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 point] 앙드레김 브랜드 샤넬처럼 키우자

2010. 8. 15.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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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유명 디자이너 가브리엘 샤넬(1883~1971)은 사후 후계자가 없었다. '만인의 연인'이라 불리며 장 콕토 등 당대 최고 문인ㆍ예술가들과 교류하며 화려한 삶을 살았지만 독신이었던 그는 피붙이 하나 남기지 않았다. 이탈리아의 잔니 베르사체(1946~1997)도 마찬가지다. 독신으로 살다가 후계자를 생각지도 않았던 50대 초반 나이에 권총 피살로 급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했다.

샤넬과 베르사체가 세상을 뜬 지 한참 됐지만 그들이 만든 '샤넬'과 '베르사체'는 전 세계인에게 사랑을 받는 패션 브랜드로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 브랜드가 영속성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뛰어난 후계 디자이너 영입을 통한 철저한 사후 관리 덕분이다. 샤넬이 죽고 난 후 브랜드 '샤넬'은 카를 라거펠트가 이어받았고, '베르사체'는 동생 도나텔라가 오빠의 빈자리를 채웠다.

반세기 한국 패션사(史)를 써온 패션계 거장 앙드레 김이 지난 12일 건강 악화로 세상을 떠났다. 그를 잃은 슬픔과 애도 물결이 이어지고 있지만 지금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 있다.

더 이상 앙드레 김은 없지만 그가 50년 가까이 필생의 노력을 기울여 쌓아놓은 '앙드레 김' 브랜드를 누가 계승ㆍ발전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다.

평소 완벽주의자였던 그였지만 후계 문제만큼은 차일피일 미뤄왔다. 주변에서 외국 패션계에서 활동하는 유능한 디자이너들을 후계자로 추천했지만 매번 성에 차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그는 "나보다 한 살 많은 조르조 아르마니도 아직까지 후계자 없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나도 앞으로 10년은 더 창작활동을 할 수 있다. 그 이후에 후계자를 생각해 보겠다"며 현역을 고수했다.

앙드레 김은 1960년대 프랑스와 미국에서 '꼬레아'가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모르는 선진국에 가서 패션쇼를 열었고 호평받았다. 각국 대사와 교류하는 등 문화사절로서도 명성이 대단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문화훈장을 받았고, 미국 샌프란시스코가 '앙드레 김' 날을 지정했고, 전 세계인의 축제인 올림픽 패션쇼를 맡았다.

앙드레 김이 남긴 '앙드레김'은 누가 어떻게 사후관리를 잘하느냐에 따라 글로벌 시장에서 천문학적 가치를 지닐 수 있는 히스토리를 갖고 있다.

예술가들은 사후 평가가 두 가지로 갈린다. 생존보다 평가절하되거나, 사후 오히려 더 큰 대접을 받는다. 앙드레 김은 지독한 열정과 고집으로 국내 패션사에서 그 누구도 하지 못했던 그만의 독창적 세계를 남기고 떠났다. 한국 전통 왕실의 고유 문양과 칠겹옷, 순백의 드레스, 솔나무와 벚나무 문양 등 끄집어낼 디자인 자산이 무궁무진하다. 그 무엇보다 전후 암울했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세계인이 알아주는 디자이너로 올라선 그의 감동스러운 삶이 가장 큰 자산이다.

앙드레 김을 우리 시대 위인으로 만드는 것은 남은 사람들 몫이다.

[김지미 유통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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