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다버린 돼지들 땅위 나뒹굴어..바이러스 확산 방치

입력 2011. 2. 11. 08:20 수정 2011. 2. 1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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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매몰가축 뜯어먹은 짐승들이 '제2전파' 가능성

쓰레기·분뇨 소각 매뉴얼 어긴 '엉터리 방역'

도로에 바싹 붙은 곳서 매몰작업 이뤄지기도

어처구니없는 '부실 처리' 현장

구제역에 뚫릴 때도 그랬지만, 구제역 사후처리 현장에서 바라본 '방역 사후 무방비' 실태는 상상도 못 할 만큼 도를 넘고 있었다.

10일 최대 피해를 입은 경기 남부의 한 돼지농장. 부실 매몰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농장을 에둘러 산기슭을 오르던 중 '악' 비명이 터져나왔다. 머리와 꼬리 일부만 남긴 채 붉은빛이 선연한 돼지의 척추뼈가 발 아래 놓여 있었다. 몇 걸음을 옮기자, 잔설에 코를 드러낸 채 동사한 새끼돼지가 나왔고, 앞뒤로 네마리의 폐사체가 더 모습을 드러냈다. 근처 풀숲에서는 제법 큰 덩치의 들짐승 두마리가 인기척을 느낀 듯, 화들짝 달아나는 소리가 들렸다.

지난달 중순 구제역에 걸려 2천여마리 돼지를 매몰한 농장의 지척에서 목격한, '방역 불감증' 현장의 모습이었다. 구제역으로 오염된 채 버려진 돼지 살점을 뜯어먹은 들짐승과 날짐승들은 그동안 사방 도처로 자유롭게 바이러스를 퍼뜨렸을 것이다. 생각할수록 끔찍한 일이다.

이 농장 입구에는 매몰 당시 쓰다 버린 신발과 비닐 등의 쓰레기더미가 한달 가까이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또 근처의 한 주민은, 돼지를 매몰한 바로 이튿날부터 이동통제가 풀려 차량과 인력이 자유롭게 드나들었다고 전했다. 방역 매뉴얼은 매몰 현장의 모든 물건들을 완전 소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구제역 가축 매몰에만 급급해, 오염된 매몰지의 사후관리는 뻥 뚫려 있었던 것이다.

이번주 초에는 이날 찾은 농장과 10㎞ 남짓 떨어진 또다른 돼지농장에 새끼돼지 네댓마리가 폐사체로 버려져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구제역 발생 확인 전에 죽은 것을 우선 급하게 분뇨 더미에 버려두었다는 것인데, 그 뒤 지자체에서 매몰작업을 하면서도 치우지 않고 그대로 방치했다는 것이다. 당시 제보와 함께 입수한 사진에는 까치 몇 마리가 새끼돼지 근처로 날아드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날짐승들이 구제역의 전파자 구실을 할 수 있다는 중요한 '증거'를 포착한 장면이었다.

이날 다시 찾은 농장에서는, 새끼돼지가 죽어 있던 그 장소에 사료 더미가 일부 덮여 있었다. 도청의 점검을 앞두고 바로 전날 지자체 직원들이 지나간 뒤의 '흔적'이었다. 한 방역 전문가는 "구제역 발생농장에서는 분뇨를 비닐로 덮은 채 발효시키거나 땅에 묻어야 하고, 사료도 오염됐기 때문에 소각하거나 땅에 묻어야 한다"고 말했다. 매몰을 마친 이들 농장에서 방역 매뉴얼은 있으나 마나였고, 방역당국 또한 관리감독을 완전히 손 놓고 있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지방도 변에서는 마침 매몰 작업이 한창 벌어지고 있었다. 포클레인 두대가 동원돼, 200여마리의 돼지를 묻을 땅을 파고 있었다. 매몰지는 도로에서 한 치도 떨어지지 않은 채 바싹 붙어 있었다. 구제역 매뉴얼(긴급행동지침)의 '매몰요령'은 '집단가옥·수원지·하천 및 도로에 인접하지 아니하고 사람 또는 가축의 접근을 제한할 수 있는 장소'에 매몰하도록 엄격히 규정하고 있다.

공무원과 동원된 인력이 작업을 하는 동안, 자동차와 행인들이 수시로 지나다니고 있었다. 가장 지독하게 오염된 매몰지 현장과, 가장 뚜렷한 구제역 매개체라는 인력·차량과의 거리는 숨소리를 서로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들 사이에는 바이러스를 차단할 소독약도 시설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글·사진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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