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리플리', 거짓말이 묘한 쾌감을 주는 까닭

정덕현 2011. 6. 7.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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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스 리플리', 무엇이 그녀를 거짓말하게 하나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드라마 공감] "제아무리 동경대를 나왔다고 하더라도 불가능한 일이겠죠." 바로 이 말 한 마디에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미스 리플리'의 장미리(이다혜)는 자신이 실제로 동경대를 나왔다는 의미로 한 말이 아니라, '만일 그런 정도라 하더라도'라는 의미로 이 말을 했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장명훈(김승우)은 달랐다. 그에게 주목된 것은 '동경대'라는 명문 학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 동경대 출신인가요?"라는 장명훈의 질문은 그녀에게 거짓말을 부추긴 결과가 되었다. 그녀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그럼 뭐가 달라지나요?"하고 물었고, 거기에 대해 장명훈은 학력사회의 속내를 드러냈다. "뛰어난 사람을 마다할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어요."

'미스 리플리'는 알랭 드롱이 주연했던 '태양은 가득히'의 주인공 톰 리플리에서 따온 제목이다. 자신과는 다른 세계에 살아가는 이가 되고 싶은 욕망으로 동창을 죽이고 그인 것처럼 행세하다가 나중에는 그로 착각하게 된 리플리. 하지만 '미스 리플리'는 여기에 한국적인 상황을 끼워 넣는다. 청년실업 문제에서부터 도무지 신분상승의 사다리가 보이지 않는 태생적으로 고착되어버린 사회 시스템, 그 중에서도 학력사회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실제로 학력위조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신정아 사건은 이 드라마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신정아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이 충격과 연민, 두 가지인 것처럼 '미스 리플리'라는 드라마가 장미리를 바라보는 시선도 이 두 가지다. 드라마는 점점 뻔뻔하게 거짓말을 해대는 장미리의 행동들을 충격적으로 바라보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왜 그녀가 그렇게까지 거짓말을 해야 했는가에 대한 연민어린 시선을 던져준다. 고아원에 버려져 해외에 입양되었다가 일본에서의 밑바닥 생활을 경험하고, 무작정 한국으로 탈출한 그녀가 가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학력도 없는데다가 도와줄 가족도 없고 돈도 없다. 오랜 일본 생활에 일본어를 잘한다는 것 외에는 몸뚱아리 하나만 가진 셈이다.

이 극화된 상황 속에서 그녀의 선택은 '생존'이다. 살아남기 위해서 뭐든 한다는 것이 그녀의 가치기준이 된다. 동경대 학력을 만들기 위해 친구의 졸업증명서를 훔쳐 위조하고, 새로운 입지를 만들기 위해 연기를 한다. 사라진 일본 총리 딸 유이가 동성애자인 것을 안 그녀는 자신도 동성애자라며 거짓말을 하는데 마치 실제인 것처럼 눈물까지 흘린다. 후에 호텔 회장이 그녀가 유이의 마음을 되돌린 것을 칭찬해주자, 그녀는 "단지 진심을 전하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던 걸요"하고 말했다. 이 말은 거짓말일까 진심일까. 물론 그녀의 진짜 목적은 성공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이건 거짓말이다. 하지만 목적을 위해 거짓말도 불사한다는 그 마음은 진심인 셈이다.

이처럼 거짓말과 진심은 그것을 하는 이의 내면을 파고 들어가면 그 경계가 모호해진다. 동경대 출신이 아닌 이가 자신이 동경대 출신이라 떠들고 다니고 그러다가 정말 착각하게 된다면, 그 액면은 거짓말이지만 그 자체로 하고 싶은 진심을 드러내는 셈이다. 즉 '동경대 출신은 아니지만 출신이고 싶다'는 것이다. 이 드라마가 주목하는 부분은 바로 이 지점이다. 그 거짓말의 욕망이 왜 생겨났고, 그 어처구니없는 거짓말들이 어떻게 통하게 되었는가를 통해 거꾸로 태생적으로 정해지는 우리 사회의 비뚤어진 면을 보고 있는 것. 그녀가 왜 거짓말까지 해야 생존할 수 있었는가를 묻는 드라마인 셈이다.

이 질문은 고스란히 우리가 처한 현실의 문제들을 끄집어낸다. 뭘 해도 학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사회, 그 학력 또한 집안의 재력에 의해 태생적으로 결정되는 사회,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이 거짓말이라고 해도 학력이라면 보는 눈조차 달라지는 사회. 장미리의 거짓말에는 그래서 이 사회의 부조리한 면을 뒤트는 묘한 쾌감이 섞여 있다. 물론 비극적인 결말은 정해진 것이지만.

따라서 엽기적인 장미리의 거짓말 행각을 따라가는 '미스 리플리'는 우리 사회의 치부를 신랄하게 드러내는 드라마다. 흥미로운 것은 이 거짓말들의 바탕 위에서 거짓말 같은 사랑이 생겨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 사랑은 거짓일까 진심일까. 그것이 무엇이든 배경이나 태생이나 학력 같은 인간의 외적 조건들이 그 사람을 결정하고 심지어 마음까지도 덮어버리는 이 시대의 희비극을 '미스 리플리'는 담고 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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