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갈등 부추기는 '회장님' 드라마

윤상길 2010. 11. 30.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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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리포트 윤상길의 연예퍼즐] 한국은 부자나라다. 무역협회 발표에 따르면 한국은 올해 수출 세계 7위 국가로 기록됐다. 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지난 2분기에는 경제성장률 1위 국가였고, 7분기 연속 플러스 성장을 보인 유일한 국가이다. 수치로 보면 한국은 경제대국, 부자나라이다. 그래서인가. 경제대국답게 안방극장에서도 부자드라마가 대세다.

부자드라마가 올해 TV드라마의 핵심 코드로 자리 매김한 현상은 갈수록 커져가는 현대인의 '돈 욕구'와 무관하지 않다. 대중은 돈에 대한 지식이 너무 해박하거나 재테크 기술이 뛰어난 사람을 보면 괜히 '돈밖에 모르는 사람'이라고 흠을 잡고 싶어진다. 경제 동화의 원조격인 '흥부와 놀부'만 보아도 부자의 이미지는 좋지 않다.

일반적으로 대중은 검소하고 청렴한 사람을 존경하는 풍토에서 자라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자가 되려고 무척 노력하며 사는 게 현실이다. TV와 인터넷에 등장하는 '명품녀' '신상녀'를 보는 시선만 해도 그렇다. 그들의 소비 행각을 손가락질하면서도 은근히 명품과 신상품에 대한 동경과 '나도 저렇게 한번 살아봤으면'하는 사람이 많다.

돈을 많이 벌고 여유롭게 살며 즐기고 싶은 것은 누구나 꿈꾸는 삶이다. 그것이 그릇된 생각도 아니다. 돈을 잘 버는 것과 바르게 쓰는 것은 모두 아주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요즘은 근검절약만을 강조하지는 않는다. 돈에 좌우되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돈과 담쌓고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부자드라마가 대중의 호응을 얻고, 그만큼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현재 방송중인 부자드라마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높은 시청률과 광고주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드라마의 역기능이 우려된다는 소리가 더 크다. 평범한 사람들의 '꿈꾸는 삶'을 여지없이 짓밟고 있으며, '가진 자'는 모두 악인으로 묘사되면서, 현실보다 지나치게 계층간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부자의 입장에서 보면 요즘 드라마에 불만을 털어놓을 만하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회장님'으로 불리는 부자들이 대부분 몹쓸 인간으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상식적인 방법으로 부자가 된 회장님은 찾아보기 어렵다. 살인, 납치, 방화 등을 저지르는 강력범이고 패륜도 서슴지 않는 파렴치한이다.

'자이언트'의 만보건설 대표 조민우 회장(주상욱)과 정치권력의 실세인 아버지 조필연(정보석)은 종합범죄세트로 묘사된다. '대물'의 김명환 회장(최일화)은 사위인 집권당 대표 강태산(차인표)을 대통령 만들기에 여념이 없는 인물로 돈 되는 일이라면 수단 방법을 안 가린다. '도망자 PLAN.B'에는 '최악의 부자' 양두희 회장(송재호)이 등장한다. 밥 먹듯이 사람을 죽이고, 최소한의 인간적 의리마저 상실한 인물이다.

부자드라마 속에서 윤리 도덕을 찾는 일은 연목구어(緣木求魚)다. '폭풍의 연인'의 유대권 회장(정보석)은 병든 아내 옆에 비서 겸 애인 채우희(김성령)를 두고 있다. '글로리라'의 이준호 회장(연규진)도 아내 송여사(성병숙)와 가수인 여정난(나영희) 사이에서 처첩 갈등을 빚는다. 여기에 이복형제의 꼴사나운 다툼까지 곁들인다.

'호박꽃 순정'에서는 유재환 회장(박영지)의 사모님 준선(배종옥)이 '가진 자'의 빗나간 사랑을 보여준다. 무려 세 남자 사이에서 줄타기 하면서 "이 세상에서 자식을 버리는 동물은 사람이 유일하다'는 슬픈 이론을 확인시킨다. '욕망의 불꽃'에서 보여주는 재벌가 식구들의 암투는 그 끝이 보이지 않고, '시크릿 가든'의 로엘그룹 사람들의 작태도 가관이다.

드라마 배경이 한국이라고 할 때, 한국에서의 '가진 자'는 모두 성격파탄자다. 현실에서 그토록 끝을 보고 싶어 하는 '정경유착'을 조장하는 반사회적 인물이다. 한류 바람을 타고 외국에 소개되었을 경우 "윤리가 없으면 자본은 깡패나 마찬가지다."라는 소설가 서해성의 말을 인용하면, 한국의 재벌 회장은 '깡패 회장님'으로 비쳐질 것이 뻔하다. 국가 이미지 제고 측면에서도 외국 수출을 막아야할 형국이다.

오죽하면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나섰을까. 이 위원회는 최근 '욕망의 불꽃'에 대해 경고 결정을 내렸다. 비윤리적 내용 때문이다. "과도한 폭행이나 뺑소니 등 지나치게 자극적인 장면을 장시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자신의 친언니를 강간하도록 유도 방조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해방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가진 자' '못 가진 자'로 사회계층을 양분해 대립과 갈등을 낳았다. 그렇다면 부자드라마에 '가진 자'는 부정적 입장이고, '못 가진 자'인 서민은 긍정적 반응을 보여야 맞는다. 그런데 '못 가진 자'의 부자드라마에 대한 시선도 곱지만은 않다. 정확히 말하자면 '못 가진 자'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이 드라마에 부정적이다.

배우들은 '다른 사람의 삶을 대신하는 매력' 때문에 연기를 하고, 시청자는 '다른 사람의 삶을 볼 수 재미' 때문에 드라마를 시청한다. 배우나 시청자나 드라마를 매개로 '대리만족'을 얻고 위안을 받기는 마찬가지다. 문제는 대중이 대리만족으로 허전함만을 채워 넣는 게 아니라 드라마에 깃든 다양한 문화와 가치도 학습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학습된 내용이 대중의 삶을 지배한다는, 드라마의 영향력에 주의하자는 것이 '못 가진 자'를 걱정하는 사람들의 견해다.

부자드라마만 보면, 한국의 부자는 두 종류만 존재한다. 부모를 잘 둔 덕에 부자가 된 사람, 온갖 나쁜 짓을 인정사정 두지 않고 저지르는 사람이 부자다. 열심히, 묵묵히 몸이 부서져라 일을 해도 상식적인 방법으로는 이 나라에서 절대 부자가 될 수 없음을 드라마가 보여주고 있다. 그렇게 학습된 탓에 대중은 '부자가 될 수 없음'을 깨닫고, 부자들 앞에서 초라한 자신을 되돌아볼 뿐이다. 상대적 박탈감에 좌절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돈에 의한 노예적 근성, 종살이 DNA를 체화한다.

다시 말하기도 새삼스럽지만 대중은 부자드라마를 통해 그들의 삶이 얼마나 비참하고, 부자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확인할 뿐이다. '존경받는 회장님'이 없는 드라마에서 그들은 '가진 자'에 대해 극도의 적개심을 품게 되고, 희망 없는 자신의 현실을 원망하게 된다. '가진 자'는 서민에게는 '접근 불가'일 뿐이다.

부자드라마에서 대중이 학습한 부자는 평생 구경도 못할 호화주택에 살고, 수억 원짜리 고급 스포츠카를 타고, 미남미녀를 애인으로 두고, 모든 걸 갖고 있다. 이룰 수 없는 선망은 곧 대중의 좌절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1%도 안 되는 부자가 드라마를 통해 대중을 지배하는 셈이다. 극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사회를 드라마가 만들고 있는 것이다.

드라마가 상식을 넘어서는 비정상적인 부자를 내세워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대립시켜 문제를 풀려는 발상은 질이 나쁜 포퓰리즘이다. 대중은 TV드라마에서 분명 위로받지만 동시에 더 허탈해진다. 역설적이지만 그 허망함이 리얼리티에 대한 시청자의 갈증을 불러일으킬 것이란 점에서 부자드라마는 일정 부분 비난을 피해갈 수는 있을 듯하다.

윤상길 편집국장(대우) yoonsk4u@tvrepo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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