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 (324)유전자

자식이 부모를 닮는 것은 누구나 당연하게 여기는 자연의 섭리다. 그런데 오늘날 그런 자연의 섭리는 더 이상 신(神)의 영역에 속하는 비밀이 아니다. 자식이 부모를 닮는 과정에 적용되는 유전 법칙도 알려져 있고, 그런 법칙이 나타나는 이유도 상당한 수준으로 이해를 하고 있다. 그 핵심이 바로 이중나선 모양의 DNA에 암호화되어 있는 `유전자'다.
모든 생명체는 단백질에 의해 생명을 이어간다. 본래 단백질(蛋白質)은 달걀 흰자 위에 들어있는 물질을 뜻하는 말이다. 그러나 현대 과학에서 단백질은 `아미노산'이라는 작은 분자들이 특별한 순서에 따라 결합된 유기 고분자를 뜻한다. 그런 단백질이 생체에서 일어나는 모든 생리작용을 정교하게 통제한다. 단백질이 부족하거나, 너무 많거나, 또는 단백질의 구조에 문제가 생기면 생리작용에도 심각한 어려움이 생긴다. 생명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
유전자는 그런 단백질에서 아미노산의 연결 순서를 결정해주는 정보를 말한다. 생명 현상의 가장 중요한 처방전인 셈이다. 그래서 유전자가 담겨있는 DNA를 `생명의 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자식이 부모를 닮는 것도 유전자가 담겨있는 DNA를 부모로부터 물려받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자식의 유전자가 부모의 유전자와 완전히 똑같은 것은 아니다. 부모의 유전자가 자식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조합이 가능하고,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돌연변이가 생기기도 하기 때문이다. 유전 법칙은 그런 조합에 대한 통계적 분석의 결과다.
DNA가 유전 정보를 저장하는 방식은 알파벳을 모아서 글자를 만드는 방식과 매우 비슷하다. 이중나선을 연결시켜주는 4종류의 `염기'(A, T, G, C)를 알파벳으로 사용한다. DNA에서는 3개의 염기 순서가 하나의 아미노산을 나타내는 `코돈'(codon)이 된다. 그래서 `AAA'와 `AAG'는 `라이신'이라는 아미노산을 뜻하고, `GAA'와 `GAG'는 화학조미료로 잘못 알려진 MSG와 관련된 `글루탐산'을 나타낸다. `글루타민'은 `CAA'와 `CAG'로 표현되고, 숙취 해소에 좋다고 알려진 `아스파라긴'은 `AAU'와 `AAC'로 표현된다.
DNA에 사용되는 4종류의 염기를 모두 사용하면 64종류의 아미노산을 나타낼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지구상의 생물이 사용하는 아미노산은 20종류뿐이다. 놀라운 생명의 다양성도 사실은 생명의 책에 마련된 설계 규모의 30%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인 셈이다. 생명의 책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수준의 생물 다양성을 고려해서 설계됐다는 뜻이다.
DNA에 담겨진 유전 정보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른 DNA로 `복제'가 되어 자식에게 전달되거나 새로운 세포를 만드는 과정에 사용되기도 하고, 또 다른 유전물질인 mRNA로 `전사'(轉寫)되어 생리작용에 필요한 단백질을 만드는 과정에 사용되기도 한다. `리보좀'이라는 세포기관이 RNA에 전사된 암호에 따라 아미노산을 연결시켜 단백질을 만들어낸다. 그런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하면 유전병이나 암과 같은 심각한 질병이 생기게 된다.
이론적으로는 단백질의 아미노산 연결 순서에서도 유전 정보를 읽어낼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생명체에서는 단백질에서 담겨있는 유전 정보에서 거꾸로 DNA가 만들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1953년 DNA의 분자 구조를 처음 밝혀냈던 영국의 프랜시스 크릭이 1958년에 제안했던 현대 분자생물학의 `중심 원리'(central dogma)에 따르면 그렇다. DNA가 진정한 의미에서 생명 현상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담고 있는 `생명의 책'인 셈이다.
최근에는 DNA에서 전사된 RNA의 유전 정보가 DNA에 담겨있는 것과 다를 수도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모든 유전 정보가 DNA에서 시작된다는 중심 원리가 흔들리고 있다고 걱정하는 과학자도 있다. 아직도 생명의 신비가 속 시원하게 밝혀진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이덕환(서강대 교수, 대한화학회 차기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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