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오발탄.. 여론조사 시대는 끝났나

홍영림 기자 ylhong@chosun.com 입력 2011. 5. 8. 06:32 수정 2011. 5. 9.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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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재·보선 20%포인트까지 오차

지난 2010년 6·2 지방선거와 이번 4·27 재·보선에서 여론조사가 선거 결과와 최대 15~20%포인트까지 오차가 발생한 지역이 곳곳에서 나타나면서 여론조사에 대한 신뢰가 급속히 추락했다. 비슷한 시기에 실시된 조사에서 순위가 뒤바뀌는 들쭉날쭉한 조사들도 있었다. 이에 따라 "못 믿을 여론조사"란 뭇매가 쏟아졌고 일각에선 "여론조사의 시대는 끝났다"는 '무용(無用)론'까지 등장하고 있다. 이번 강원지사 보궐선거에서 20%포인트까지 여론조사에서 뒤진 것으로 나왔다가 당선된 민주당 최문순 후보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진정한 여론이 숨어버렸다. 유권자들이 여론조사 질문에 대해 전략적으로 답변하고 있음이 드러났다"라고 비판했다. '전략적 답변'이란 유권자들이 여론조사에서 본인의 의사를 내비치지 않고 투표장에 나가서야 속내를 드러내는 '숨은 표(票)'를 의미한다.

숨은 표는 독일 의 사회학자 노엘레 노이만이 자신의 의견이 사회적으로 열세라고 인식한 경우 침묵하려는 경향을 설명한 '침묵의 나선이론(Spiral of Silence Theory)'과 관련이 있다. 1982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 때 백인 유권자들이 여론조사에서 인종적 편견을 숨기기 위해 거짓으로 지지를 보냈던 흑인 토마스 브래들리가 결국은 백인 후보에게 패배한 데서 유래된 '브래들리 효과(Bradley effect)'도 숨은 표의 일종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유권자들의 전략적 답변, 즉 숨은 표가 실제로 있다면 지난 지방선거에서 선거 결과와 1%포인트 안팎의 오차에 불과했던 출구조사의 놀라운 정확성에 대해선 설명할 수 없다는 주장도 있다. 여론조사기관 메트릭스의 조일상 사장은 "전화 여론조사에서는 거짓으로 말하고 출구조사에서는 진실을 말한다는 가정은 설득력이 없다"며 "여론조사 결과 공표 금지기간(선거 6일 전)에 '빅 이슈'가 계속 발생해서 표심(票心)이 변하거나 선거 막판까지 부동층이 많을 경우엔 조사 결과가 맞지 않을 수 있다"고 했다. 또 "여론조사 응답자 중에선 투표장에 가는 사람과 안 가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실제 투표결과와 달라질 수 있다. 지방선거나 재·보선처럼 투표율이 낮은 선거에선 여론조사가 이것까지 잡아내기는 매우 어렵다"고도 했다. 한 전문가는 "만약 유권자들이 전략적 답변을 한다면 2002년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 이후 정치권에서 후보 경선의 수단으로 여론조사를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는 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여론조사가 정작 '여론'에는 관심이 없고 응답자들을 제비뽑기와 같은 도구로 쓰고 있다. 응답자들은 자신들을 도구로 쓰는 여론조사에 성실하게 답변을 해줄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고 했다.

'숨은 표'와 함께 여론조사의 오류 원인으로 자주 지적받는 것은 응답 거부자의 확산으로 인한 '낮은 응답률'이다. 특히 이번 재·보선에선 한 지역구에서 하루에 500명가량의 표본을 채우기도 어려울 정도로 응답 거부가 심해서 응답률이 10% 미만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500명을 조사하기 위해선 5000명 이상에게 전화를 걸어야 했다는 얘기다. 응답률이 낮을 경우엔 전화조사에 거부한 대다수 유권자의 여론을 반영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반론이 있다. 여론조사는 성·연령·지역을 기준으로 표본을 추출하기 때문에 인구통계적 할당만 잘 이뤄진다면 응답률이 낮아도 대표성 있는 표본을 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산정책연구원의 우정엽 박사는 "응답률에 대해 많은 연구가 이뤄지고 있는 미국 조사협회(AAPOR)에서는 응답률과 여론조사의 신뢰성 간에는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본다"며 "응답률이 높은 여론조사가 보다 정확할 가능성은 있지만 더 중요한 문제는 과학적이고 정확한 표본추출 방식"이라고 했다.

우 박사의 지적처럼 '표본추출 방식', 즉 전화번호부에 등재된 유선 집전화를 이용해서 표본을 선정하고 조사하는 기존의 조사방식에 대해선 여론조사회사 측도 "문제가 있다"고 인정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선 집에서 휴대전화 또는 070 인터넷 전화만 쓰거나 유선 집전화가 있더라도 전화번호부에 등록하지 않은 가구가 70%에 달하는데 이들에 대해선 원천적으로 조사를 포기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최근 학계에서는 전화번호부에 집전화가 등록되지 않은 유권자들이 등록한 유권자보다 진보적 성향을 지니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여론조사의 오류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조지 W 부시 후보가 연승한 2000년과 2004년 대선에서도 여론조사는 망신을 당했다. 하지만 여전히 여론조사는 '무용'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미국 갤럽 편집장 프랭크 뉴포트는 '여론조사(Polling Matters)'란 책에서 "여론조사의 역사는 여론조사에 대한 반대의 역사"라고 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알고 싶어 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의견이 그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여론조사에 대한 끊임없는 의문과 부정적 시각이 제기된다는 것이다.

정재기 숭실대 교수는 "선거기간 중 유권자의 태도 변화를 측정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여론조사다. 앞으로도 많은 쟁점에 대해 여론조사가 실시될 것"이라며 "통신환경의 변화에 따른 여론조사의 정확성을 높이는 제도적·기술적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몇 차례의 오류를 빌미로 여론조사를 외면하는 논리는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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