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연의 역사속 명저 산책] 시몬 드 보부아르 '제2의 성'

2010. 7. 2.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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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살고 싶어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적어도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동안은 말이에요. 때로 저는 당신 없이 그처럼 많은 세월을 살아왔다는 게 너무나 이상하게 느껴진답니다. 당신의 열기와 친절함 덕분에 삶은 너무나도 따뜻하고 좋은 것이에요, 나의 사랑하는 사람. 사랑에 빠진 당신의 아내가 개구리의 사랑과 키스를."

시몬 드 보부아르는 1947년 사르트르와 함께 미국으로 강연을 떠난다. 이곳에서 보부아르는 미국 소설가 넬슨 앨그렌을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그날 이후 20여 년간 둘은 편지를 주고받는다. 보부아르가 앨그렌에게 보낸 편지 304통을 모은 책 '연애편지'를 처음 읽었을때 기자는 상당히 놀랐다. 그 놀라움은 사실은 신선함이었다.

실존주의를 대표하는 지성이자 페미니즘 여전사로만 알고 있었던 보부아르가 '콧소리' 가득 섞인 애교 만점의 편지를 썼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이었다. 더구나 보부아르는 이 편지를 프랑스어를 못하는 앨그렌을 위해 영어로 썼다. 보부아르가 평생 '남편'이라고 부른 사람은 앨그렌이 유일했다. 그녀와 계약결혼을 했던 사르트르도 '남편'이라는 호칭은 못 들어보고 생을 마감했다.

각설하고. 나는 이 사실을 알고 나서 그녀의 대표작 '제2의 성'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제2의 성'이 여전사의 경직된 자기주장이나 항변이 아니라 여성으로서 살았고 여성으로 사랑했던 한 지식인의 정당한 문제제기라는 사실을 알게 됐던 것이다.

'제2의 성'은 페미니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저서다. 역사 속 여성의 모습을 통해 보부아르는 '여성'이라는 존재가 남성과 동등한 성이 아닌 '제2의 성(性)'이라고 주장했다. 정상적인 하나의 성이 아니라 무엇인가 결핍된 비주류의 성이었다는 것이다.

보부아르가 책을 쓴 1949년 무렵까지 "여성은 불완전한 남성"이라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낡디 낡은 주장이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보부아르가 몸담았던 학계도 예외가 아니었다. 보부아르는 이 책을 통해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로 만들어진다"는 불후의 명언을 던지며 남성 중심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보부아르는 1908년 파리의 몰락한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가톨릭 학교를 거쳐 소르본느 대학을 졸업하고 철학교수 자격시험에 차석이자 최연소로 합격한다. 이때 수석을 한 사람이 바로 사르트르다. 성적은 보부아르가 더 좋았지만 여성 차별로 차석이 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사실 보부아르는 운동가라기보다 프랑스 최고 권위의 콩쿠르상을 받을 정도로 인정받은 소설가였다. '제2의 성'도 처음에는 자전소설 정도로 기획된 것이었으나 창작 초기 인문서로 방향을 튼 것이다.

'제2의 성'에서 보부아르는 "남성이 여성에게 '신비함'이라는 거짓된 아우라를 주입시켜 여성을 사회적 '타자'로 만들었다"고 선언했다. 다음 구절을 보자.

"여성은 남성 따라서 정의되고 구분되지만 남성은 여성에 따라서 정의되고 구분되지 않는다. 남성은 주체이며 절대자이다. 하지만 여성은 타인이다. 남성의 변두리에 살고 있는 여성은 세계의 보편적인 모습을 파악하지 못한다."

보부아르의 지적은 현대 페미니즘의 바이블이 됐다. '제2의 성'이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자 프랑스 정부는 서둘러 '여성의 날'을 제정했다. '제2의 성' 이후부터 지식인들이 남성과 여성을 계급적 시각이 아닌 '차이의 시각'으로 보는 습관을 갖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부아르는 책의 후반부를 이렇게 끝맺는다.

"이 주어진 현실 세계를 자유가 지배하도록 하는 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임무다. 이 숭고한 진리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남녀가 분명한 우애를 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허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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