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훈의 창과 방패] 스페인행 유망주, 더이상 우리 선수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조회수 2011. 7. 6. 23:0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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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어린 축구 선수들이 스페인으로 가고 있습니다. 김우홍, 김영규(이상 16세)는 UD 알메리아 유소년팀과 5년 장기계약을 맺었습니다. 어제는 백승호(14)가 FC 바르셀로나 유소년팀과 5년 계약을 체결한 게 화제가 됐죠. 또 KBS '날아라 슛돌이' 3기 출신인 열살짜리 이강인이 발렌시아 유소년에 입단했다는 소식도 있었습니다. 올 초에는 13세 이승우군이 바르셀로나 유소년팀에 들어가는 등 올해 들어 유독 많은 유망주들이 스페인으로, 스페인으로 가고 있습니다.

이런 소식을 접한 언론과 팬들은 환영일색입니다. 언론은 "국위를 선양했다" "승부조작으로 침울한 한국축구계에 낭보를 전했다"는 보도를 쏟아내고 있고요. 적잖은 팬들도 "현대 축구를 주름잡고 있는 스페인으로 한 살이라도 어릴 때 가서 선진축구를 배우라"고 반색합니다.

그러나 모든 일은 좋은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이 있게 마련입니다. 동전의 양면, 양날의 검 같은 거죠. 어린 선수들의 스페인 진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선 긍정적인 면부터 보죠. 이런 언론을 통해서도 자주 보도됐고 실질적으로 적잖은 팬들도 동의하고 기대하는 부분입니다. 뭐,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겠죠. 대략적으로 ▲어린 나이에 한국에서 배우기 힘든 선진축구를 배워 기술적으로 크게 향상될 것이다 ▲성인이 돼서 해외프로팀에서 뛰게 되면 한국의 이름을 알리는 동시에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다 ▲국가대표에 뽑힐 경우 월드컵 등 국가대항전에서 대한민국의 성적과 위상을 높일 수 있다는 식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물론 실제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일이고 그렇게 된다면 매우 흐뭇한 일일 겁니다.

자, 이제 동전을 뒤집어보죠. 물론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도 이 부분입니다. 얼핏 생각하기에 '나쁜 게 뭐 있나'라고 하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 유럽프로팀 산하 유소년팀과 장기계약을 체결하고 하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어린 나이에 공부를 하지 않고 축구에 올인하는 게 안타깝다" "세계 최고 선수들과 유망주가 모이는 스페인에서 성공하기 쉽지 않은데 부모의 기대 때문에 너무 큰 모험을 하는 게 아닌가" "성공하지 못할 경우 어린 선수들에게 큰 상처가 될 수 있다"는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위험성이 존재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는 극히 개인적인 부분입니다. 어린 선수가 원하든, 부모가 원하는 스페인행은 개인의 선택에 따라 이뤄진 겁니다. 성공해도 실패해도 결국 자신이 짊어져야할 부분이라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가지 말고 한국에서 있어라"고는 아무도 말 할 수 없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스페인이 왜 우리 어린 재목들을 영입하고 있을까 부터 이야기해보죠. 우리 어린 선수들은 기량이 좋습니다. 그리고 무척 순종적이고 지도자 말을 잘 따릅니다. 또 우리나라에는 운동이든 공부든 뭐든 모두 해외로 나가서 하면 인정해주는 풍토도 강하고요. 게다가 아이들이 하고 싶다고 하면 우리나라 부모들은 어떻게 해든 그걸 이뤄주기 위해서 헌신적으로 매달립니다. 돈도 많이 투자하고 심지어 부모 중 한명이 함께 해외로 가는 경우도 허다하죠. 그리고 우리나라 축구는 냉정하게 말해서 아직 세계축구계 중심은 아닙니다. 아시아에서는 맹호지만 세계축구판에서는 변방이라도 봐야죠. 즉 스페인은 축구선진국에서 축구를 배우기를 갈망하는 한국 어린 선수들의 마음을 꿰뚫고 잠재력이 풍부한 유망주들을 데려가는 겁니다. 유소년팀 계약이라고 하면 대단하지 않습니다. 약간의 장학금 또는 용돈 정도가 주어지죠. 물론 계약금이 있지만 대부분 그리 높은 액수는 아닙니다. 조건이 좋지 않아도 우리 부모, 우리 어린 유망주들은 거의 개의치 않습니다. 그런 훌륭한 프로팀 유스팀에서 축구를 배울 수 있다고 하면 거꾸로 많은 돈을 내려고 하는 게 부모들의 마음이니까요. 쉽게 말하면 "계약조건은 신경 쓰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 애를 받아서 가르쳐만 주신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습니다"라는 식이죠. 그리고 부모, 어린 아이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구단과 장기계약을 했으니까 성인이 될 때까지 이곳에 머물면서 선진축구를 배울 수 있겠구나. 그러면 한국에서보다 더 크게 성공할 수 있을 거야'라고요.

 그런데 스페인 구단들의 노림수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한국 유망주가 잘 성장할 경우 스페인 구단들은 돈방석에 앉게 됩니다. 이 선수를 데리고 있어도 좋죠. 물론 바르셀로나 1군에서 뛸 정도로 성장한다면 그 선수도 좋은 대우를 받겠죠. 그러나 이는 정말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아예 없을 수도 있고요. 대신 스페인 구단들은 우리 선수들을 다른 팀, 다른 리그에 팔 겁니다. 그래서 쏠쏠한 이적료를 챙기겠죠. 어린 시절 몇 년 동안 선수를 가르치고 지도하는데 들어간 돈보다 훨씬 많은 액수가 될 겁니다. 여기까지는 선수도 좋고 스페인 구단도 좋죠. 뭐 나쁜 게 별로 없을 겁니다. 그러나 문제는 스페인 구단들이 우리 선수를 이적시키려고 하는 곳이 K리그가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게 되면 K리그가 우리나라 선수를 영입하는데 수억 또는 수십억원의 이적료를 스페인 구단에 지불해야하는 꼴이 되는 거죠. 스페인에서 유소년시절 공을 찼으면 기량도 좋은 편일 겁니다. 우리나라에 있을 때부터 유망주로 꼽힌 재목인 만큼 열심히만 했다면 K리그에서 뛸만한 기량은 충분히 갖출 거고요. 스페인 선수와 같은 기량을 갖고 있는 한국 선수라고 봐야겠죠. 또 이런 선수가 한국에 오면 '스페인 조기 유학파'라고 하면서 팬들로부터 큰 관심을 받을 겁니다. 기량으로나 마케팅으로나 우리나라 프로구단이 탐낼만 하죠. 그리고 실제로 부자구단들은 이런 선수들을 영입할 겁니다. 스페인에서 어린 시절 5년 안팎 키워준 것보다 몇 배 또는 몇 십배가 넘는 이적료가 K리그 구단 호주머니에서 나가 스페인 구단 금고로 들어가는 겁니다. 얼마 전 국내 고교, 대학선수를 보유하고 있는 에이전트를 만났습니다. 그 분은 "이제 5년에서 10년 후면 K리그가 해외에서 성장한 우리나라 선수를 영입하기 위해서 거액의 돈을 지불해야할 것"이라고 걱정했습니다. 물론 자신의 밥그릇이 줄어들 걸 우려하는 면도 있겠지만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이 같은 걱정에 동의하지 않은 분도 계실 겁니다. 특히 "이런 선수들이 어쨌든 국가대표에 뽑혀 월드컵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이면 되는 게 아니냐"면서 제 의견을 반박하실 수도 있겠죠. 그러나 여기에는 또 다른 함정이 있습니다. 바로 귀화죠. 너무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거 아니냐고요? 절대 아닙니다. 지난 2월 스포탈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김영규와 김우홍은 귀화제의를 받은 적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지금은 나이도 어리고 귀화할 필요성도 못 느끼고 있을 겁니다. 그러나 나중에 성인이 되면 실제로 대한민국 국적을 버리고 스페인 국적을 택할지도 모릅니다. 유럽연합 회원국인 스페인 국적을 갖고 있으면 유럽 어떤 곳에서든 프로선수생활을 하는데 여러모로 유리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무엇보다 대한민국 국적을 버리면 군대를 가지 않아도 됩니다. 그렇게 되면 다른 리그, 다른 팀으로 이적이 무척 수월해지죠. 물론 대한민국 국적을 버리면 대한민국 국가대표는 못 되죠. 한국축구로서는 얻은 게 거의 없이 모든 걸 잃고 마는 겁니다. 이런 일이 없을 거라는 생각은 너무 순진한 바람일지 모릅니다.

 어린 유망주들이 장기계약을 맺고 스페인 프로구단 유소년팀으로 들어가는 게 단순하게 생각하면 환영하고 좋아할 일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앞으로 5년에서 10년 후에는 땅을 치고 후회할 날이 올 수 있다는 걸 명심해야합니다. 재능있는 유망주가 스페인에서 훌륭한 선수로 성장하면 할수록 이들이 한국축구에 이바지할 수 있는 게 점점 줄어들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그저 그런 선수에 머문다면 창피해서 한국은 못오고 유럽중위권리그만 전전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만약 쓸 만한 선수가 K리그에 오려고 한다면 K리그 구단은 많은 이적료를 지불하고 그를 데려와야 합니다. 결국 스페인은 헐값의 장기계약을 통해 우리 유망주들에게 침을 발라놓고 성인이 된 뒤 선수에 대한 권한을 확보하고 있는 거죠. 그리고 안타깝게도 유망주에게 선진축구를 가르칠 여력이 부족한 우리축구계는 이들의 유럽행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처지고요. 우리 유망주들이 성인이 된 뒤에도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한국축구와 한국대표팀을 위해서 뛰어주기만을 기대하는 게 지금 한국축구계가 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일이라는 게 너무나 괴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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