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리아넨코 효도르 VS 댄 핸더슨, 소속 단체에 상관없이 살아 있는 전설로 추앙받는 선수들인데다, 이번에 슈퍼액션 및 IPSN에서 이번 스트라이크포스 대회를 중계했기에 약간의 외전 느낌으로 둘의 대결 리뷰를 UFC 익스프레스에서 다뤄 보려 한다. 사실 이번 경기에 임하는 두 레전드 파이터들의 입장은 사뭇 달랐다. 최근 라이트헤비급에서 상승세를 타고 있던 핸더슨은 사실 져도 크게 잃을 것이 없는 매치업이었던 반면, 2연패를 당하며 갑자기 왕좌에서 추락한 효도르는 체급, 나이, 전적 등 모든 객관적 전력에서 뒤지는 핸더슨을 잡고 꼭 부활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가득했을 것이다. 결국 둘의 경기는 모든 격투팬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던 효도르의 1라운드 KO패로 결론이 났는데, 진행이 너무 빨랐기 때문에 방송에서는 자세히 설명을 드릴 시간조차 없었던 효도르 VS 핸더슨 전을 최대한 자세히 풀어드려 보고자 한다.

경기 시작과 함께 글러브 터치를 하자마자 효도르는 곧바로 무서운 기세로 핸더슨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 전략적인 미스였다고 지적하는 국내 외 전문가들이 많은데, 여기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원래 효도르가 구사하는 타격 패턴은 다음과 같다.
1. 원거리에서 경쾌한 스탭으로 통통 뛴다.(이 거리는 생각보다 굉장히 멀다. 복싱의 펀칭 거리와는 차원이 다른 거리다. 대부분의 헤비급 선수들은 스피드에서 효도르를 못 당하기에, 이 거리에서 스탭을 밟고 들어가며 펀치를 날리기는 굉장히 껄끄럽다. 사실상 다른 선수들의 킥 거리에서 펀치 싸움을 시작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2. 남다른 스피드를 이용해 순간적으로 팍! 치고 들어간다.(이 동작이 너무나 빠르기 때문에 이 타이밍에 카운터를 거는 건 헤비급 선수들 입장에서 거의 불가능하다. 마이크 타이슨의 전성기 시절을 떠올려 보자. 들어오는 타이슨에게 정면으로 카운터를 건 선수들의 말로는 대부분 실신이었다. 효도르의 펀치가 타이슨만큼 강한 건 아니지만, 워낙 빨라서 그 순간 카운터 타이밍을 잡기가 극히 힘들다는 공통점만은 분명하다.
여기서 치고 들어가는 기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I. 라이트 주는 듯 하다가 레프트 훅팀 실비아 전 때 나온 패턴이다. 실비아 전 때는 훅을 맞춘 후 오른손으로 실비아의 뒷머리를 잡아 눌러 그 반발력으로 몸을 세우게 만든 다음 연타를 몰아 쳐 버렸는데, 원래 효도르는 이 패턴에서 그렇게 몰아치다가 여의치 않으면 뒤로 빠졌다 다시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II. 라이트 스트레이트사실 이 펀치가 효도르 스탠딩 게임의 진정한 시작이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이 펀치를 치는 순간 효도르의 오른다리가 따라 들어가 상대 왼다리 뒤에 붙으면 효도르가 테이크다운을 머릿속에 넣고 들어온 것이다. 반면 이 순간 다리가 따라 들어오지 않았다면 효도르는 곧바로 레프트 훅-라이트-레프트 등으로 이어지는 펀치 컴비네이션을 날리기 위해 들어온 것이다. 효도르의 주무기인 라이트 펀치 후 콤비네이션 패턴은 이렇게 두 가지로 나뉜다. 워낙 빠르기에 첫 번째 테이크다운 패턴은 '타격-테이크다운' 이런 콤비네이션 느낌이 아니라 '타격테이크다운' 이렇게 완전히 한 기술로 붙어 있는 듯 하다는 얘기를 효도르 경기를 해설할 때마다 여러 차례 한 바 있다.)

(브렛 로저스 전에서 효도르의 모습. 라이트를 친 후 오른다리가 따라 들어가 테이크다운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런데 효도르는 이렇게 펀치를 날리며 들어갈 때 안면이 열려 있는 경우가 많다. 워낙 빠르기 때문에 카운터를 꽂기 힘들다는 건 이미 설명했지만, 그렇더라도 분명 이건 약점이다. 그런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효도르가 '펀치를 날리며 들어갈 때마다 항상' 안면이 열리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펀치를 박아 넣기로 작정하고 때릴 때 효도르의 머리는 분명히 숙여져 있다. 대신 체격이 아주 큰 상대에게 갑자기 팍 뛰어들 때 안면이 열리는 경우가 많다. 이유는 뭘까? 그 짧은 순간 상대의 중심 및 반응을 보기 위함이다. 그 짧은 순간 동안 최대한의 정보를 파악한 후 상대 반응에 따라 테이크다운 이든, 후속타격연타 든, 일단 흔들고 때리기 든 다음 동작을 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안면이 열리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보고 때리려는' 욕구가 강한 스피디한 타격가들에게서 종종 찾아볼 수 있는데, 효도르는 타격 뿐만 아니라 순간적인 테이크다운이나 중심 흔들기를 선제공격 후 섞어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런 장면이 많이 나온다.
만일 다른 거한들과 싸울 때와 마찬가지로 안면을 활짝 연 상태로 치고 들어갔다면 효도르가 핸더슨 전에 대한 준비를 전혀 하지 않았다고 봐도 무방했을 것이다. 사실 필자도 당일 경기를 해설할 때는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었다. 그런데 경기 초반 핸더슨에게 타격을 날리는 효도르의 모습을 다시 보면, 머리를 꽤 깊숙이 수그리고 있는 걸 볼 수 있다. 이건 핸더슨과 머리 높이를 맞춘 것이다. 훅와 어퍼컷이 난무하는 중거리에서는 키가 큰 선수라 해도 상체를 일단 세우고 있으면 머리를 박고 날리는 상대 선수의 펀치에 제대로 걸릴 수 있기 때문에, 같이 치고받기 위해선 머리 높이를 맞춰준 후 공격을 해야 한다. 효도르는 적어도 이 점은 본능적으로든 핸더슨을 분석한 결과로든 완벽히 이해하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처음부터 무조건 밀어붙이던 효도르의 전략이 옳았다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효도르는 중거리에서 머리를 깊숙이 박고 훅을 휘두르는 핸더슨의 스타일에 맞설 기본적인 준비는 분명 어느 정도 되어 있었다. 그 증거로 둘의 첫 공방을 보면 효도르는 머리를 오른쪽으로 낮게 박고 잽을 치며 들어간다. 그리고는 로우킥을 차다 잡혀 잠시 밀리는 핸더슨을 추격할 들어갈 때 펀치를 먼저 날리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바로 핸더슨의 라이트를 끌어내기 위해서였다. 효도르는 핸더슨의 라이트가 나오는 순간 몸을 팍 숙인 다음 라이트 펀치 카운터를 날렸다. 이는 헤비급들이 스피드가 빠른 밑 체급 선수들과 싸우거나 스파링을 할 때 쓰는 '끌어낸 다음 때리는' 전형적인 방법이다. 여기까지는 원론적으로 봤을 때 기술 상 크게 잘못된 점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효도르는 도대체 왜 핸더슨에게 치명적인 첫 타를 허용했을까? 그 이유는 핸더슨의 타격 자체보다는 오랜 레슬러 생활에서 길러진 그 '미친 밸런스' 때문이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무섭게 밀고 들어오는 효도르에게 핸더슨은 주특기인 라이트 훅을 날리며 저항했다. 하지만 아까 얘기한 대로 이미 이를 알고 오히려 노리고 있던 효도르는 머리를 숙여 피하며 카운터 라이트 훅을 날렸다. 그런데 이 순간 핸더슨의 예술적 움직임이 나온다. 정말 이는 예술이라고 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다. 이 정도로 큰 공격이 빗나가는 경우, 어느 누구든 앞으로 중심이 과도히 쏠리며 잠시 무방비 상태가 될 수밖에 없고, 이는 상대에게 더없는 기회로 작용한다.
그런데 핸더슨은 앞으로 쏠린 중심을 자연스럽게 수용해 양 손을 바닥에 짚으며 머리를 숙여 효도르의 주먹을 피하는 동시에, 폴짝 옆으로 뛰어 돌면서 효도르에게 몸의 뒤쪽이나 옆쪽을 내주지 않고 정면으로 탁 섰다. 효도르가 때리든 넘어뜨리든 공격하기에 너무나 좋은 사각을 내줄 뻔 했는데 이 움직임 하나로 다 무마시킨 것이다.
원래 공방전에서의 순간 중심 싸움에서 누구보다도 빨랐던 효도르는 급히 핸더슨을 추격해 들어갔고, 이 순간 효도르의 안면은 노출되었다. 효도르의 순간 판단과 달리 이미 완전한 파이팅 포즈를 잡고 기다리던 핸더슨은 웅크린 자세 그대로 큰 레프트 훅을 날려 적중시켰는데, 이 펀치는 이제까지 효도르의 모든 경기를 통틀어 스탠딩 타격전에서 그가 내준 가장 완벽한 펀치였다. 종합격투기 기량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얻어 걸린' 느낌도 꽤 강했던 프라이드 시절 후지타 카즈유키의 펀치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수준 높은 움직임이 녹아 있던 핸더슨의 한 방이었다. 여담이지만 필자는 이 장면을 수십 번은 돌려봤는데,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핸더슨이 움직일 수 있었는지 아직까지도 감탄이 나온다.

충격을 받은 효도르는 핸더슨의 오른쪽 겨드랑이를 파며 클린치를 시도, 핸더슨을 케이지로 밀어붙였는데, 여기서 핸더슨은 멋진 종합격투기식 그레코 레슬링을 보여준다. 일단 니킥을 한 방 날려준 후, 자신의 어깨 쪽에 놓인 효도르의 머리의 귀 쪽을 잡아 옆으로 끌어온다.(2~4번 사진) 사실 이 순간은 효도르가 오히려 핸더슨의 오른쪽 겨드랑이를 더 확실히 제압할 수 있는 찬스이기도 했지만, 효도르는 그런 그레코 패턴을 갖고 있지 못했던 데다, 5~6번 사진에서 보이는 대로 핸더슨이 효도르의 목을 잡은 왼쪽 팔뚝을 이미 효도르의 쇄골 쪽에 놓아 전진을 저지했기에 그럴 수가 없었다. 자연히 효도르의 언더훅은 이미 소용이 없게 되었고, 핸더슨의 목잡기 때문에 둘 사이엔 공간이 생겨 버렸다. 공간은 만든 사람이 활용하는 법, 핸더슨은 번개 같은 라이트 훅을 날리고는 옆으로 빠졌다. 이 순간 라이트 훅으로 반격했지만 맞추지 못했던 효도르의 모습을 언뜻 보면 핸더슨보다 스피드가 떨어져서 타격을 못 맞춘 것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실은 클린치에서 밀린 거라고 봐야 한다. 클린치에서 밀리면 수싸움에서 밀리게 되고, 결국은 이처럼 한 발 늦게 휘두르는 경우가 많이 나오게 된다.
떨어진 핸더슨은 곧바로 라이트 로우킥-라이트 슈퍼맨 펀치의 콤비네이션을 날렸는데, 사실 이 거리는 원래 효도르가 싸우는 거리가 아니다. 처음에 설명한대로 효도르는 원거리를 잡고 싸움을 시작하는 선수로, 상대가 압박을 하면 일단 펀치를 먼저 날리고 붙거나 밖으로 돌아 기세를 꺾는데, 밀리며 정신이 없던 와중에 핸더슨이 순간적으로 효도르가 평소에 결코 주지 않는 거리 안으로 들어와 공격을 시작한 것이었다. 이 정도로 가까운 거리까지 들어와 효도르를 슉슉 어르다가 킥-펀치의 콤비네이션을 낸 사람 또한 핸더슨이 처음일 것이며, 효도르는 그 순간 뭔가 굉장히 찝찝하고 어색한, '남의 거리 안에서 밀리며 맞는' 느낌을 처음 느꼈을 것이다.
계속 치고 들어오는 핸더슨에게 효도르는 밀리면서도 펀치를 날렸다. 이런 장면을 보면 홀리필드가 타이슨을 근거리 공방에서 계속 밀어붙이며 숏블로우를 날리던 게 생각한다. 타이슨이든 효도르든 몸이 뒤로 밀리면서 내는 펀치는 위력이 없다. 같이 밀며 힘 싸움을 하며 때리든 옆으로 빠져 다시 거리와 각을 만들고 때리든 택일을 해야 하는데, 이런 식으로 밀리면서 팔을 휘둘렀다는 건 본능적으로 몸이 반응했다는 걸 의미한다. 그만큼 당황했고, 밀렸다는 얘기다.

이 공방에서 효도르가 밀리는 와중에도 계속 머리를 숙이며 정타를 피해 나가자, 핸더슨은 드디어 주특기를 꺼내든다. 갑자기 왼손으로 효도르의 목을 잡아 누르는 동작을 취한 것이다. 당황한 효도르는 반격을 날리면서도 자연히 몸을 뒤로 빼게 되었고, 핸더슨은 그런 효도르를 어렵지 않게 케이지로 몰았다. 이는 댄 핸더슨이나 랜디 커투어 등 그레코로만 레슬러 출신 파이터들이 더티 복싱을 시작하는 아주 기본적인 패턴이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 선제 펀치를 날린다. (여기서 상대의 중심이 서 있으면 곧바로 겨드랑이를 파고 밀면 된다. 하지만 상대 중심이 같이 깔려 있으면 2번으로 간다.)2. 중, 근거리에서 훅을 날리는 듯 하며 그 팔로 목이나 머리를 잡아 누른다. (레슬링이나 무에타이의 넥클린치 동작이다.)3. 반대 손으로 어퍼컷이나 훅을 날린다. (유명한 더티 복싱이다. 간단히 말해 목잡고 누르며 때리기.)4. 놀란 상대가 머리를 들어 올리려 하며 중심이 설 때, 겨드랑이를 파며 가슴을 붙이고 케이지로 민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