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풍경을 특별하게 만드는 시선을 찾아
조용미 5번째 시집 '기억의 행성'
[세계일보]풍경에 대한 미적 직관과 삶에 대한 사유를 온전히 탐닉해온 중견 시인 조용미(49)씨가 5번째 시집 '기억의 행성'(문학과지성)을 펴냈다.
1962년 경북 고령에서 태어난 조용미씨는 1990년 '한길문학'에 '청어는 가시가 많아'를 발표하며 등단했고, 1996년 첫 시집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를 내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2007년 제4집 '나의 별서에 핀 앵두나무'까지 첨예한 감각으로 풍경 속으로 파고들어가는 시를 써왔다. 천형 같은 허리의 부실 때문에, 아마 세상은 시인에게 시시하게 멀었고 풍경이야말로 육박하는 진실이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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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대한 사유보다 감각쪽으로 좀더 정밀하게 촉수를 뻗은" 5번째 시집 '기억의 행성'을 펴낸 중견 시인 조용미씨. 그는 "풍경에 대한 미적 직관과 삶에 대한 사유를 추구하는 시인으로 남고 싶다"고 말한다.문학과지성사 제공 |
4년 만에 펴낸 이번 시집에서도 평범한 풍경을 특별하게 만드는 시선, 고요한 목소리, 현현한 문장 등 '조용미의 시'가 넘실거린다. 두런두런한 그의 목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펼쳐진 풍경에 침묵으로 화답해야 하는 시간이 펼쳐진다.
"손때 묻은 소반처럼은 아니지만/ 반짝이며 윤기가 도는/ 위층에서 듣는 개울물 소리,/ 누군가 종이접기하듯 접어 올려 보낸 물소리/ 나도 접어/ 옥상으로 올려 보낸다/ 오늘 밤 은하수 건너는 뭇별이 들을/ 내가 어루만진/ 저 나선형의 물소리가 가닿는 곳은,// 소리가 긴 사다리를 밟고 올라가는 밤"('소리의 사다리' 중)

조용미씨는 이번 시집에서 소리의 세계로 우선 파고든다. 소리는 경계를 넘나드는 존재가 돼 부지런하게 움직인다. 번다한 세상에 '있지만 없었던' 소리가, 현판 가운데 '달 月'자가 옆으로 빗겨 있는 어느 절의 계곡에서 활연히 부활한다.
"현통사 霽月堂의 月자가 옆을, 누워 있다 계곡 물소리에 쓸린 것인지 물 흐르는 방향으로 올려 붙은 달, 물에 비친 달도 현통사 옆에선 떠내려갈 듯하다// 비 오는 날 숲의 모든 소리는 물소리 뒤에 숨는다"('소리의 거처'에서)
조용미씨가 천착하는 것은 소리만이 아니다. 풍경은 소리와 함께 색으로 공간으로 번져간다. 이때 펼쳐지는 풍경은 농(濃)과 담(淡)으로 빛과 어둠을 표현하는 수묵의 세계. 찬찬하면서도, 퍼지고, 은은한 세계다.
"심장박동이 잦아들도록 가을이 지나 겨울까지 내처 내버려두어야겠다/ 득격하지 못하더라도 농묵의 번짐은 비껴갈 수 있을 테니/ 예서와 해서가 섞인 서체처럼 단단하고 묵묵해질 때까지, 초승달이 깎여 다시 그믐이 될 때까지/ 걷고 또 걷고 누르고 누르면 禿筆(독필)이 된다"('야위다' 부문)
결국 소리와 색을 따라가는 길은 자연의 길이지만 또한 인간의 길이다. 미묘하고 표묘한 그의 문장을 찬찬히 따라가다보면 어름어름 손짓하는 그가 있다. 풍경이 중금속처럼 내려앉은, 미학적인 인간인 그가.
"나는 북쪽을 선호한다/ 한 가지 色에 깊이 들어앉은 다른 색을 발굴하기까지의 기나긴 과정에 대해 누군가에게 설명하는 일은 가능할까/ 나약한 존재를 자극하는 섬세한 색의 변화를, 그 미묘한 느낌의 일렁임을"('미학적 인간에 대한 이해' 중에서)
조용미씨는 "지금까지는 죽음과 생의 근원 및 어둠에 대해 주로 탐구했다면 이번 시집에선 색채와 무늬 등에 관심을 가졌다"며 "삶에 대한 사유보다 감각쪽으로 좀더 정밀하게 촉수를 뻗은 셈"이라고 말했다. 일상에 갇힌 '맹목의 감각'을 걷어치운 그의 시에서, 지금 지구는 기억의 행성이 돼야 한다.
"기억은 영상 4도에서 가장 무겁기 때문에 한겨울에도 온갖 기억의 파편들은 굳어버리지 않고 얼음장 밑에서 헤엄쳐 다니며 살 수 있습니다 기억은 지구에서 가장 풍부한 자원입니다 그러므로 지구를 기억의 행성이라 부르지요"('기억의 행성' 부문)
김용출 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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