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브인터뷰]은퇴 손찬웅, "프로게이머로 살면서 많은 걸 얻었죠."
[포모스 강영훈 기자]은퇴 후 목회자의 길 걷기로, 올바른 목사 되고 싶어
지난 3일, 팬카페와 미니홈피 등에 글을 남겨 은퇴 사실을 알린 손찬웅지난 주 e스포츠 팬들의 가장 큰 관심을 받았던 뉴스는 바로 화승 프로토스 손찬웅의 은퇴 소식이었다. 고질적인 허리 디스크 때문에 굉장히 오랫동안 출전하지 못했던 손찬웅은 결국 지난 3일, 신한은행 프로리그 10-11시즌 화승의 마지막 경기가 있던 날 자신의 팬카페와 미니홈피를 통해 프로게이머가 아닌 그냥 손찬웅으로 돌아간다고 글을 남겨 은퇴 사실을 알렸다.

은퇴 발표 이후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많은 관심과 격려를 받게 되어 놀랐다는 손찬웅은 예상치 못한 팬들의 반응을 보며 비로소 자신의 은퇴를 실감하게 되었다고 했다.
2006년 데뷔 때부터 그의 모습을 쭉 지켜봐 온 만큼 기자 역시 손찬웅의 은퇴를 실감(?)하기 위해서는 직접 만나야 할 것 같았다. 여름 장맛비가 그치지 않고 있던 지난 7일, 서초구 서래마을에 위치한 화승 오즈 숙소를 찾았다. 그 날은 숙소에서 보내는 손찬웅의 마지막 날이라고 했다.
노란색 티셔츠를 입고 서글서글한 표정을 지으며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을 보니 은퇴가 더욱 아쉽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고마움보다 죄송한 감정이 더 크다"며 팬들에게 전하는 말로 시작된 인터뷰에서 손찬웅은 허리 때문에 고생했던 일들, 목회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 프로게이머를 하면서 만난 고마운 사람들과 기쁘고 슬펐던 일들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놨다.
팬들에게 진작 알렸어야 하는데 고맙고, 죄송해요

서래마을에 있는 화승 숙소에서 손찬웅을 만났다강영훈 기자(이하 강) : 가까운 관계자들이야 다 알았겠지만 팬들 입장에서는 갑작스러운 발표였다. 그것도 공식적인 것도 아니고 미니홈피에. 왜 그랬나?
손찬웅(이하 손) : 경기장을 계속 못 가다가 마지막 경기에 가게 된 거였잖아요?그런데 그 때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팬들이 제가 은퇴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어요. 경기가 끝나고 난 뒤에 팬미팅을 하고 나서 알려지기 시작한 거죠. 숙소로 돌아온 다음 이제는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먼저 팬카페에 글을 올리고 미니홈피에도 남겼어요. 사실은 그 때도 늦었다고 생각했죠. 계속 출전을 못하고 있었는데도 시즌 끝날 때까지 저를 기다리면서 응원하는 분들이 있더라고요. 팬들에게는 은퇴 사실을 더 빨리 알렸어야 하지 않았나 싶어요.
강 : 그럼 은퇴를 결심한 시기는 구체적으로 언제였는지?손 : 올 해 2월에 재입원을 했다가 3월에 다시 복귀했었어요. 치료랑 병행하면서 게임을 하려고 했는데 하다 보니 이건 도저히 안되겠다 싶더라고요. 그 때가 5월이었어요.

강 : 은퇴를 결심하게 된 계기는 역시 허리 디스크 때문일 것 같다. 허리에 대한 통증은 본인 말고는 그 심각함을 느끼기 어렵다고 하던데 얼마나 아팠나손 : 복귀하고 나서 하루는 은행에 가려고 길을 걷고 있었어요. 그런데 저도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어느 새 왼쪽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걷고 있는 거에요. 놀랐죠. 잠을 자면서 다리가 저렸던 적도 있었는데 그게 올 해는 더 심했어요. 통증이 점점 밑으로 내려온 거죠. 예전에는 그래도 허리를 펴고 앉아 있으면 조금 괜찮았는데 이제는 펴고 있어도 앉아 있는 것 자체가 힘들더라고요.
강 : 은퇴에 대한 글을 올리고 나서야 실감이 났다고 하던데손 : 저는 일찌감치 마음을 굳히고 있었고 허리가 아파서 은퇴하는 거니까 '어쩔 수 없지'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나 봐요. 그래서 아쉬움이나 미련은 없었어요. 그런데 막상 포모스 댓글을 보니까 굉장히 많은 분들이 댓글로 격려를 해주더라고요. 솔직히 이렇게 많은 팬들이 관심을 가져줄 줄은 몰랐거든요. "그래도 그냥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아니라 이렇게 많은 분들에게 기억되고 있구나"싶은 생각이 들어서 가슴이 찡했죠.
눈물로 포기했던 스타리그, 잊을 수 없는 '선GG'사건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그 때 그 사건강 : '손찬웅'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손견제'와 '선GG'다. 절정의 기량을 선보이면 서 스타리그 4강에도 올라가고 하던 때가 분명히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어떤가손 : 그 때 생각하면 지금도 좋죠. 잘하던 시절이니까. 하지만 생각할수록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에요. 제가 아프지 않았다고 해서 김택용, 송병구, 허영무처럼 잘 할 수 있었을 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내가 안 아팠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긴 하거든요. 스타리그 16강과 곰티비 8강을 포기했을 때도 병원에 있으면서 굉장히 많이 울었었어요. '왜 나일까. 왜 내가 이렇게 아파야 하나' 속상하고 억울했죠.
강 : 슬픈 얘기다. 결국 허리로 인해 은퇴까지 하게 됐으니.손 : 정말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프기 전에는 건강의 소중함을 몰라요. 아픈 사람으로서 당부 드리고 싶은 건 건강할 때 더 건강을 챙기라는 거에요. 프로게이머들이나 팬 여러분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에요. 후배들을 봐도 연습 시간에 화장실을 갔다 오는 시간을 빼면 거의 쉬지 않고 게임을 해요. 3시간을 한다고 하면 1시간 정도 하고 나서는 5~10분 정도 누워서 스트레칭만 해줘도 큰 도움이 되거든요. 물론 꾸준한 운동이 가장 중요하고요.
강 : '선GG' 사건도 기억에 남을 텐데. 지금 생각해도 황당한 사건이다. 왜 먼저 gg를 쳤나.

경기석에 앉은 모습여기서 잠깐! 선GG 사건이란?2008년 12월 24일, 손찬웅은 바투 스타리그 36강 C조 2차전 3경기 김재춘과의 경기에서 GG(실제로 채팅창에는 zizi yO를 입력하였다.)를 먼저 선언하는 해프닝을 펼치며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비록 상황의 불리함을 인정한 김재춘이 패배를 인정하면서 손찬웅은 16강에 진출했지만 네티즌들은 관례를 어긴 손찬웅을 맹비난했고, 이로 인해 손찬웅은 손지지, 지지용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었다. 이 후 손찬웅은 허리 디스크 악화로 16강 진출권을 포기했다.
이 사건 이 후 한국 e스포츠 협회에서는 경기포기의사 규정을 제정하여 위너스 리그 기간 동안 계도 기간을 두고 프로리그 4라운드 개막일인 4월 11일 부터 모든 공식 리그에 적용 했다. 경기포기의사 규정에 따르면 "경기포기의사 표시는 채팅창에 'gg, 'GG'를 입력하는 것만 인정"하고 "경기포기의사 및 'ppp' 이외의 문자를 채팅창에 입력 시 몰수패와 주의가 주어짐(예 : ㅎㅎ, ㅈㅈ, zizi 등)"
출처=위키백과

6년 동안 많은 일들을 겪었던 중견 프로게이머 손찬웅손 : 그 때 경기가 끝나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무조건 이겼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곧 gg가 나오겠다'라는 생각이 계속 머리 속에 있었죠. 그런데 게임 해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드라군이 죽을 때 '띠리릭' 소리가 나잖아요. 그게 gg가 채팅창에 뜰 때 나오는 소리랑 비슷하거든요. 다 이겼고 gg만 받으면 된다는 생각이 머리 속에 꽉 차 있는데 마침 제 드라군이 죽으면서 그 소리를 낸 거에요. 전 gg가 나왔구나 싶어서 재빨리 gg를 쳤죠. 근데 화면에 제 채팅만 뜨는 거에요. 진짜 당황했죠. 한 15초 동안 움직이지 못했어요. 그러면서 옆 부스에 앉아 있는 재춘이 형이랑 눈이 마주쳤는데 '뭐야' 하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바로 gg를 치고 나가주더라고요. 고맙게도 패배를 인정해 준거죠. 재춘이형은 그 이후에도 "올라가서 잘해. 그리고 한 턱 쏴."라고 했을 뿐 뭐라고 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그 이후로 허리 때문에 기권을 했으니 너무 가슴이 아팠죠.
힘들고 지쳤을 때 겪은 특별한 경험, 새로운 꿈 꾸게 해

그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다.강 : 그래도 은퇴 후에 신학을 공부하겠다는 뚜렷한 목표가 있다는 것에 많은 팬들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특별히 목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나손 : 할머니, 할아버지 때부터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었고 부모님도 마찬가지라서모태신앙이었어요. 그런데 프로게이머 생활을 하면서 몇 년 동안 교회를 못 갔거든요. 그런데 너무 힘이 들어서 교회에 가고 싶은 거에요. 그래서 작년 3월 쯤에 조정웅 전 감독님에게 교회에 가고 싶다고 부탁을 드렸죠. 그랬더니 허락을 해주셨어요. 그 때부터 새벽 기도를 나가기 시작했는데 목사님이 하루는 설교 중에 회개하라는 내용의 기도를 한 적이 있어요. 살면서 그런 적이 없었는데 제가 여태까지 잘못했던 부분들을 진심으로 뉘우치면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갑자기 눈물이 나더라고요. 눈시울이 붉어지고 등이 뜨거워지면서 저 스스로 내가 왜 이러지 하고 있는데 어떤 음성이 들렸어요. 그 때 저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 이 길을 가야겠구나 하고 바로 결심했죠.
강 : 집에서는 어떻게 받아 들이고 있는지 궁금하다손 : 부모님도 교인이지만 목회의 길이 결코 쉽지 않다고 힘들다고 걱정이 많으셨어요. 분명히 신앙심이 깊으신데도 아들한테 선뜻 하라고 하지 못하시는 거에요. 그건 믿음만으로 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그래도 저는 한다고 했죠. 지금은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저를 많이 도와 주시고 가르쳐 주세요. 그런데 그 경험을 하고 나서 제가 기대로 꽉 차 있었다면 지금은 조금 두렵기도 해요. 그래도 노력해야죠.
강 : 나중에 어떤 목사님이 되고 싶은지손 : 굉장히 많은 사람들 앞에서 목회를 하고 싶고 무엇보다 올바른 목사님이 되고 싶어요. 기독교와 목사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굉장히 안 좋더라고요. 돈을 벌기 위해서 목회를 한다는 인식도 있는데 그건 정말 잘못됐다고 봐요. 전 제가 체험한 것들을 나누고 싶을 뿐이에요. 물론 제가 프로게이머를 하면서 우승도 했었고 더 유명했더라면 더 확고하게 제 뜻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신학을 공부해서 올바른 목사가 되는 게 꿈입니다..
프로게이머를 하면서 얻은 최고의 재산은 사람. 그들에게 전하는 말

손찬웅이 꼽은 가장 큰 재산은 바로 동료들과의 인연이었다강 : 2006년도에 데뷔해 꽤 오랫동안 프로게이머 생활을 했다. 혹시 그 시간에 대한 후회는 없는지.
손 : 6년 동안 프로게이머를 하면서 얻어가는 건 많아요. 거기에는 물질적인 것도 있고, 팬들의 사랑도 있지만 정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동료'에요. 이제동, 손주흥, 김경모, 손영훈, 오영종 이렇게는 정말 비밀도 없고 허물도 없는 그런 사이에요. 소중한 친구들과 형들이죠. 제가 고등학교 때부터 게임을 해서 학교 친구들이 별로 없는데 5~6년 동안 같이 먹고 자고 한 동료들이 정말 친한 친구인거죠. 물론 그렇게 지낸다고 다 이렇게 친해질 순 없다고 생각해요. 우리끼리는 서로 마음이 잘 맞았던 거죠.
강 : 마지막 인터뷰인 만큼 이 자리를 통해 고마웠던 사람들에게 한 마디씩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다. 전할 말이 있다면 한 마디씩 해주길.

손 : 먼저 저랑 동갑내기 친구였던 제동이와 주흥이. 6년 동안 있으면서 너희 같은 친구들을 알고 간다는 게 행복하다. 평생 같이 갈 친구라고 생각해. 그리고 경모 형, 내년 시즌 마무리 잘해서 빨리 화승으로 복귀해. 그래서 제동이랑 저그 투톱으로 활약하는 모습 보고 싶어. 또 나보다 빨리 은퇴해 버린 영훈이형. 형이랑은 둘만의 추억이 많은 것 같은데 지금 하는 일 열심히 하고 우리 또 만나자!
마지막으로 영종이형. 형이랑은 플러스 팀 때부터 쭉 알고 지내왔는데 프로게이머로 잘 할 수 있도록 많이 가르쳐줘서 고마웠어. 앞으로도 인생 선배로서 계속 좋은 형으로 있어 줬으면 해. 잘 부탁해!
Copyright © 포모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