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 전부터 정치가 망가뜨린 과학벨트

신호경 입력 2011. 5. 15. 16:26 수정 2011. 5. 15.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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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벨트위 회의 앞서 확정설 흘려 '평가 정당성' 훼손

위원들 "황당하다"…기초과학硏 '지역배분' 여부도 논란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기자 = 과학기술계가 '기초과학 분야의 큰 선물', '단군 이래 최대 과학기술 프로젝트'라며 꿈에 부풀어 기대했던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이하 과학벨트)가 정치권의 개입으로 출발하기도 전에 좌초 위기에 놓였다.

◇회의 이틀 전 '확정설'…과학벨트위는 들러리? = 지난 14일 일부 언론은 정치권 익명의 인사들을 인용, "대전이 과학벨트 입지로 최종 확정됐다고 알고 있다"고 보도했다.

공식 절차상으로 과학벨트 최종 입지(거점지구)는 오는 16일 오전 과학벨트위원회 분과위인 입지평가위원회 회의와 과학벨트위 전체회의를 잇따라 거쳐 확정될 예정이다.

더구나 교육과학기술부 과학벨트기획단은 15일 오후 현 시점에서야 지난 11일 열린 입지평가위에서 위원들이 매긴 주관적 정성평가 결과를 정량평가 결과와 합산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발표에 앞서 평가 결과 유출을 막기 위해 일부러 실무 일정을 늦췄다는 설명이다.

정경택 교과부 과학벨트기획단장은 '대전 확정' 보도가 나간 직후 "집계가 되지 않아 평가 결과를 아직 총리실에도 주지 못했는데 어떤 근거로 확정됐다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사실 관계를 부인했고, 관련 보도에 대해 이례적으로 정정보도까지 공식 요청했다.

가능성은 두 가지이다.

교과부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후보지별 최종 순위와 점수가 나오지도 않은 상태에서 정치권 인사들이 1차 정량평가 결과 등을 토대로 추측성 언급을 했다가 '확정설'로 퍼졌을 수 있다.

이 같은 '설화'가 의도적이건, 아니면 단순한 실수였건 상관없이, 아직 두 차례 중요한 의사 결정 과정(회의)이 남은 상황에서 정치권의 무책임한 발언은 과학벨트위에 부당한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정치적 의도에서 일부러 '확정설'을 흘리고 입지 결정에 영향을 미치려 했다면, 현 여권이 과학벨트를 정치적 사안의 하나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셈이다.

교과부의 설명과는 달리 이미 정부가 정량·정성평가 합산을 마쳤고, 5개 최종후보지의 순위가 새어나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이 경우 역시, 유출된 정보는 5개 최종 후보지에 대한 것일 뿐 이 가운데 거점지구를 어디로, 몇 개를 정할지는 전적으로 과학벨트위와 그 분과위인 입지평가위가 16일 회의를 통해 결정할 사안이다.

그럼에도 '확정'을 운운한 정치권은 과학벨트위를 말 그대로 '유명무실한' 존재로 간주하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달 7일 첫 과학벨트위 회의에 앞서 "지금 이 시점에서 정부의 과학벨트안(案)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전적으로 위원님들이 이 위원회에서 오늘부터 논의해주실 사안입니다"라고 강조한 이주호 교과부 장관의 말이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과학벨트위·과기계·여타 지자체 "납득 어려워"…정치권이 자초한 '밀실·정략' 논란 = 이 같은 절차상 하자 때문에, 벌써부터 여타 지자체들은 이번 과학벨트 입지 선정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과학벨트 호남권유치위원회는 이날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강운태 광주시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성명을 내고 "특정지역을 염두에 둔 짜맞추기식의 정략적 심사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며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선정을 공정하고 투명하게 하라"고 주장했다.

16일 회의를 앞두고 '무시'당한 과학벨트위원들도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한 위원은 "확정 소식을 듣고 황당했다"며 "다른 위원들도 비슷한 반응"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위원은 "내일(16일) 회의에 가서 경위를 따져 볼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과학벨트 확정설 논란과 관련,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며 "결국 정부 안에서 과학벨트라는 사업의 위치와 성격이 정치적 사안이었다는 점이 드러난 것"이라고 해석했다.

과학기술계는 어렵게 잉태된 과학벨트 프로젝트가 불필요한 정치권 개입과 이에 따른 정당성 훼손으로 출발부터 발목을 잡히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기초과학硏 연구단 '지역 배치' 여부도 논란 = 16일 과학벨트위가 기초과학연구원 소속 연구단 배치를 어떻게 결정할지도 '정치적 결정'과 관련,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기초과학연구원 산하에는 연구 테마 중심으로 독립적인 50개 연구단이 운영되는데, 본원에 절반가량인 25개가 배치될 전망이다.

나머지 25개 연구단의 경우 국내외 역량 있는 대학·연구기관 등을 사이트랩(Site-Lab) 형태로 지정한다는 것이 당초 정부 과학벨트 종합계획 등에 명기된 원칙이다.

그러나 본원에 들어가지 않는 나머지 연구단이 거점지구 최종 후보지 5곳에 올랐다가 탈락한 지역에 집중 배치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과학벨트위의 한 관계자는 "연구원 본원이 융합연구 등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25개 이상의 연구단이 모여 있어야 한다는 과학계의 의견은 어느 정도 반영될 것 같다"면서도 "그러나 본원 외 연구단(사이트랩)의 경우 연구 수월성(역량)을 기준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점을 회의에서 계속 강조했지만 정부도 나름대로 정치적·지역적 판단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인 것 같더라"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따라서 탈락 후보지 가운데 특히 광주나 경북권(대구·울산 포함)에 광주과학기술원(GIST),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포스텍(포항공대), 울산과기대(UNIST) 등을 포스트로 연구단의 상당수를 몰아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 경우 '국내외 수월성(역량)을 갖춘 대학·연구기관 등에 사이트랩(Site-Lab) 형태로 연구단을 지정한다'는 당초 기초과학연구원의 원칙은 훼손되고, '지역적 배분'이라는 정치적 요소가 개입됐다는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shk99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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