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 "노모 기록깨고 한화서 뛰려고.."
"아시아선수 최다승 이룬 뒤 한화서 뛰고파…"2007년 빅리그 딱 한경기 출전 "힘들다" 고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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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전이었다. 당시 박찬호(현 피츠버그)는 암흑기를 겪고 있었다. 바로 그때 박찬호가 한국 야구대표팀 동료들에게 얘기했던 '야구인생의 목표'가 있었다.
박찬호는 13일 빅리그 통산 123승째를 올렸다. 드디어 노모 히데오가 갖고 있던 동양인 메이저리그 통산 최다승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했다. 피츠버그는 15일(한국시각) 현재 18경기를 남겨놓은 상태. 불펜투수 특성상 언제 어느때 기회가 올지 알 수 없으나, 분명 박찬호는 올시즌 내에 통산 124승째 찬스를 잡게 될 것이다. ▶노모 히데오를 넘고 돌아가겠다
2007년 11월이었다. 베이징올림픽 아시아예선(아시아선수권대회)을 위해 야구대표팀이 소집됐다. 뜻밖에도 박찬호가 대표팀에 합류했다. 그리고 대만에서 열리는 본 대회에 앞서 16박17일 동안 일본 오키나와에서 전훈캠프가 진행됐다.
하루는 훈련을 마친 뒤 송진우(현 요미우리 연수코치)가 박찬호를 비롯한 고참급 선수들에게 "맥주 한잔 하자"고 제안했다. 그날밤 대표팀 숙소인 오키나와 리잔시파크 호텔의 방에서 조촐한 술자리가 벌어졌다. 류택현 이호준 등도 참석했다.
참석자들에 따르면, 그때 박찬호는 "지금 힘들어도 계속 빅리그에서 노력하는 이유는 꿈이 있기 때문입니다. 꿈을 갖고 미국에 왔었는데, 지금은 아시아선수 최다승 기록을 깨고 싶습니다. 그 전에는 한국에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때 박찬호는 통산 113승을 기록하고 있었다. 노모의 기록까지 10승이 남았지만 결코 쉽지 않아보였다. ▶2007년 박찬호의 상황 2001년말 텍사스와 5년간 6500만달러(약 750억원)짜리 초대형 FA 계약에 성공한 박찬호는 그후 하향세였다. 결국 계약기간 도중에 샌디에이고로 옮긴 뒤 2006년을 끝으로 5년계약이 끝났다. 그후 뉴욕 메츠 유니폼을 입었다.
2007년 시즌 초반, 박찬호는 딱 한차례 메츠의 호출을 받고 빅리그 무대에 선발로 섰다. 하지만 홈런 두방을 허용하며 4이닝 7실점으로 패전투수가 됐다. 그후 더이상 기회가 오지 않았고 방출됐다.
곧이어 휴스턴에 둥지를 틀었지만 마이너리거 신분이었다. 휴스턴은 시즌이 끝날 때까지 박찬호를 빅리그에 부르지 않았다. 그래서 2007년 박찬호의 빅리그 경력은 딱 한경기 뿐이다.
힘겨웠던 2007년의 말미에 박찬호는 대표팀 멤버가 됐다. 모든 걸 잊고 새출발하겠다는 의미로 대표팀에 자원했던 셈이다. 다행스럽게도, 대표팀 전지훈련 도중에 LA 다저스 입단이 결정됐다. ▶한화, 그리고 박찬호의 꿈
다시 오키나와 리잔시파크 호텔. 당시 맥주잔 거품을 바라보며 얘기를 나누던 선수들은 박찬호의 입에서 "힘들다"는 얘기가 나왔다는 사실에 은근히 놀랐다고 한다. 박찬호가 어지간해선 그런 얘기를 절대 하지 않는 스타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마이너리거로서의 1년은 그만큼 힘든 경험이었을 것이다.
박찬호는 그날 "노모의 기록을 깨고 기회가 된다면 마지막으로 한국에 돌아가 일단 한화에서 뛴 뒤 다른 몇몇 팀에서도 선수생활을 해보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한다.
물론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달라졌다. 이미 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현역으로서 마지막 순간까지 미국에서 뛸 수도 있고, 아니면 3년전 계획대로 한국행을 택할 수도 있다. 현역에서 은퇴한 뒤 한국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박찬호가 가장 힘들었던 시절, 선후배들에게 털어놓았던 꿈에 거의 근접했다는 사실이다.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김남형 기자 star@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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