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선/9월 20일] 탐욕의 장막

<정의란 무엇인가>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마이클 샌덜 미 하버드대 교수는 존 롤즈의 <정의론>(Theory of Justice) 비판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비판은 롤즈가 <정의론>에서 집대성한 자유주의적 정의의 개념은 '고립된 개인''단자화한 개인'에서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사회적일 수밖에 없는 '정의'의 개념과 양립할 수 없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개인의 가치와 신념이 고립된 개인의 내적 성찰이 아니라 공적 공간에서의 '이야기'를 통해 형성된다는 공동체주의(Communitarianism) 공통의 시각이 엿보인다.
■ 일반인의 눈에도 롤즈의 정의론은 현실과의 괴리를 드러낸다. 그는 정의의 잣대로서 두 가지 원칙을 들었다. 모든 사람에게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한도에서 기본적 자유를 준다는 첫 번째 원칙은 헌법상 자유권적 기본권에서 보듯 이미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사회경제적 기회균등이 보장된 상태에서 최소 수혜자에게 그나마 가장 큰 이익이 돌아가도록 가치와 재화를 분배한다는 두 번째 원칙은 논리적 수긍은 가능해도 실현 가능성은 의심스럽다. 롤즈 자신도 그런 원칙을 살릴 사회적 합의의 가정적 전제로서 '무지의 장막'을 들어야 했다.
■ '무지의 장막' 안에서는 자신과 타인의 재능과 능력, 성별, 집안, 계층, 인종, 종교 등 모든 차별적 요소를 인식하지 못한다. 이런 상태에서만 일종의 순수이성을 통해 누구에게도 불이익을 주지 않거나 상대적 불이익을 최소화할 합의에 이를 수 있다. 그러나 애초에 가정적으로 제시된 '무지의 장막'이 현실세계에 존재할 수 없는 데다 인간의 인식은 오히려 자신이나 집단의 사회경제적 위치에 얽매이게 마련이다. 게다가 인간 인식과 행동에 대한 연구 성과가 축적되면 될수록 '탐욕의 장막'에 갇힌 인간 존재의 어두운 측면이 부각된다.
■ 개인이 공동체가 가하는 압력에서 자유로울 때 선과 정의 등 미덕보다 억눌린 공격성과 악의 표출로 흐르기 쉽다는 점은 '밀그램 실험'이나 '스탠퍼드 감옥 실험'등을 통해 확인됐다. 공동체주의가 밝힌 '사회적으로 형성되는 도덕심'조차 '사회적 압력에 따른 탐욕의 양보'로 여길 만하다. 성악설에 전적으로 의존할 필요는 없더라도, 성선설에 근거한 담론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가능성은 크게 기대할 수 없게 됐다. '공정사회' 논의도 사회 곳곳에 드리운 탐욕의 장막을 찢는 제도적 압력이 아니고서야 잠시 피어 올랐다가 흩어지는 연무(煙霧)일 뿐이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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