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전 인물열전] (37) 기자(箕子), 은나라 주왕에 간언하다 노예로

2011. 2. 5.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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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정말 '기자조선'을 만들었을까

은(殷)왕조 말기 주왕(紂王)은 극악무도했다. 공자가 은나라 어진 세 명으로 손꼽은 기자(箕子),미자(微子),비간(比干) 같은 충신들도 주왕에 의해 죽임을 당하거나 내침을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우리에게 결코 낯설지 않은 기자는 은나라 주왕의 숙부라는 설이 유력한데,이름은 서여(敍余) 또는 수유(須臾)다. 기(箕)나라에 봉왕(封王)돼 기자로 불렸다. 주왕이 갖은 악행을 저지르고 주지육림에 파묻혀 정사를 게을리하자 기자는 소신껏 간언했다.

《사기》의 '송미자세가(宋微子世家)'에 보면,주왕이 처음에 상아로 만든 젓가락을 사용하기 시작하자 기자가 한탄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이 상아 젓가락을 사용하면 반드시 옥으로 된 잔을 쓸 것이고,옥잔을 쓰면 반드시 먼 곳의 진귀하고 기이한 물건들을 탐낼 것이다. 수레와 말,궁실의 사치스러움이 이것으로부터 점점 시작될 것이니 (나라는) 흥성할 수 없을 것이다. "

사람의 욕망은 끝이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주왕은 애첩 달기와 함께 더욱 음란하고 잔혹하게 굴었다. 그러자 누군가가 기자에게 이 나라를 떠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기자는 "신하된 자가 간언하였으나 듣지 않는다고 떠나 버리면 이것은 군주의 잘못을 기리는 것이니 나는 차마 떠날 수 없다"며 오히려 머리를 풀고 미친 척하다 결국 노예가 됐다. 그러고는 숨어 지내면서 거문고를 뜯으며 슬픈 마음을 달랬다.

그런 기자를 찾아 치국의 도를 들으려 한 왕은 주나라 무왕이었다. 무왕이 기자에게 백성들을 안정시키고 사람들을 화목하게 하는 방법을 알려 달라고 청하자 기자는 단호하게 "일상의 법도를 잃게 된 것이 나라가 어지러워진 이유"라며 이렇게 말했다.

"옛날에 곤(우임금의 아버지)이 홍수를 막으면서 오행(五行)의 질서를 어지럽혀 하느님이 크게 노여워 홍범(洪範 · 큰 법도) 아홉 가지 등을 주지 않아 일상의 원칙이 깨져 버렸습니다. 곤이 벌을 받아 죽자 우(禹)임금이 그 일을 이어받아 일으킨 것입니다. 하늘은 즉시 우임금에게 홍범 아홉 가지를 주니 일상의 법도가 그 순서를 얻게 됐습니다. "('송미자세가')

기자의 충언은 일상의 원칙과 법도를 회복하라는 말로 요약된다. 이 말을 듣고 난 무왕은 즉시 기자를 조선(朝鮮)에 봉했으나 그를 신하로 대우하지는 않았다고 사마천은 기록하고 있다. 사실상 이 기자동래설은 사마천 이후 《한서》 지리지 연조(燕條)에도 나오듯이 기자가 조선에 와서 예의(禮儀),전잠(田蠶),직작(織作),팔조지교(八條之敎)를 가르쳤다는 내용으로 이어지면서 어느 정도 타당성 있는 설로 받아들여지기도 했지만 기자라는 인물이 기원전 1100년께 사람인데 공자도 이름만 언급했을 뿐 동래설을 언급하지 않았고 사마천과 반고 이후의 문헌에는 기자동래설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입지는 좁아 보이고 설득력도 부족하다.

여하튼 기자는 옛 은나라의 도읍지를 지나가다 궁실이 훼손돼 거기에 벼와 기장이 자라는 것을 보고 상심해 소리 내어 울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다고 한다. 울먹이려니 아녀자들처럼 보일까 해서였다. 그가 '보리이삭(麥秀)'이란 시를 짓기도 하며 망국 은왕조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니 은나라 유민들이 그의 시를 듣고 눈시울을 적셨다고 한다.

군주의 잘못을 지적하며 왕조를 지키려다 유폐된 기자와 충신의 간언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파멸을 자초한 주왕. 이는 왕조가 말기에 들거나 제왕(왕)이 장기 집권하면서 생기는 비극이다. 진시황과 한무제,유비,손권,당 현종 등도 한결같이 말기에 들어서면서 자기관리에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냈다. 의심이 많아지고 측근들을 경계하면서 자신만의 제국으로 빠져드니 충신들은 설 자리를 잃고 간신들만 설쳐대며 자신뿐만 아니라 국가도 위기에 직면했다. 이 같은 역사의 원리는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다.

김원중 <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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