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12월 한국에 온다
국립중앙박물관 '실크로드와 둔황' 특별전서 세계 첫 일반 공개프랑스에 4월 출품 요청… 이달 24일 대여 통보 받아
"한 달 만에 구시나국에 이르렀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곳이나 성은 이미 황폐화되어 아무도 살지 않는다. 부처님이 열반하신 곳에 탑을 세웠는데 한 선사가 그곳을 깨끗이 청소하고 있다."(一月 至狗尸那國 佛入涅槃處 其城荒廢 無人住也 佛入涅槃處置塔 有禪師 在彼掃灑ㆍ정수일 번역)
1,200여년 전 신라 출신 승려 혜초(慧超ㆍ704~787)가 서역(인도)을 여행하고 나서 쓴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의 한 대목이다. 구시나국(지금의 쿠시나가라)은 부처가 열반한 곳으로 불교 4대 성지의 하나이며, 요즘 한국인들의 인도 성지순례에서도 반드시 찾는 곳이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이 한국에 온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최광식)은 12월 개막 예정인 '실크로드와 둔황'(가칭) 특별전에 왕오천축국전을 대여해 전시하기로 했다고 29일 밝혔다.
왕오천축국전이 일반에 공개 전시되는 것은 처음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지난 4월 프랑스 국립도서관 측에 왕오천축국전의 출품을 요청했으며, 프랑스 측은 지난 17일 대여승인심의회의에서 대여를 결정하고 24일 이를 통보해왔다고 밝혔다.
'다섯 천축(인도)국을 여행한 기록'이라는 뜻을 지닌 왕오천축국전은 앞뒤가 잘려나간 한 권 분량의 두루마리 필사본으로, 총 227행 5,893자가 남아있다. 세로 28.5㎝, 가로 42㎝인 종이 9장을 이어 붙였는데, 첫 장과 마지막 장은 가로가 각각 29.35㎝인 까닭에 두루마리 총 길이는 358㎝이다. 이 현존본이 원본을 간추린 절략본(節略本)인지, 원본을 베껴 쓴 사록본(寫錄本)인지, 초고본(草稿本)인지 하는 성격 문제는 아직 논란이 되고 있다.
8세기 초에 쓰여진 왕오천축국전은 7세기 현장 법사의 '대당서역기', 13세기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14세기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 등과 함께 세계 최고의 여행기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왕오천축국전은 중국 문헌에서 이름과 저자만 알려졌다가 1908년 프랑스 탐험가 폴 펠리오(1878~1945)가 구입한, 중국 둔황(敦煌)의 막고굴(莫高窟) 장경동(藏經洞) 석굴 안의 문서 더미에서 발견됐다. 펠리오는 그 해 둔황에서 장경동을 지키던 도사 왕원록에게서 사경류 1,500여권 24상자 등을 사들여 프랑스로 보냈고, 그 중에서 왕오천축국전을 발견, 1909년 12월 파리 소르본대학에서 발견 사실을 공개했다. 저자 혜초가 신라 출신 승려라는 것은 1915년 일본 불교학자 다카구스 준지로(高南順次郞)에 의해 처음 밝혀졌다.
유년기에 당나라에 들어가 인도 출신 승려에게서 불교를 배운 혜초는 723년 광저우(廣州)를 떠나 바닷길로 인도에 들어가 약 4년 동안 인도와 서역의 여러 나라들을 여행하고 727년 장안(長安)으로 돌아왔다. 왕오천축국전은 그가 방문한 40여 개 나라와 지역의 사정을 두루 개괄하고 있다. 출발지에서 목적지로 가는 방향과 소요시간, 왕성의 위치와 규모, 언어, 습속, 종교 특히 불교의 성행 정도 등이 간결하면서도 명료하게 기록돼 있으며, 오언시도 5편 실려 있어 서정적 여행기로 평가되고 있다.
혜초가 남천축으로 가던 도중 쓴 시는 그가 고향 계림(신라의 다른 이름)을 그리워한 신라인이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달 밝은 밤에 고향길 바라보니(月夜瞻鄕路)/ 뜬구름은 너울너울 돌아가네(浮雲颯颯歸)/…/ 일남(베트남)에는 기러기마저 없으니(日南無有雁)/ 누가 소식 전하러 계림으로 날아가리(誰爲向林飛)'
남경욱기자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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