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브인터뷰]STX의 대들보, 환한 웃음이 어울리는 김구현을 만나다

2011. 2. 2.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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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모스 강영훈 기자]나쁘지 않았던 2010년, 2011년은 더욱 멋지게!

"2011년에는 꼭 우승 한 번 해야죠"

훤칠한 키와는 상관 없이 천진난만한 표정과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얘기하는 김구현의 모습은 마치 아이 같았다. 목소리만 들어 보면 이제 막 게임을 시작해서 우승하고 싶은 욕심을 드러내는 신인 선수의 각오 같지만 어느덧 김구현은 데뷔 5년차를 맞은 중견 프로게이머가 됐다. STX의 에이스로서 대들보 역할을 튼튼히 해 온 김구현은 사실 '우승'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것을 이뤄낸 정상급 선수이기도 하다. 생각해 보라. '택뱅리쌍'의 시대에 가려져 있어서 그렇지 '2010년 e스포츠 대상'에서 올 해의 프로토스로 꼽힌 것은 '택' 김택용(SK텔레콤)도 아니요, '뱅' 송병구(삼성전자)도 아닌 바로 김구현이었다.

"2010년에는 저 나름대로 발전이 있었던 한 해라고 생각해요. 물론 큰 기회가 있을 때마다 번번히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결국 결승전에도 가 보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올 해는 꼭 우승 한 번 해야죠. 저한테도 언젠가는 봄날이 오지 않겠어요?"

'봄날이 온다'라. 사실 바로 며칠 전 김구현은 프로리그에서의 지긋지긋한 연패를 끊어내며 '봄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고 그 인상적인 한 마디는 다시 한 번 김구현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지게 만들었다.

설 연휴를 하루 앞둔 지난 1일, 마침 서울에서 구정을 지낸다는 김구현을 숙소 근처에서 따로 만났다. 꽤 오랫동안 영하 10도를 넘나드는 한파가 기승을 부렸던 날씨도 때마침 '확' 풀렸던 오후, 유니폼을 벗고 다소 가벼운 차림으로 그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 꿈에도 생각 못했던 스타리그에서의 8강 탈락

김구현은 최근 온게임넷에서 열렸던 '박카스 스타리그 2010' 4강을 앞두고 같은 팀 후배인 김현우에게 패하며 탈락했다. 우승이 목표인 선수로서 개인리그에서의 탈락은 늘 아쉬움으로 남을 테지만 '리쌍'이 떨어졌던 이번 스타리그에서의 탈락은 더욱 아쉬울 수 밖에 없다.

"그 때는 나름대로 프로리그도 그럭저럭 이기고 있었고 MSL에서도 16강에 올라가 있었고 경기력에도 자신이 있었는데 긴장의 끈을 늦춘 것 같아요. 아무리 같은 팀 후배고 처음 올라온 신인이라고 해도 8강인데, 마침 첫 세트도 따내고 해서 방심했죠. 정말 해서는 안 되는 말이지만 현우랑 하기 전에 제가 질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거든요"

그 때의 패배로 '우승'이라는 목표가 또 다시 좌절되면서 기회라는 것이 손에 잡힐 듯 말 듯 하면서 빠져 나가는 것을 느끼고 말수도 많이 줄어드는 등 힘든 시기를 보냈다고 했다. 그 여파인지 김구현은 프로리그에서도 한참을 헤매며 6연패까지 기록하는 등 헤매는 모습을 보이며 팬들을 걱정시켰던 것이 사실이다.

송병구 대 정명훈(SK텔레콤)의 대결이 펼쳐졌던 지난 스타리그 결승전에서는 정명훈이 완승을 거두면서 생애 첫 우승을 차지했다. 선수들을 조금 더 가까이에서 살펴볼 수 있는 입장에서 볼 때 정명훈과 김구현은 닮은 구석이 많은 선수들이다. 분명히 재능이 있고. 욕심이 있는 선수들이라는 점과 그만큼 팀 내에서 가장 열심히 하는 선수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정명훈이 거둔 생애 첫 우승은 김구현을 더욱 자극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도 병구형이 우승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명훈 선수가 준비를 정말 잘해서 이기더라고요. 정명훈 선수가 우승하는 모습을 보면서 부럽기도 하고 저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죠. 다만 너무 조급하게 생각은 안 하려고요. 제가 성격이 급해서 꼭 이번 시즌에 우승해야지 하는 생각보다는 편안하게 마음을 먹는 게 나을 것 같아요"

▶ 언젠가는 뛰어 넘어야 할 '택뱅리쌍'이라는 산맥

"택뱅리쌍이 있어서 우승하기가 더욱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실제로 그들의 존재가 목표를 세우고 하는데 있어서 부담스럽지 않아요?"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인데 그만큼 잘하는 선수들을 뛰어넘고 우승을 해야 성취감이 더 클 것 같아요. 그 선수들이 잘 하고 있기는 한데 이번에도 그랬듯이 떨어지기도 했잖아요. 그냥 없어지는 게 아니라 분명히 누군가에게 져서 떨어진 거고. 모르는 거 같아요. 프로게이머들의 승부는 해 봐야 알죠"

억지를 부려 보자면 '택뱅리쌍'만 없었어도 김구현은 이미 한 번쯤은 우승을 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만큼 중요한 길목에서 김구현은 그들에게 좌절을 맛봐야 했고 특히 자신의 첫 결승 무대였던 '곰TV MSL 시즌4'에서 우승 트로피를 빼았아 갔던 이제동(화승)은 이후에도 김구현의 천적이 되어 숱한 패배를 선사했다.

"제동이형이랑 첫 결승전 했을 때를 생각해 보면 많이 아쉬워요. 1세트도 괜찮게 해서 이겼고 나머지 경기들도 충분히 할만했는데 큰 무대에 대한 경험이 없어서인지 그렇게 뒤집어지더라고요. 제동이형이 잘 한 것도 있지만 말 그대로 제가 정신줄을 놨죠"

특히 '리쌍'에게 약한 모습을 보였던 김구현은 MSL과는 다른 무대지만 어쨌든 결승전 무대였던 'WCG 2010'에서도 이영호(KT)에게 패하며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그 때 경기를 바로 옆에서 지켜본 소감을 말하자면 김구현은 정말 잘했는데 이영호는 정말 정말 잘했다고 해야 할까? 저렇게 잘했는데도 지면 뭔가 '벽'이 느껴질 만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정작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처음에는 겁 없이 덤볐다고 한다면 계속 지다 보니까 그런 게 생기긴 생기더라고요. 상대 실력을 인정은 하는데 그 벽을 깨려고 노력하는 중이죠. 계속 같이 가야 하는 선수들이니까 만나기 싫다거나 피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은 안 해요"

▶ 2010년에 좋았던 일들? 역시 결과물이 최고!

분위기가 점차 어두워 지는 것 같아 '리쌍'의 이야기를 그만두고 지난 해에 어떤 순간들이 가장 좋았는지 좋았던 기억을 떠올려 보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작년 한 해 동안 김구현에게 가장 좋았던 순간은 언제죠?"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결과물이 나왔던 일들이 좋았죠. WCG에 나가서 은메달을 딴 것도 기뻤고요. 금메달은 아니지만 처음으로 국가 대표로도 뽑혀 봤고 미국에도 가 보고, 또 큰 기대도 없었는데 e스포츠 대상 시상식에서 올 해의 프로토스로 뽑힌 것도 좋았어요. 상금도 없고 그냥 상만 받은 건데 뭔가 인정 받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되게 좋았어요"

"좋았던 순간은 성적이 잘 나왔을 때인데 4강도 계속 가고 했는데 떨어지면 바로 최고의 순간이 최악의 순간으로 바뀌는 거잖아요. 프로게이머는 성적이 가장 중요하니까요"

"뭐 재미있었던 일은 없었어요? 기억에 남은 일이라거나"

"기억나는 일 많죠. WCG 때문에 미국에 갔을 때 물론 대회를 하러 간 거지만 머리도 식힐 수 있었고 여행을 갔다 온 기분이 들었죠. 팀에서 상하이 엑스포에 시범경기 하러 중국에 갔던 일도 좋았고요. 그렇게 밖으로 다녀 보니까 영어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말 그대로 견문이 넓어지는 느낌? 그래서 좋았던 것 같아요. 그런 거 말고는 프로게이머 생활이 꽤나 단조로운 생활이라서 휴일에 친구들이랑 놀았던 일들이나 소소한 기억들이 재미있었던 일의 전부인 것 같아요"

"고향이 대구인 걸로 아는데 서울에 친구들이 있어요?"

"프로게이머였다가 은퇴한 친구들이나 지금 선수들 중에서 친한 사람들? 바로 옆에 MBC게임에 있는 박수범 선수는 중학교 동창이라서 친한데 수범이 때문에 경종이 형이랑도 친해지고 뭐 그런 식이죠. 수범이는 요즘 올킬 한 번 하더니 좀 까불까불 하더라고요.(웃음) 그렇게는 가끔씩 커피 한 잔 하면서 얘기도 하고 그런 사이에요"

▶ 김구현은 노력형 혹은 재능형?

알고 보니 김구현은 MBC게임의 박수범과 중학교 시절부터 같이 프로게이머를 준비했던 친한 친구 사이였다. 경력이나 활동상으로 봤을 때 김구현의 출발은 친구보다 빨랐고. 화려했다. 문득, 김구현이라는 프로게이머는 노력형과 재능형 중 어느 쪽에 가까울지 궁금해졌다.

"본인은 스스로 노력형 인재와 재능형 인재 중 어느 쪽인 것 같아요?"

"딴 사람들은 어떻게 볼 지 모르겠는데 딱 반반인 것 같아요. 어느 정도 재능도 있고 노력도 하고. 둘 중에 하나는 극을 달려야 하는데 그게 단점이 될 수도 있겠죠. 게임을 하다 보면 (이)영호 같은 경우는 정말 재능이 극에 달했구나 하는 생각도 드니까요"

"예전에 '팀 내에서 가장 열심히 하는 선수는 김구현이다'이런 얘기를 들었는데 지금은 어때요? 아직도 가장 열심히 하는 선수라고 자부할 수 있어요?"

"모르겠어요. 요즘은 누구나 다 열심히 하니까. 오히려 저는 밤늦은 시간에는 게임이 잘 안돼서 다른 선수들보다 한 시간 정도 일찍 자는 편이죠. 아마 어느 게임단을 가도 열심히 하지 않는 선수는 없을 거에요. 연습을 정말 열심히 하느냐에 대한 물음에는 말이 아닌 결과로 대답해야겠죠"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대답하는 김구현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혹시 지금 생활에 만족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우려가 들기도 했다. 얘기를 쭉 나눠본 결과 '택뱅리쌍'에게는 있고 김구현에게는 없는 것이 혹시 '독기'는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구현은 이런 우려에 대해 '그럴지도 모르겠다'며 고민하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이내 '저는 충분히 욕심 많은 사람'이라며 눈동자를 빛냈다.

"지금 생활에 만족하고 있어요. 하지만 속으로는 주변 사람들이 불편해 하지 않을 정도로 독기를 품고 있어요. 윤환이형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욕심이 많은 선수들이죠.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팀원들이 악마라고 부를 때도 있어요. 아마 장난이겠죠?(웃음)"역시 우려와는 달리 5년차 프로게이머다운 노련한 대답이구나 싶어 마음이 놓였다.

▶ 2011년에는 꼭 봄이 왔으면!

"그럼 2011년은 어떻게 보내고 싶어요? 이루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을 텐데"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성적이 가장 중요하죠. 프로리그에서나 개인리그에서 모두 우승하는 상상을 많이 해요. 또 조금 더 재미있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성적을 잘 낸다는 것을 가정하고 힘들 때나 스트레스 받을 때 힘이 되어 줄 친구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그리고 그 친구가 여자였으면 좋겠고?"

"아니, 그냥 친구요! 생각해 보니 여자친구면 참 좋겠네요.(웃음) 그냥 웃으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다 보니까 그런 생각도 드네요. 그런 면에서 프로게이머 중에서는 부러운 사람이 병구형이에요. 여자친구랑 오래 사귀면서도 성적도 잘 내고 자기관리를 잘 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죠"

"김구현 선수는 자기관리 잘 하고 있어요?"

"2011년에는 다른 건 둘째치고 운동이라도 꾸준히 잘 했으면 좋겠어요. 지금도 하긴 하는데 경기가 있다는 핑계로 빠질 때가 많죠. 경기 전날 무리하면 안되니까 하면서 자기 합리화를 하는 거에요. 같이 하는 선수들이라도 안 그러면 저도 같이 할 텐데 윤환이형이나 대근이나 다들 비슷해서..(웃음)"

정말 문제가 있는 사람은 자신의 문제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다. 그런 면에서 김구현은 자신이 뭐가 부족하고 무엇을 채워야 할 지 아는 선수임에는 틀림 없다. 길지 않은 인터뷰였지만 김구현은 마지막으로 자신의 2011년 각오와 함께 팬들에게 새 해 인사를 전하는 것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어쨌든 2011년은 2010년보다 더 좋은 한 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죠. 조금씩 발전했다고 생각하지만 프로게이머라면 우승을 꼭 한 번은 해야 하니까요. 이미 격차가 벌어졌지만 2011년은 이제 시작이니까 택뱅리쌍 선수들에게도 한 번 쯤은 앞서 나갈 수 있도록 해보고 싶어요. 특히 같은 프로토스로서 택뱅 선수들에게는 더 그렇죠. 지금보다 더 잘 해서 2011년에도 올 해의 프로토스로 뽑히고 싶고, WCG도 잘 해서 다시 한 번 국가대표로 활약하고 싶고. 얘기하다 보니까 할 게 정말 많네요. 또 팬들에게는 요즘 웃는 모습을 잘 보여 드리지 못해서 죄송했는데 항상 응원해 주시는 부분에 대해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저와 함께 2011년은 더욱 행복한 한 해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새 해 복 많이 받으세요!"

kangzuck@fom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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