 대한 공급대책이라고 볼 수 없다"며 "임대 주택의 절대 공급량을 늘릴 방안을 내놓지 않고서는 전세난은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특히 이번 전세난은 이전의 전세난과는 달리 매매시장 침체와 맞물려 발생했기 때문에 매매 수요를 증가시키지 않고서는 해결이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건설업체 한 관계자는 "보금자리주택을 임대로만 공급한다고 해도 임대용 주택 공급이 늘어나고 동시에 보금자리주택의 시세차익을 노려 주택구매를 미루는 수요자들에게도 자극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정부가 주거 복지라는 측면에서 과감한 제도 개선을 통해 임대 주택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 국책연구소 연구원은 "전세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도심에서 제대로 된 임대주택을 지속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봐야 한다"며 "기존 아파트 상가 건물의 증축을 허용해 임대주택 공급을 늘린다든지 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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