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에 120켤레 갈아신는 여자..그녀 이름은 발레리나

2010. 7. 22.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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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1년 간 100켤레 넘게 갈아 신는다. 그렇게 신은 신발들을 신장에 간직하는 것도 아니다. 쓰고 버린다. 그러고도 발은 온통 굳은 살이다. 그녀는 발레리나다.

우아한 동작과 자유로운 표정. 그러나 온몸으로 말하는 그녀의 몸은 온통 근육이다. 움직이는 순간 모든 근육이 긴장한다. 발 끝으로 선 직경 3cm의 바닥에 닿는 부분이 온 몸을 지탱한다.

토슈즈는 발레리나가 발가락 끝으로 설 수 있는 비결이다. 토슈즈의 발가락 끝부분은 여러겹의 종이를 아교로 고정시켜 나무처럼 딱딱하다. 토슈즈의 단단한 발 끝은 무대 위 발레리나의 쉽고 빠른 회전을 가능하게 한다. 화려한 기교에 객석은 환호와 감탄으로 가득 찬다. 하지만 토슈즈 속 발톱이 빠지고 발가락이 뭉개지는 고통은 발레리나 혼자 감내해야 할 몫이다.

습기에 약해 여름에 관리가 더 힘들다는 토슈즈. 발레리나의 발, 그 자체인 토슈즈가 세밀한 동작으로 깊은 감정을 표현해 내는 '움직임의 예술' 발레를 말한다.

▶1년에 몇 켤레나 신을까=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동양인 최초이자 최연소 입단했던 발레리나 강수진은 "한 시즌당 토슈즈 250켤레를 쓴다"며 "한 주에 열켤레 꼴"이라고 밝힌 바 있다. '연습 벌레'인 그의 면모는 하루에 15시간 이상의 연습으로 토슈즈를 네 켤레나 써버려, 물품 담당자가 "아껴 써달라"고 부탁했다는 에피소드로도 전해진다.

그러나 보통 토슈즈의 수명은 3일 정도. 연습량이나 공연 여부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매일 꾸준히 연습을 하는 국립발레단 단원들의 경우는 그렇다. 지난해 1월 국립발레단에 입단해 올해 '코펠리아'를 통해 주역으로 데뷔한 발레리나 신승원은 "3일에 한 켤레, 한 달에 열 켤레 정도 토슈즈를 신는다"며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토슈즈를 신어봤을 땐 그저 설레고 신기해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단원들의 휴가 기간이지만 그는 국제무용콩쿠르 준비를 위해 연습실을 찾았다. 신승원은 "공연을 하거나 콩쿠르에 출전할 때는 바닥에 송진칠도 잘하고 길이 잘 들여진 최적의 토슈즈 몇 켤레를 가져간다"며 "사이즈가 같아도 얼마나 신었고 어떻게 신었느냐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고 말했다.

최근 막을 내린 '롤랑프티의 밤' 중 '아를르의 여인' 주역으로 무대에 선 발레리나 김리회는 "공연이 있거나 연습이 많은 날엔 하루만에 토슈즈를 못 쓰게 돼 교체하기도 한다"며 "발 끝이 닳아 발가락이 바닥에 닿는 느낌이 들거나 발을 세웠을 때 바닥이 꺾이는 느낌이 들면 교체할 시기"라고 말했다.

토슈즈의 가격은 4만원부터 15만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교체가 잦은 만큼 토슈즈에 들어가는 비용은 만만치 않다. 10만원 짜리 토슈즈를 쓴다면 1년에 1200만원을 고스란히 토슈즈에만 투자해야 한다. 그래서 발레를 배우는 학생들은 4만원 가량의 저렴한 토슈즈를 신는다. 어떻게 하면 토슈즈를 오래 신을까도 고민한다.

신승원은 "한창 배울 땐 4만원 짜리 토슈즈를 신었다"며 "딱딱해서 일주일 정도로 오래 신을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무리하면 아킬레스가 아파왔다"고 말했다. 습기에 약해 여름에 물러진 토슈즈 수십 켤레를 버리지 않고 모아뒀다 겨울에 굳어지면 다시 꺼내 쓰는 친구들도 있었다.

다행히 국립발레단은 지난 2008년부터 최태지 국립발레단 단장이 '토슈즈 예산'을 따로 책정 받으면서 '마음놓고 연습'할 수 있게 됐다. 기본적으로 5켤레가 지급되고 수명이 다 된 토슈즈를 가져가 확인되면 바로 교체해준다. 올해 토슈즈 예산은 1억6000만원. 국립발레단이 쓰는 12만원 가량의 토슈즈 1300여 켤레를 살 수 있는 돈이다.

▶필수품인 칼과 바늘은 호신용?=발레리나들이 갖고 다니는 토슈즈 가방엔 빠져서는 안 될 것이 있다. 바로 칼과 바늘. 호신용 무기가 아니다. 모두 토슈즈를 위한 장비들이다.

토슈즈 비용에 대한 걱정을 덜었다면 그 다음은 어떻게 하면 토슈즈를 내 발에 맞게 맞추느냐를 고민해야 한다.

사이즈는 달라도 토슈즈는 모두 같은 모양이다. 그러나 발레리나마다 발 모양은 천차만별이다. 예술의전당에 있는 국립발레단 연습실 한 켠에서는 커다란 실뭉치를 옆에 두고 바느질을 하거나 칼을 들고 토슈즈 바닥을 긁고 있는 단원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안쪽에 풀칠하고 자기 발에 맞게 칼로 잘라내기도 한다.

발레리나 신승원은 "발가락은 토슈즈 때문에 굳은살이 배겼지만 토슈즈 바느질을 너무 많이 해서 손에도 굳은살이 생겼다"며 "얇고 부드러운 부분은 가는 바늘로, 딱딱한 앞 부분은 큰 바늘이 필요해 바늘도 길이와 굵기 별로 다 갖고 다녀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니 "바늘을 빌려갔다가 부러뜨려서 주면 기분이 상하다"거나 "가끔 토슈즈 가방에 들어있던 바늘을 잃어버리면 서로 민감해진다"는 얘기가 그저 우스개로만 들리지 않는다.

발레를 할 때는 발이 체중의 4배에 이르는 힘을 받고 토슈즈는 그런 발과 한 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얇다. 심각한 부상이나 고질적인 통증과 연결될 수도 있는 만큼 토슈즈에 공을 들이지 않을 수 없다.

강수진이 공연 중에 테이핑으로 감당이 안 될 만큼 발 피부가 벗겨져 생고기를 토슈즈 안에 넣고 공연을 마치기도 했다는 일화는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이야기. 그러나 이와이 ?지 감독의 영화 '하나와 앨리스'에서의 종이컵 토슈즈는 위험할 수 있다. 앨리스 역의 아오이 유우는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토슈즈 대신 종이컵을 테이프로 감고 아름다운 발레 영상을 보여준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종이컵 토슈즈로는 제대로 된 자세가 불가능하고 부상의 위험도 크다.

윤정현 기자/hit@heraldm.com사진=이상섭 기자/babtong@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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