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풀꽃나무이야기-방울꽃
[류도성 아나운서]
제주CBS '브라보 마이 제주' < 월-금 오후 5시 5분부터 6시, 제주시 93.9MHZ 서귀포 90.9MHZ > 에서는 매주 목요일 제주의 식물을 소개한다. 이번에는 '방울꽃'에 대해 한라생태숲 이성권 숲해설사를 통해 알아본다.
8월 중순이다. 더위가 누그러진다는 처서가 되지 않았는데도 며칠 전부터 가을이 시작됐음인지 아침공기가 싸하다.
이 시기에 제주에서 들꽃을 보려면 한라산이나 저지대 습지나 연못으로 가야하지만 중산간 일대의 숲이나 그늘이 있는 오름에도 어김없이 연보랏빛 방울꽃이 피어난다.
방울꽃은 제주도에 와야만 볼 수 있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키는 30~60cm 정도이고 조금은 습한 나무그늘을 좋아한다. 꽃은 민감하여 조금만 스쳐도 꽃잎이 떨어진다. 꽃색은 화려한 보라색이지만 모습은 투박하여 잘 생긴 모습은 아니다. 이름 그대로 큰 방울 같기도 하고 시골 마을회관에 마을소식을 전하는 큰 스피커를 닮아 보이기도 한다. 꽃색은 연보라, 자주색이 대부분이지만 몇년 전 한라산 중턱에서 흰 꽃 군락이 발견되어 뉴스가 된 적도 있다.
방울꽃(Strobilanthes oliganthus)의 종소명 'oliganthus'는 '작은 숫자의'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꽃은 잎겨드랑이나 줄기 끝에 꽃 하나가 피고나면 시간 차이를 두면서 다른 하나가 피는 방식으로 한 쌍씩 적은 숫자의 꽃이 달린다.
수술은 흰색으로 네 개가 있는데 두개는 길고 두개는 짧아 밖에서 보면 수술이 두 개밖에 없는 것처럼 보인다. 아침에 피기 시작한 꽃은 조금씩 머리를 일으키고 마지막엔 하늘을 바라보다 저녁이 되면 꽃잎을 떨어뜨린다. 그리고 삶과 죽음을 연상시키기라도 하듯 싱싱한 꽃 옆에는 시든 꽃 하나가 드러누워 있어 한 쌍의 꽃을 온전하게 보는 일은 쉽지 않다.
벌이나 곤충들은 끊임없이 꿀을 모으러 꽃 속을 들락거리고 있다. 꿀은 꽃의 맨 끝에 있는 지 곤충들은 연신 머리를 꽃잎 속으로 파묻고 있다. 꽃 입구에 있는 수술의 꽃가루는 이 과정에서 곤충의 몸으로 묻어 또 다른 꽃의 암술머리에 묻히게 되고 방울꽃은 다음 세대를 자연스럽게 기약할 수 있게 된다.
방울꽃을 보려면 오후 해가 떨어지기 전 저녁 무렵이 더 좋다. 때를 맞춰 한 줄기 빛이 숲속의 길을 만들며 꽃잎에 내려앉기라도 하면 꽃을 담는 사람들에게는 조그만 흥분이 이는 순간이 된다. 누군가 꽃잎을 살짝만 흔들어도 아름다운 방울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저녁 햇살을 정면으로 받은 보라색 꽃들은 일제히 머리들 들어 올려 합창을 하고 향긋한 숲내음과 어우러져 그윽한 제주 숲속의 여름을 느끼게 해준다.
내가 근무하는 한라생태숲에도 올해는 방울꽃이 많이 피었다. 태풍의 지나간 자리에는 큰 나무가 꺾이고 뽑히고 했지만 가녀린 방울꽃은 늘 그랬던 것처럼 꿋꿋이 피어 숲속의 여름소식을 전하고 있다. 방울꽃을 보면서 신기한 꽃을 만난 듯한 탐방객의 표정에서 행복함이 느껴진다. 이처럼 아주 작은 일에서 행복을 찾을 일이다.
방울꽃의 꽃말을 만족이라 했다. 하나를 더하면 그 위에 또 하나를 더하고 싶은 것이 우리네 마음일 텐데 얼마나 만족하면서 살아갈까.
투박하여 비교적 잘 생긴 얼굴은 아니지만 숲을 아름답게 꾸밀 수 있어 만족한다는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작은 일에 만족하며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주는 듯 하다. 아무래도 내일은 카메라를 들고 다시 숲으로 방울꽃을 만나러 가야 될 듯 하다.ryuds@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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