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민복의 시로 여는 아침] 팔만대장족경
유홍준
고향집 장독대에 / 이제는 다 채울 일 사라져버린 서 말가웃 장독 하나가 있다흘러내린 바지춤을 스윽 끌어올리듯 무심코 난초 잎을 그려넣은 / 장독 앞에서 팔만개의 족적을 본다 / 반죽을 다지고 또 다졌을 팔만개의 / 발자국소리를 듣는다누가 한 덩어리 흙 위에 / 저만한 발자국을 남겨 / 제 발자국을 똘똘 뭉쳐 독을 짓는단 말인가천도가 넘는 가마 속에서 /발갛게 달아올랐을 / 발자국이여 / 뒤꿈치여단 한번이라도 / 저 독 속에 들어갔다 나왔다면 나는 / 대시인이 됐을지도 몰라간장이 익어 나오는 걸 봐 / 不正이라고 못 익히겠어 천벌이라고 못 익히겠어콧물 훔치듯 난초 잎을 올려 친 / 팔만대장,족경이여
소리 없이 눈 내린 새벽, 문 열고 장독대를 바라보지요. 장독 위에 소담스럽게 쌓인 눈을 보고 그날의 적설량을 가늠해보았었죠. 여름엔 장독대에 뒤집어 놓은 소래기가 측우기가 되기도 했었고요. 장독 항아리에 윤기 도는 것을 보고 그 집 아낙의 청결 정도를 가늠하기도 했었지요.
또 장독대의 항아리 수가 부의 척도가 되기도 했었고요. 장독대 항아리 위 대소쿠리에는 찬 보리밥이 있었고 장독 주변에는 도라지꽃, 봉선화, 채송화가 피어 있었지요. 한여름에 소나기 쏟아지면 장독뚜껑 닫으러 가던 다급한 발자국 소리는 지금도 들릴 듯 하네요. 이른 아침에 장독뚜껑 여는 소리와 허리 굽혀 장독 들여다보는 어머니의 모습도 잊을 수 없지요.
장독을 보고 팔만개의 족적과 팔만개의 발자국소리를 듣는 시인의 상상력이 놀랍네요. 무엇보다도 이 시의 압권은 옹기에 '흘러내린 바지춤을 스윽 끌어올리듯', '콧물 훔치듯' 난초가 그려져 있다고 묘사한 대목이네요. 질박한 장독에 딱 어울리는 표현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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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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