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과 이명박 누가 군 홀대했나
이명박(MB) 정부에 국방 철학이 안 보인다는 비판은 절반만 맞다. 적어도 하나의 확고한 방향성은 읽히기 때문이다. ‘돈 드는 일은 내 임기 중에는 안 한다.’ MB표 국방 정책의 핵심은 이 한 줄로 요약된다(〈시사IN〉 제160호 기사 참조). 2005년 노무현 정부가 입안한 ‘국방 개혁 2020’을 MB 정부 들어 어떻게 수정했는지 자세히 들여다보면, 위 원칙이 일관되게 관철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동안 정부와 군이 구체적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던 ‘국방 개혁 2020’ 원안(2005년)과 MB 정부의 1차 수정안(2009년)을 일부 입수해 비교해봤다. 국방 개혁 2020 원안은 2020년까지 순수 국방 개혁 비용으로 67조원, 전체 국방비 기준으로 621조원을 투입하는 계획이었다. 군의 문민 기반 확대, 병력 감축과 전시작전권 회수에 대비한 전력 구축, 육군·해군·공군의 균형과 합동성 강화 등을 그 핵심으로 한다.
이 계획은 MB 집권 2년차인 2009년 대폭 수정된다. 전체 국방비 투입액은 599조원으로 줄었고, 순수 개혁 비용이 얼마인지는 추산조차 하지 않았다. ‘수정안 주요 원칙’으로 제시된 내용을 보면, ‘재정 운용 고려 전력 소요 재검토’라는 표현이 눈에 띈다. 그 아래에는 ‘한·미 연합 전력의 상호 운용성 증진’과 ‘개혁 초기 대규모 외자가 소요되는 전력의 재판단’이라는 표현이 딸렸다. 쉽게 말해, 전시작전권 환수를 미룬 기간만큼 미군 전력에 더 기대고, 돈이 많이 드는 해군·공군 첨단 전력 도입은 최대한 미루겠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해군·공군 전력 도입 계획은 줄줄이 순연되었다. 해군부터 보자. 원안의 14개 전력 항목 중 13개가 순연 결정이 났다. 차기 기뢰 탐색함, 해상 작전 헬기, 차기 잠수함, 상륙 공격 헬기 등 사실상 모든 전력의 도입 시기가 최소 1년에서 최대 7년까지 미루어졌다. 이 외에 수정안에서 새로 추가된 전력 항목이 4종 있기는 하지만, 이 중 3종은 2017년 이후에나 도입이 시작된다. 공군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다. 14개 전력 항목 중 10개가 일정이 뒤로 밀렸다. 특히 전시작전권 환수와 연계된 전력 순연이 눈에 띈다. 공중 조기경보 통제기, 대형 수송기, 패트리어트 등이 미루어지거나 축소되었다. 계획의 골격은 바뀐 것이 크게 없고 단지 돈을 내는 정부가 어디인지만 조정된 ‘기묘한 수정안’이다. 11월30일 국회 국방위는 정부가 제출안 국방 예산 31조3000억원에 7000억원을 얹은 32조원을 통과시켰다. 이 예산 중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정부 제출안에는 없던 차세대 전투기 도입사업(3차 F-X 사업) 예산 157억원이 생긴 것이다. 이 예산은 군이 요구한 액수를 기획재정부가 전액 삭감했다가 국회에서 부활했다. 어찌된 일일까.
최소 1년에서 최대 7년까지 전력 순연 3차 F-X 사업은 국방 개혁 2020에 포함된 주요 공군 전력 내역에도 포함된 항목이다. 원안에서 2014~2019년 도입이 예정되었던 이 사업은 2009년 수정안에서 1년이 순연되었고(2015~2020년), 연도별 도입 계획을 보면 사업 막바지에 도입 계획이 집중돼 사실상 3년 이상 순연된 것이라는 평가를 받던 사업이다. 수정안대로 2015년에 도입하더라도 2011년부터는 기초연구·기종 물색 등에 예산을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 군사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그러나 기획재정부는 이 예산을 전액 삭감해 사실상 2015년 도입조차 불투명하게 만드는 예산안을 짰다. 이에 국회 국방위 의원들이 공군 전력 공백이 과도하게 길어질 것을 걱정해 예산을 되살린 것이다. 군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F-X 사업 예산 삭감 시도는 하나의 사례일 뿐, 해군·공군에서는 ‘정부가 도입 의지가 없다. 첨단 전력 도입은 물 건너간 거 아니냐’고 자포자기하는 분위기가 많다”라고 귀띔했다. 첨단 전력 도입과 전작권 회수를 미루어둔 빈자리는 돈 안 드는 ‘머릿수’로 채우겠다는 계획이다. 국방 계획 2020이 목표로 잡았던 방향과는 정반대다. 병력 감축 계획을 보자. 원안은 군 병력 15만5000명을 줄여 50만명을 유지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수정안에서는 감축 목표가 13만8000명으로 줄었다. 세부 감축 계획을 보면 더 노골적이다. 2009~2014년 6년간 감축 목표는 3만7000명에 불과하고, 2015년~2020년 6년간 감축 목표는 10만1000명이다. 이 역시 첨단 전력 도입 순연과 비슷하다. 현 정부는 병력 감축 부담을 거의 지지 않으면서 다음 정부에 급격한 감축 부담을 떠넘겼다. 같은 ‘머릿수’라고는 해도 ‘병’과 ‘별’은 대접이 다르다. 원안은 군단 4개 사단 23개를 감축하기로 했지만, 수정안은 군단 3개 사단 19개로 감축 규모가 줄었다. 또 원안에서는 육군 1군사령부와 3군사령부를 통합해 지상군 작전사령부를 2010년에 신설하기로 했지만, 이 역시 2015년 신설로 미루어졌다. 통합이 이루어지면 4성급인 대장 보직 하나가 사라지는데, 이 같은 ‘구조조정’ 역시 덩달아 미루어졌다. 원안은 사병 감축의 대안으로 부사관 등 직업군인을 확충해 주력으로 삼겠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원안을 보면 2020년까지 병력 대비 간부 비율을 42.9%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현재 38% 수준). 하지만 수정안은 이 목표치를 39.2%로 낮추었다. 공짜에 가까운 사병을 제대로 된 임금을 줘야 하는 직업 군인으로 대체하는 데 정부가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결국 “돈줄은 죄고 머릿수로 때웠다”라는 얘기다. 이는 “2020년까지 장교·준사관·부사관 등 간부의 규모는 40% 이상이어야 한다”라고 못 박은 국방개혁법 제26조 위반이다. MB는 임기 내에 마지막으로 편성하는 2013년 예산에서 균형 재정을 이루겠다고 천명한 바 있다. 하지만 현재 재정적자 증가 추이, 부자 감세에 따른 세수 감소분, 4대강 사업 등 대규모 국책사업 추진 현황 등을 보면 균형 재정 목표는 쉽지 않아 보인다. 국방 계획 2020 원안에서 전력 도입이 줄줄이 순연되고, 사병 감축 계획을 ‘없던 일’로 하는 수정안이 나온 것도 재정 압박에 대한 대응으로 풀이된다. 경기 부양과 고용 유발 효과가 거의 없는 국방 투자는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국방 계획의 철학과 성격을 재정비해 지출을 줄였다기보다는 단순히 차기 정부에 부담을 떠넘긴 것에 가깝다. 그 결과는 국방비 긴축으로 나타났다. 노무현 정부가 최소 6.7%에서 최대 11.4%까지 국방 예산을 늘리는 ‘호전적인 정부’였다면, MB 정부의 국방비 증가폭은 최소 3.6%에서 최대 7.1%에 그친다. 국방비를 졸라매는 것이 무조건 나쁜 일은 아니다. 국방비를 줄여 복지 지출을 늘리는 것은 진보·개혁 진영의 숙원이기도 했다. 하지만 국방 철학과 로드맵에 따라서가 아니라, 차기 정부에게 떠넘기기로 일관하는 지금의 긴축 방식은 긴축의 선악을 따지기 이전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면서도 북한의 연평도 포격을 두고 “지난 정부가 포용 정책을 펴다가 군을 소홀히해 이런 일이 벌어졌다”라고 말하는 것은, 국방 개혁 2020의 원안과 수정안만 비교해봐도 사실관계가 정반대다.
천관율 기자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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