氣道없이 태어난 '해나(생후 5개월 신생아)' 희망을 만나다


"해나(Hannah)야. 우리 아기 잘 잤어? 오늘은 대나(Dannah) 언니도 같이 왔어. 처음 만나는 거지? 대나야, 동생한테 인사해야지. '해나야, 아프지 마' 하면서 손 한번 잡아주자."
31일 정오쯤 서울종로구 연건동 서울대어린이병원 4층 신생아중환자실에서 김선영(가명·34)씨가 첫째 딸 대나(2)를 번쩍 들어 올려 요람에 누운 둘째 딸 해나에게 인사시켰다. 대나가 손에 든 곰 인형을 해나에게 안겼다. "해나, 유어 시스터. 세이 헬로(해나야, 네 언니란다. 인사하렴)"라고 말하던 캐나다인 아빠 케플러(가명·35)씨가 이내 돌아서서 눈물을 훔쳤다.
작년 8월 22일 태어난 해나는 기도(氣道)가 없이 태어나 숨을 쉬기 어려웠다. 병명은 '선천성 기도 무형성증'이다. 해나는 입에 물린 산소 호스로 호흡하고, 배에 구멍을 뚫어 위에 연결한 호스로 영양분을 공급받고 있다. 의사 이은희(33)씨는 "의학적으로 보고된 사례가 10건에 불과하고, 최장(最長) 생존 사례도 고작 6세"라며 "식도 일부를 떼어내 기도로 사용한 수술 사례가 있긴 하지만 생존율을 가늠할 수 없다"고 했다.
김씨는 "(출산 후) 누운 채로 해나를 봤는데 얼굴은 우는 표정인데 우는 소리가 나지 않았어요. 성대가 없어서 소리 내서 울지도 못해요. 출산 전 기형아 검사에선 괜찮았는데…"라며 울음을 터뜨렸다. "처음엔 우리 가족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형편도 어렵고, 수술 후 상태도 불확실하고…. 불쌍한 우리 아가…. 너무 미안해서…." 원어민 영어 강사인 남편 케플러씨의 월수입 200만원으로 몇 번이 될지 모를 수술비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다. 부부는 치료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작년 12월 중순 해나가 있던 신생아중환자실에 국제전화가 걸려왔다. "해나를 수술해 줄 분을 섭외했습니다. 치료 비용을 지원해 줄 자선단체와 병원을 구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해나에게 미국에서 치료받을 기회를 주고 싶습니다." 미국 시카고 세인트 조셉 병원 간호사인 재미교포 린제이 손(59)씨였다.
손씨는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병원 신생아중환자실에서 22년 근무하고 작년 6월 퇴직한 신생아 전문 간호사다. 작년 10월 한 달 동안 방한해 이 병원 신생아중환자실에서 간호사들을 교육하며 해나를 만났던 손씨가 해나를 잊지 못하고 전화를 건 것이다.
손씨는 "매일 아침 '굿 모닝, 하우 아 유(잘 잤니, 좀 어때)?'라고 인사하면 활짝 웃고 누운 채 발길질하던 해나 얼굴을 잊을 수 없었다"고 했다. "해나 사연을 알고 너무 가슴 아팠습니다. 답답한 마음으로 귀국했는데 계속 해나 생각이 나서 한 달쯤 지나 '(해나를) 그렇게 놔둬선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손씨는 지인들에게 해나 사연을 소개하며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다 자신이 근무한 일리노이주립대 병원의 한 소아외과 전문의에게 해나의 CT(컴퓨터 단층촬영) 사진을 보여줬고, "한번 해 보자"는 답변을 얻었다. 손씨는 "일리노이주립대 병원과 시카고의 한 어린이병원이 해나에 대한 지원을 검토 중이고 현지 자선단체 한 곳에서도 지원받을 수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1975년 간호학을 공부하러 미국에 간 손씨는 지금은 사별(死別)한 남편을 만나 미국에 정착했다. 손씨는 "미숙아로 태어나 건강해져 집으로 가는 아기들을 볼 때면 삶의 희망을 느끼곤 했다"며 "해나가 단 몇 년을 더 살더라도 생(生)을 이어가는 데 도움이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병원측이 주선해 해나 부모의 동의를 얻은 손씨는 해나의 '법적 보호자'가 되기 위한 서류 작업을 진행 중이다.
그러나 해나를 미국까지 데려다 줄 항공편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병원 측이 제공할 의료 장비와 의료진 2명이 동승하기 위해선 비즈니스석 2개 정도의 공간이 필요하다. 이동 비용만 약 2500만원이 든다. 엄마 김씨는 "린제이 손씨 덕분에 좋은 치료 기회가 생긴 만큼 해나를 꼭 미국으로 보내 치료받게 하고 싶다"고 말하며 해나 이마에 입을 맞췄다.
31일 오후 서울대 어린이병원 신생아중환자실에서 기도가 없는 선천성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생후 5개월 해나(Hannah)가 문병 온 엄마와 아빠를 만났다. /오종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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