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순교의 신앙 회복돼야"

2011. 6. 29.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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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CBS 박혜진 아나운서]

제주출신 첫 목사이자 순교자인 이도종 목사.

신앙의 유산을 물려받은 이 목사의 장손인 제광교회 이동해 장로와 함께 故이도종 목사의 유적이 남아있는 대정교회를 함께 찾았다.

이동해 장로가 생후 8개월만에 순교하셨기 때문에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고 그에 대한 얘기만 친척들을 통해 전해들었다고 한다.

이도종 목사는 어떤 성격이었냐는 질문에 "할아버지는 성격이 아주 급하고 호탕한 성격이라고 들었다"고 했다.

열정적인 성격이 목사가 되는데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더니 장손인 이 장로는 "당시에 제주에서 평양까지 유학을 가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인데도 숭실중학교와 평양신학교에 2번씩이나 유학한 것을 보면 선각자적인 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겠느냐."고 답했다.

척박한 제주에서 처음에 어떻게 복음을 받아드렸냐는 질문에 그는 "이기풍 목사님이 제주에 오시면서 금성리에서 마을리장을 맡고 계셨던 증조부 이덕련 할아버지가 처음으로 받아들였다고 들었다"며 "당시 이기풍 목사가 시장 한복판 식당에서 식사기도를 하는 것을 본 증조부께서 호기심을 보이며 목사님과 대화를 나누다 복음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하게 되었다고 들었다."고 했다.

대정교회 앞쪽에 들어서니 큰 기념비가 보였는데 바로 '이도종목사순교기념비'였다.

'1892-1948 이도종 목사'의 이름이 새겨진 표지석 옆에는 오래된 순교비도 보였다.

이동해 장로는 이 순교비에 대해 "대정교회 성도들이 산방산에서 직접 돌을 구해다 세워놓은 순교비다"며 특별함을 나타냈다.

대정교회에 자주 오느냐는 질문에 그는"부끄럽게도 한 해에 두 번 정도밖에 오지 못해 미안하다"며 "하지만 올 때마다 할아버지의 품에 온 것처럼 포근한 느낌이다"고 말했다.

할아버지의 순교로 가족들의 아픔이 상당히 컸을 것 갔다고 했더니 이 장로는 "무엇보다 장남이었던 아버지가 큰 충격을 받고 결국 교회를 떠나 세상으로 발길을 돌리셨다"며 "하지만 할머니께서 믿음의 유산을 물려받을 수 있도록 계속 기도해주셨기에 내가 지금의 장로의 자리에서 섬길 수 있게 되었던 것 같다."고 얘기했다.

대정교회를 나서 故이도종 목사의 순교지로 추측되는 곳을 함께 방문했다.

그곳은 당시 인양동 속칭 고린다리로 불리던 곳으로 현재는 대정지역에 위치해 있다.

이동해 장로는 "이도종 목사님은 주일을 앞둔 토요일에 말씀을 전하러 인양동으로 가기 위해 지름길로 가던 중 폭도들에 의해 생매장 당하셨다"고 했다.

순교지에서 이도종 목사를 생각하며 그가 생전에 즐겨 부르던 찬송가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을 부르며 기도하던 이동해 장로의 눈에는 어느덧 눈가에 눈물이 촉촉이 젖어 있었다.

이동해 장로는 한국교회 성도들의 신앙적 자세에 대해 "이제는 기복적인 신앙을 버리고 순교자적인 신앙을 계속 이어가야 한다"며 "그래야 형태가 변질되지 않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을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고 강조했다.

척박한 제주에서 오직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드린 제주 1호 목사인 이도종 목사의 신앙적 용기와 열정이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성도들에게 필요하지 않나 생각해 본다.zzzini@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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