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극은 상황·대본·연기 맞아떨어져야 재미"

글 박주연·사진 정지윤 기자 2010. 8. 18.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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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하얀 앵두'서 걸쭉한 사투리로 웃음 전하는 박수영

그의 입에서 걸쭉한 강원도 사투리가 쉴새없이 터져나온다. 때로 '쌍욕'까지 튀어나오지만 관객들은 박장대소한다.

연극 < 하얀앵두 > (배삼식 작·김동현 연출)를 공연 중인 서울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III. 강원도 영월 산골의 70대 동네노인 '곽지복'으로 분한 박수영(40)이 그 주인공. 그는 존재감만으로도 무대를 꽉 채우는 배우라는 찬사가 따른다. < 하얀앵두 > 는 삶과 죽음, 탄생과 소멸의 순환성을 지질학, 원예학을 바탕으로 잔잔하게 펼친 작품이다. 곽지복은 간첩누명을 쓰고 7년의 옥살이 끝에 처자식까지 잃은 한 많은 개인사를 가진 인물. 자신이 애지중지하는 암캐를 서울에서 이사온 집 개가 겁탈한 사건을 계기로 극의 중심에 들어선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기질이 제 안에 있었나봐요. 어린시절 집안잔치 때 아버지는 꼽추춤을 추시면서 사람들을 즐겁게 하셨어요."

연극계에서 박수영은 '희극연기를 잘하는 배우'로 통한다. 그러나 데뷔시절부터 그를 지켜봐온 연출가 이윤택은 "단순한 희극연기가 아니라 슬픈 광대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고 표현한다.

박수영이 지나온 삶은 평탄치 않다. 초·중·고 때 야구선수로 뛰었지만 고교 2학년 때 야구의 꿈을 접어야 했다. 실력은 달렸고, 161㎝의 키도 더 이상 자라지 않았다. 1년 휴학까지 한 후에야 간신히 딴 고교 졸업장. 그 길로 부산으로 내려가 선박전기기술을 배웠다. 하지만 뱃사람들은 거칠었고 그는 외로웠다. 퇴근길에 우연히 본 < 심청90 > 포스터. 가마골소극장을 매일 찾아가 연극을 봤다. 가마골소극장은 당시 연희단거리패를 창단한 이윤택이 문을 연 공연장이었다.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 해서 당시 연출가셨던 박은홍 선생에게 직장인을 위한 취미연극반은 없느냐고 물었어요. 그런데 그냥 배우를 하라고 권유하시더군요. 포스터 붙이기, 청소 같은 일부터 시작했죠. 두렵기도 했지만 재미있었어요."

데뷔는 극단에 들어간 지 얼마 안돼 얼떨결에 이루어졌다. 공연하던 배우가 위출혈로 입원하는 바람에 그가 밤새 대사를 외워 다음날부터 대타로 선 것이다. 당시의 또 다른 일화. 1993년 < 바보각시 > 에서 취객 역으로 출연 중이던 박수영은 자주 소화가 안돼 찾은 병원에서 청천벽력 같은 통보를 받았다. 위암 말기라는 것. 하지만 "어차피 죽을 목숨이니 공연하다가 죽겠다"며 매일 눈이 퉁퉁 부은 채로 무대에 올랐다. 뒤늦게 오진으로 판명났지만 이 해프닝은 그가 얼마나 무대를 사랑하는지를 잘 보여준 사건이었다. 서울로 둥지를 옮긴 것도 이 즈음이다.

< 낚시터전쟁 > < 오랑캐여자옹녀 > < 야끼니꾸드래곤 > 등 수많은 출연작에서 그는 주로 객석의 웃음을 유발하는 연기를 했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관객을 웃기려고 한 적은 없다.

"희극은 절대로 배우가 웃기려고 하면 안된다고 배웠어요. 상황과 대본, 연기가 맞아떨어져야 희극이 되고 관객이 재미있게 볼 수 있다고요. 그걸 가슴에 늘 새기고 있지요."

딱 한 번, 위기도 있었다. 막 서른살이 되던 해 그는 연극을 접으려 했다. 자살까지도 생각했다. 벌어놓은 돈도 없이 늘 배고픈 나날인데다, 배우로서 미래도 불투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극복하게 해준 것도 역시 연극이었다. 2002년 공연된 한·일합작극 < 출격 > 에 캐스팅되면서다.

"공연으로 두달간 일본에 있었는데 출연료, 생활비를 받으면서 숙식까지 해결되니까 고민했던 게 싹 잊혀지더라고요. 또 귀국하자마자 출연 요청이 쇄도했어요. 그해에 8편이나 했으니 정신없이 보냈죠."

한때 '다작배우'라는 오명을 듣기도 했다. 그래도 주유소 아르바이트 등에 시간 뺏기지 않고 연극만 할 수 있어 좋았다. 2006년 < 여행 > 으로 서울연극제 남자연기상을 수상한 데 이어 2007년에는 히서연극상 '기대되는 연극인상'도 받았다. "사람들이 즐거워하기 때문에 연극을 한다"는 박수영은 "화려하게 주목받는 배우가 아니라, 무대에 필요한 배우로 자리매김하고 싶다"고 말했다. 29일까지 공연. 전석 3만원 (02)708-5001

< 글 박주연·사진 정지윤 기자 jypark@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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