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김훈이 그린 풍경·언어의 세밀화

2010. 11. 11.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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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눈이 아프도록 세상을 들여다보았다. 나는 풍경의 안쪽에서 말들이 돋아나기를 바랐는데, 풍경은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풍경은 태어나지 않은 말들을 모두 끌어안은 채 적막강산이었다."

김훈의 장편소설 '내 젊은 날의 숲'(문학동네)은 말로 표현되지 않는 어떤 진실의 기미를 포착하고자 하는 말의 기능적 가능성을 한껏 실험한 것처럼 보인다.

태어나지 않은 말들에 대한 작가의 집착은 사실 모순적이다. 감추어진 말, 드러낼 수 없는 말,태어나지 않은 말을 말로써 그려내는 게 가당한 일일까. 작가는 그런 고단한 작업을 마다 않는다. 정치한 말의 그물망을 짜 드리우고 발언된 말의 뒤에 숨어 있는 것까지 끄집어내 보여주려한다. 그건 풍경을 현미경적 사진으로 찍는 대신 극세밀화를 통해 식물의 표정을 그려내고자 하는 소설 속 안요안 수목원 연구실장의 작업과 통한다.

"흰 종이 위에 흰 꽃을 그리려면 검은 물감을 쓸 수밖에 없다. 작약의 흰 꽃잎을 들여다보면 깊은 곳에서 검은 색이 배어나온다. "도라지꽃을 데생할 때, 꽃과 그 꽃을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 사이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를 그리려고, 고개를 조금 옆으로 돌린 꽃을 골라서 그렸는데, 그렇게 말하여질 수 없는 일들이 종이 위에 모두 그려졌는지는 알 수 없다. 그린다고 해서 다 그려지는 것은 아니다."(본문 중) 소설속 주인공 나는 민통선 안 국립수목원에서 세밀화가로 식물의 표정을 일일이 그리는 작업을 한다. 지방공무원 출신인 아버지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의 뇌물죄와 알선수재로 감옥에 수감됐다 가석방되고 조용히 무너져 생을 마감한다. 나는 나무와 꽃과 숲이 태어나고 숨쉬고 몸을 열어보이는 순간들을 포착하면서 사람의 생과 다르지 않음을 목격한다. 그리기, 쓰기는 결국 대상에 다가가는 작업인 셈이다.

내 젊은 날의 숲/김훈/문학동네이윤미 기자/meelee@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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