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전세대책 번번히 비웃는 '고공행진' 전세금
정부의 잇따른 전세 대책에도 불구하고 전세금 오름세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주택 공급이 부족한 데다 집값 전망이 불투명해 돈이 있는 사람도 집을 사기보다는 전셋집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KB국민은행이 지난 1일 발표한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 아파트의 평균 전세금은 1.5% 올라 2009년 3월 이후 월간 기준으로 30개월 연속 상승했다. 전세금이 30개월째 오른 것은 KB국민은행이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1986년 2월 이후 처음이다. 기존엔 2005년 2월부터 2007년 4월까지 27개월이 최장이었다.
올해는 상승폭이 더 커졌다. 올 들어 8월까지 전국 아파트 전세금은 12.1% 올라 이미 지난해 연간 상승률인 8.8%를 넘어섰다. 이 추세라면 2001년(20%) 이후 10년 만에 최대 상승률을 기록할 전망이다. 수도권(서울·경기·인천)은 8월까지 10.6% 올랐고 인천을 제외한 5대 광역시는 14.2% 뛰었다.
◆ 전세금 30개월 연속 상승…부동산경기 침체에 돈 있어도 전세 머문다
전세금이 오르는 이유는 간단하다.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기 때문이다. 자산이 부족해 집을 못 사는 사람 뿐만 아니라 돈이 있는 사람도 당분간 집값이 오르지 않을 것이란 판단 아래 전셋집에 눌러앉는 경우가 많다.
KB국민은행이 전국의 3800여 공인중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매매 거래에서 매도세가 우위에 있다고 답한 비중이 54.2%였던 반면 매수세가 우위에 있다는 대답은 10%에 그쳤다. 집을 팔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은데 사겠다는 사람은 적다는 뜻이다. 매수우위지수는 55.8로 기준치(100)에 한참 못 미쳤다. 매수우위지수가 100이면 매수세와 매도세가 똑같고 100을 초과할수록 매수세가 많다는 뜻이다. 100에 못미칠 경우는 그 반대다.
이에 반해 전세의 경우 수요가 공급을 초과한다고 생각하는 비중이 85%로 압도적이었다. 공급이 수요를 넘어선다는 대답은 고작 1.6%에 불과했다. 전세수급지수는 183.4로 수요가 공급을 크게 앞섰다.
장성수 주택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전세 시장엔 저소득자도 있지만, 구매력이 있으면서 집값이 안 오를 것으로 보고 전세에 머무르는 계층도 있다"며 "구매력이 있는 계층이 전세로 남아 있으면서 전세금을 올리는데 한몫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는 주택공급도 크게 부족했다.
부동산 정보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올해 수도권(서울·경기·인천)에서 입주가 예정된 주택(연립·빌라 제외)은 총 10만7601가구로 최근 11년간 가장 적다. 지난해(16만9286)보다는 36%가 줄었고 2000년 이후 공급이 가장 많았던 2004년(20만4459가구)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인천을 제외한 5대 광역시에서 입주가 예정된 주택도 4만2317가구로 2000년대 들어 최소 규모다.
전세는 당장 살 집이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입주 물량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입주 물량이 많으면 전세금이 내려가고 물량이 적으면 오른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수도권에서 입주 물량이 가장 많았던 2004년의 경우 수도권 아파트의 전세금은 평균 5.2% 하락했다. 5대 광역시도 2000년 이후 입주 주택 수가 가장 많았던 2008년(7만3800가구)엔 전세금이 평균 1.6% 오르는데 그쳤다.
◆ 헛다리 짚은 전세대책…"전셋집 공급자에 파격적 혜택 줘야" 지적
정부는 전세금을 진정시키기 위해 올 들어서만 1월과 2월, 8월에 각각 대책을 내놨다. 그러나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전세금 상승폭은 대책 발표 이후에 더 커졌다.
정부가 1월 발표한 대책은 공공 부문에서 임대주택 공급을 늘리고 민간 부문이 도시형 생활주택, 다세대·다가구, 주거용 오피스텔을 많이 짓도록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아파트는 공사 기간이 3~4년이지만, 도시형 생활주택과 다세대·다가구의 경우 공사기간이 1년 미만이어서 공급량을 단기간에 크게 늘릴 수 있다는 발상이었다. 하지만 시장 전문가들은 "사람들은 전셋집을 원하는데 월세주택만 공급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박원갑 부동산1번지 연구소장은 "도시형 생활주택이나 오피스텔은 대표적인 월세 상품인데 지금도 월셋집은 넘쳐 난다"며 "전셋집이 모자라는데 월세주택만 공급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최근의 주택문제는 전·월세난이 아니라 전세난"이라며 "월세보다 전셋집 공급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2월엔 민간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을 전·월세 주택으로 활용하기 위해 양도세와 취득세를 감면해주기로 했지만 이 것도 현실과 동떨어진 대책이었다. 시장에서 전세 수요가 많은 주택은 전용면적 85㎡(25.7평) 이하의 중소형인데 반해 현재 남은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은 85㎡를 초과하는 중대형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7월말 기준 전국의 미분양 주택은 3만8085가구로 이 중 85㎡ 이하는 1만122가구이고 나머지 73%(2만7963가구)는 중대형 아파트다.
전문가들은 전세금을 진정시키려면 매매 시장을 활성화해 전세 수요를 줄이고 규제를 완화해 전셋집 공급을 늘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성수 선임연구위원은 "일반적으로 집값이 오르면 전세금은 안정되는 특성이 있다"며 "돈 있는 사람들의 주택 구매를 유도해 전세시장을 안정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자산이 부족한 사람은 전세 수요자로 남겨두더라도 자산이 넉넉한 사람은 전세 시장에서 매매 시장으로 돌려야 전세 수요를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전셋집 공급을 늘리기 위해선 분양가 상한제 등 주택 공급을 막는 규제는 풀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주택 공급을 교란시키는 분양가 상한제가 폐지돼야 주택 공급이 늘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전셋집 공급을 늘리기 위해서 전셋집을 공급하는 사람에게 파격적인 혜택을 줘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박원갑 연구소장은 "도시형 생활주택이나 오피스텔은 빨리 지어지지만, 월세 상품이어서 전세 대책으로는 적절하지 않다"며 "세입자가 월세보다 전세를 선호하는 만큼 전셋집 공급자에게는 재산세 감면 등의 파격적인 혜택을 줘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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