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생명이었던 일제 치하의 조선인

2011. 9. 2.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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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와 제국 (황호덕 지음 새물결 발행ㆍ615쪽ㆍ2만3,000원)

1930년대 말 일제의 전시동원체제에서 조선인의 삶은 '버러지'에 다름없었다. 모어를 빼앗긴 조선인들은 공적 영역에선 말 못하는 짐승이나 마찬가지였고, 일본의 위생적 근대문물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구더기가 들끓는 삶'으로 취급됐다. 식민지 감옥을 배경으로 한 이광수의 <무명>(1939)은 조선의 이미지를'갇혀서 똥질 밖에 할 수 없는 장소'로 그린다. 인간이 되기 위해선 제국의 국민이 돼야 했고, 그러기 위해 일본어를 말하고 일본의 법과 규율을 따르고 무엇보다 군인이 돼야 했다. <벌레와 제국>이란 의미심장한 책 제목이 함축하는 바가 바로 통치 대상을 벌레 아니면 인간으로 가르는 극단적 통치체제다.

신진 국문학자인 황호덕 성균관대 교수가 쓴 <벌레와 제국>은 문학 작품을 통해 1930년대 말 이후 후기 식민지 시기를 다룬 연구서인데, 단순한 문학사나 역사서의 범주를 훌쩍 뛰어넘는다. 발터 벤야민을 시작으로 미셸 푸코, 질 들뢰즈, 조르주 아감벤 등 최전선의 철학 사상을 적용하며 당시의 폭력적 국가체제를 훑는 저자의 문제의식이 끊임없이 오늘의 상황을 환기시키기 때문이다. 그 체제가 지금도 되풀이 되는 근대국가의 내재적 특성이 아니냐는 도전적인 물음을 던지는 것이다.

근래 주목 받아온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벌거벗은 생명') 개념을 끌고 온 논의부터 살펴보면 이렇다. '벌거벗은 생명'은 '희생물로 바칠 수는 없지만, 죽여도 처벌 받지 않는 생명'을 뜻하는 말로, 나치 시대 유대인을 학살해도 처벌 받지 않았던 경우가 대표적 사례다.

저자는 이를 짐승 취급 받는 인간, 비인(非人)으로 설명하는데 전시동원체제의 조선인이 바로 벌거벗은 생명이었다는 것이다. 일제의 조선어 말살이나 내선일체의 통치는 일본화하지 못한 조선인을 대규모의 비인으로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이 시기는 전쟁에 자원과 인력을 총동원하기 위해 법 집행기관이 기계장치처럼 극도의 효율성을 추구하던 때로 문학과 예술도 국가의 과업을 수행하는 기술에 봉합돼 명령의 집행에 가까웠다고 저자는 말한다. 당시의 새로운 인간상도 국가 메커니즘에 복무하는 기계적 인간에 다름없었다. 그러니까, 당시의 조선인에게 선택은 두 갈래. 비인으로 남느냐, 제국의 국민이 되어 기계가 되느냐다.

전체주의 국가의 이런 극단적 상황이 근대국가의 예외가 아니라, 근대국가의 특징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내는 한 예라는 것이 저자의 도발적 주장이다. 예컨대, 철거민이나 불법체류자, 거리의 노숙자 등은 지금 우리 시대의 벌거벗은 생명들. 법질서 바깥으로 배제돼 정치의 주체가 되지 못하지만, 법질서 내에 포섭된 엄연한 통치의 대상이다. 아울러 목적을 묻지 않고 법 집행의 합리성만 따지는 현 국가의 모습에도 그 관료 기계의 속성이 내재돼 있다는 것이다.

저자의 이 같은 논의는 근대의 핵심 원리를 효율성과 계산가능성, 가치중립성으로 보는 막스 베버의 관점에 맞닿아있다. 베버가 미래의 인간을 '정신없는 전문인과 가슴없는 향락인'으로 암울하게 내다봤듯, 후기 식민지 시대를 오늘에 끌고 오는 저자의 시각도 지극히 묵시록적이다.

이런 관점의 동의 여부를 떠나 책의 특장은 서구 이론과 국내 현실이 따로 놀던 상황에서 추상적 이론을 구체적 현실과 작품 분석에까지 탄력적으로 적용, 설득력 있게 논의를 전개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새로운 이론을 습득한 학문 세대가 우리 현실에 대해서도 이론적인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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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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