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연극 '내 심장을 쏴라'



(서울=연합뉴스) 강일중 객원기자 = '이 세상은 거대한 정신병동.'
남산예술센터 무대 위에 올려지고 있는 연극 '내 심장을 쏴라'가 그리고 있는 이미지다. 이 작품의 공간은 강원도 산골의 수리희망병원. 스무 명이 넘는 등장인물들은 이 정신병동에 수용된 환자들과 그들을 보호하고 관리하는 병동 근무자들이다. 이 인물들이 우리 사회 인간 군상의 모습을 압축해 표현한다. 미치지 않고는 견뎌내기 힘든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 나 혹은 언젠가 주변에서 한 번 이상 본 사람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 중에서도 극이 초점을 맞추는 '정신병자'는 수명과 승민. 수명은 어머니의 자살에 대한 죄의식으로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환자다. 승민은 유산 싸움 과정에서 가족들이 강제로 정신병원에 넣은 환자. 수명이 '미쳐서 갇힌 자'라면 승민은 '갇혀서 미쳐가는 자'다. 광기를 가진 것은 같되 그것을 풀어나가는 두 사람의 해결법은 완전 대조적이다.
수명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미친 것이 오히려 낫다고 생각한다. 7년간 정신병동에 있다가 퇴원한지 일주일만에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다시 정신병동에 들어오게 된 수명은 이렇게 말한다. "또 다시 세상 밖으로 쫓겨났습니다. 그래도 여긴 안전해요. 빗속을 헤매 다닐 필요도 없고, 길 물어볼 필요도 없고, 파출소에서 무릎꿇을 일도 없어요. 내일이면 평화롭게 눈을 뜨겠죠." 그는 인생으로부터 도망친다.
이에 비해 승민은 끊임없이 정신병동 탈출을 시도한다. 의아해하는 수명에게 승민은 이렇게 대답한다. "송장보다는 차라리 그쪽이 낫지 않아? 우린 아직 살아있어. 너도 한 번 글라이더를 타 봐야 돼. 자유라는 게 뭔지 가슴으로 느끼게 될 거야." 승민은 자신의 인생을 상대한다. 현실에 안주하던 수명도 결국 승민과 함께 정신병동 탈출을 시도한다.
무대는 정신병동 환자들이 세상으로부터 내몰려 고립된 이미지를 담기 위해 '떠있는 고립된 섬'의 콘셉트로 디자인됐다. 이러한 무대디자인의 개념은 영화 '빠삐용'을 연상케 한다. 자유를 갈구하는 승민의 이미지는 높은 파도로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악마의 섬에서 끝없이 탈옥을 시도하는 빠삐용의 모습과 오버랩된다.
'내 심장을 쏴라'의 무대 특징 중 하나는 영상을 많이 활용한다는 점이다. 저 먼 산에서 승민이 그토록 다시 타보고자 했던 패러글라이더가 하나둘씩 떠오르는 영상은 인상적이다. 작품 속에서 패러글라이더는 자유에의 갈구, 탈출, 이상과 희망을 상징한다.
수명 역의 김명민과 승민 역의 이승주 배우를 포함한 출연진들이 비교적 좋은 연기를 보여준다. 이승주의 경우 남산예술센터가 재개관 이래 제작극장으로서의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처음으로 시행한 배우 공개오디션을 통해 캐스팅된 신예 배우라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수명과 승민의 연기와 대사가 중심을 이루고는 있지만 대사가 거의 없는 등장인물들의 움직임을 함께 지켜보는 것도 관극의 묘미다. 다만, 전체적으로 볼 때 비중있는 조역의 역할이 뚜렷이 부각되지 못했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남희ㆍ정승길 등 대사가 상대적으로 많은 조연 배우들의 좋은 연기에도 불구하고 긴장감을 고조시키거나 이완시키는 극의 흐름 속에 이들의 역할이 어떤 기여를 하는지가 불분명하다.
◇ 연극 '내 심장을 쏴라' = 2009년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인 정유정 작가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인류 최초의 키스' '웃어라 무덤아' '발자국 안에서' 등의 주목받은 희곡작품으로 잘 알려진 고연옥 작가가 극본을 맡았다.
스태프는 ▲연출 김광보 ▲무대디자인 오윤균 ▲조명 조인곤 ▲영상 어경은 ▲작곡ㆍ음악 최정우 ▲동작지도 고재경 ▲드라마터그 차근호 ▲의상 조문수 ▲분장 이동민 ▲안무 이윤정.
출연진은 김영민ㆍ이승주ㆍ이남희ㆍ윤영걸ㆍ손진환ㆍ이용근ㆍ문욱일ㆍ박노식ㆍ강일ㆍ윤다경ㆍ정승길ㆍ권택기ㆍ백지원ㆍ최현숙ㆍ김송일ㆍ최하영ㆍ김순애ㆍ김대진ㆍ주재언ㆍ서상혁ㆍ한상우.
공연은 남산예술센터에서 24일까지. 공연문의는 ☎ 02-758-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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