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점' 이창동, 진짜 0점 받으면 어쩔 것인가

【서울=뉴시스】이문원의 문화비평 = 제63회 칸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은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가 개봉 한 달여 만에 20만 관객을 넘겼다. 아직 상영관은 남아있지만, 추가 흥행을 기대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딱히 상업적이지도 않은데 의외로 흥행은 잘 됐던 이창동 감독의 특이한 필모그래피에 첫 흥행실패작으로 기록됐다.
그러나 '시'의 조용한 상영과 달리 '시'를 둘러싼 영화진흥위원회 마스터영화 제작지원사업 탈락 문제는 여전히 시끄럽고 뜨겁다. 사건은 '시'의 칸영화제 수상 직후 터졌다. 조선닷컴 5월24일자 ''시', 영진위는 빵점주고 칸에서는 각본상'은 "영진위는 지난해 두 차례에 걸쳐 '마스터영화 제작지원사업'을 벌였다. 사업 취지는 '국제 경쟁력을 인정받은 감독의 해외진출을 돕는다'는 것이었다. 당선작에는 현금 4억원과 현물 2억원을 지원하기로 했다"며 "당선이 유력했던 이창동 감독의 '시'는 예상과 달리 이 사업에서 1·2차 모두 탈락했다. 대신에 임권택 감독의 '달빛 길어올리기'(1차), 김호선 감독의 '진실 혹은 편견에 대하여'(2차)가 뽑혔다. 애초 영진위는 1·2차에서 각각 두 편씩 총 네 편을 선정할 수 있었지만, 두 편을 고르는데 그쳤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영화주간지 씨네21은 "이창동 감독의 '시'는 심사위원들의 평점 평균이 70점을 넘기지 못해 '과락'됐다"고 전했다. 알고 보니 한 심사위원이 '시의 시나리오는 각본의 포맷이 아니라 소설 같은 형식'이라는 이유로 0점을 줬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이창동 감독에 대한 보복이라는 해석도 나왔다"면서 "게다가 당시 심사평에서 영진위는 "지원 작품들의 시나리오 개발 수준이 영진위가 실시하는 다른 시나리오 공모사업에 비해 떨어지는 작품들이 많았다"고 밝혔다. 그 중 하나가 세계적인 권위의 칸 국제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소식은 곧 여러 매체들로 번져나가 한 동안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각본에 문제가 있어 0점을 줬다는 영화가 세계 최고권위 국제영화제 칸에서 하필이면 각본상을 수상해버렸다는 것은 일종의 코미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건은 여기서 끝나질 않았다. 보도가 빗발 친 지 20여일 뒤인 6월15일, 영진위는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 관련 보도 내용에 대한 해명 및 정정보도 요청'을 통해 채점 평가 기준에 문제는 없었으며, 공모탈락 이후 다른 방법으로 지원했다고 밝혔다.
영진위는 "지난해 6월 1차 마스터영화제작지원 사업 신청 당시 '시'는 사업 공고 시 제시한 제출서류 요건이었던 시나리오 제출이 아닌, 트리트먼트(시나리오 줄거리)를 제출했다. 이를 심사위원 중 1명이 해당 작품을 제출서류 요건 미비로 판단하고 0점으로 채점했다"며 "하지만 최고점과 최저점은 평가 점수에 반영하지 않는다는 심사규정에 의해 0점은 최종 심사결과에 반영되지 않았다" "비록 '시'가 결과적으로 한국영화의 위상을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한 작품임은 사실이나, 공평무사해야 할 영화진흥사업 시행에 있어 서류 결격이나 요건 미충족에도 불구하고 선정됐다면 이 또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자 그동안 입을 다물고 있던 '시' 측도 드디어 나섰다. '시' 제작사인 파인하우스 측은 영진위 해명 다음날인 16일 "영진위는 지원사업 신청자가 '트리트먼트(시나리오의 줄거리)'를 제출했다고 해명했지만, 우리는 대사까지 완벽하게 만들어진 완성된 형태의 시나리오를 제출했다. 감독이 문학적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신 번호만 붙이지 않았을 뿐"이라며 "제작사의 입장에서 영진위의 관습적인 시나리오로 고치는 데 불과 한 두 시간이면 충분한 작업을 굳이 마다하고 '무리하게' 제출했다는 게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는지 묻고 싶다"고 반문했다.
이와 함께 "영진위는 이미 시나리오가 없고 촬영 당일 최종 대본이 나오는 것으로 유명한 홍상수 감독의 영화 '밤과 낮'를 트리트먼트로 서류 접수했고, 심사를 해서 지원한 전례가 있다"면서 "그런데 '시'는 트리트먼트도 아니었고 완성된 시나리오였다. '서류미비'로 탈락시켰다고 사실을 호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 공방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서로 말이 엇갈리고 있어 진실공방 자체도 시간이 좀 더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결론이 어떻게 나오건 간에 마스터영화 제작지원사업에 대해 몇 가지 점 정도는 분명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일단 마스터영화 제작지원사업의 취지부터 생각해보자. 취지 자체는 간명하다. '국제 경쟁력을 인정받은 감독의 해외진출을 돕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지원사업의 제출서류 요건으로 시나리오 제출이 필수라는 점이 먼저 의아하다. 세계 영화 거장들 중에는 각본을 제대로 써놓지 않고 영화를 만드는 이들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비밀과 거짓말'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바 있는 마이크 리 감독은 각본을 미리 써놓지 않고 촬영 현장에서 그때그때 배우들과 토론하며 애드리브를 유도해 신을 만든다. 또한 파인하우스 측 변처럼, 칸영화제 단골손님인 한국의 홍상수 감독 역시 "촬영 당일 최종 대본이 나오는 것으로 유명"하다.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바 있는 홍콩의 왕가위 감독도 그와 유사하다. 애초 국제영화제에서 성과를 올리는 영화들은 대부분 예술본위적 성격을 지닌 관계로 제작방식 역시 일반 상업영화와 차별화된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국제 경쟁력을 인정받은 감독의 해외진출을 돕는다'는 마스터영화 제작지원사업에서 이번 '시' 사건으로 문제가 된 시나리오 제출 기준은 애초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럼 이를 빼놓고 다시 생각해보자. 그러면 시나리오와는 상관 없이 '국제 경쟁력을 인정받은 감독'들의 영화를 고르는 게 제일 합당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런 식이라면 민주당 최문순 의원이 지적했듯 "마스터영화 제작지원사업은 국제영화제 수상 및 출품실적을 갖춘 감독들의 작품을 심사해야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런데 이게 과연 맞을까. 올해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을 비롯 6개 부문을 휩쓴 '허트 로커'의 캐스린 비겔로 감독은, '허트 로커' 이전까지 아카데미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던 감독이다. 뱀파이어 영화, 하드액션 영화, 사이버펑크 영화 등을 연출해온 전형적인 상업영화 감독이었으며, 작품들 평가도 오락가락했다. 전작 'K-19'은 혹평을 받고 흥행에 실패해 무려 6년 동안이나 작품 활동을 쉬어야 했다.
반면 올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신작 '아웃레이지'를 들고 나온 일본의 기타노 다케시 감독은 명실상부한 세계적 거장이다. '하나비'로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바도 있다. 그러나 '아웃레이지'는 칸에서 열화와 같은 혹평을 뒤집어써야 했다. 세계3대 영화제에 처음 입성해본 임상수 감독의 '하녀'보다도 월등히 떨어지는 평가를 받고 쫓겨나다시피 칸을 떠나야했다.
평가가 좋건 나쁘건 일단 한 번 세계3대영화제 경쟁부문에 오르면 매번 단골손님이 돼 기본적으로 해외 노출도 자체는 높아지리라는 예상도 홍상수 감독의 예에서 깨진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극장전' 두 편이 경쟁부문에 올라간 이후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늘 칸 경쟁부문에서 떨어진다. 신인감독 영화는 경쟁부문에 올라가기 힘들다는 편견 역시 세계3대영화제 경쟁부문 라인업을 몇 년 치만 지켜봐도 쉽게 깨진다.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은 데뷔작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로 칸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은 물론 황금종려상까지 수상한 바 있다.
한 마디로, 아무리 '국제영화제 수상 및 출품실적을 갖춘 감독'의 영화라 해도 그것만으로 해외영화제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 한국 문화위상을 드높일 확률이 높다는 결론은 아무래도 무리라는 것이다. 그렇게 알 수 없는 상황이니 다시 돌아가 최소한의 보루인 '각본'을 선택하는 것이 옳을 수 있다고?
1980년대 후반 J J 에이브라함스의 '헨리를 위하여' 시나리오는 스튜디오 관계자들 사이에서 돌던 시절부터 '최고의 시나리오'라는 극찬을 받았다. 결국 '졸업'의 거장 마이크 니콜스의 손에 쥐어져 1991년 영화화됐다. 그러나 막상 영화가 공개되자 갖은 혹평을 뒤집어쓰고 상업적, 비평적 재난을 맞이해야했다. 반면 모든 스튜디오 관계자들이 '정신병원에나 가보라'며 혹평을 쏟아 부은 앤드루 케빈 워커의 각본 '세븐'은 '에이리언 3'로 혹평과 흥행실패를 동시에 맞이한 데이비드 핀처 감독에 의해 영화화해 흥행성공은 물론 현대 범죄영화 클래식으로 자리 잡게 됐다. 시나리오는 시나리오일 뿐 영화가 아니다. 결과물은 영화지 시나리오가 아니다.
결국 '시' 사건의 진정한 핵심은, 영진위가 이창동 감독을 선택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애초 마스터영화 제작지원사업 자체가 성립될 수 없는 사업이라는 데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지원사업은 일종의 도박이다. 영화가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별달리 보증이 되지 못할 기준들만을 가지고 국제무대에서의 성과를 기대해 돈을 주겠다는 논리다. 경마나 경륜과 다를 게 없다.
영화라는 건 원래 어떻게 나올지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다. '내일을 향해 쏴라' '대통령의 음모'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할리우드 각본가 윌리엄 골드먼의 멘트처럼,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설령 영진위에서 다음번에는 이창동 감독의 신작에 지원해주는 결정을 내리더라도, 그때는 또 그때 나름대로 이창동 감독의 영화가 해외에서 무시당하고 지원에서 떨어진 신인감독의 영화가 세계영화제를 휩쓸지 모른다. 그러면 또 논란이 일 수 있다. 그때가 되면 '영진위는 기득권 감독들만 지원하나'로 논란의 틀이 바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논란만 꾸준히 제조할 가능성이 높은 도박성 지원보다는, 그저 하던 대로, 업계에 진출하기 힘든 특정상황 작가들이나, 이미 영화는 만들었지만 예산 탓에 마케팅 비용이나 배급에 어려움을 겪는 제작업체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차라리 낫다. 적어도 그런 종류의 지원은 도박성 짙은 게임은 아니기 때문이다.
끝으로, '해외영화제에서 성과를 보인다'는 마스터영화 제작지원사업의 실질적 목표도 사실상 근래 시장 분위기에서는 다소 허랑해 보인다는 점을 인지해둘 필요가 있다. 해외영화제라는 건 역시 칸, 베니스, 베를린 등 세대3대 국제영화제를 가리킨다. 그런데 이들 3대 영화제는 점차 위력이 떨어지고 있다. 마켓으로서만 가치가 남아있으며, 정작 수상작은 업계인들 외에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세계영화는 점차 3대영화제 수상이 아닌, 미국시장에서 공개돼 미국 비평가들로부터 인정받는 데 목적을 두기 시작했다. 그리고 미국에서의 평가를 발판으로 유럽, 아시아 등지에 추가 배급하는 것이 일종의 왕도처럼 여겨지고 있다. 따라서 굳이 해외진출에 목적을 둔 지원사업이라면 차라리 미국시장 진출을 수월하게 해주는 장치를 구비해주는 편이 옳을 수 있다. 물론 진짜 그런 사업이 들어간다면, 또 다시 어디에선가는 '영화를 쿠키처럼 찍어내는 공장국가에서 인정받으려 돈 쓴다'며 비판에 들어갈 수도 있다. 돈과 예술이 만나면 원래 골치 아픈 일들밖에 남는 게 없다.
대중문화평론가 fletch@empas.com< 저작권자ⓒ '한국언론 뉴스허브'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Copyright ©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홍진경, '조폭 연루설' 조세호 감쌌다…"억울했을 텐데 처신 우아해"
- 장윤정, 집에 사우나 설치한 이유…"목욕탕서 사진 찍혀"
- '1억 손실' 미자, 사상 첫 '270만 닉스' 터치에 결국…"이번에도 잃으면 끝"
- 최준희, 故 최진실 메시지에 눈물…"너무나 귀한 딸"
- 최철호, '음주난동' 사건 전말 공개…"이유 막론하고 미친 짓"
- 엄지원, 일본 여행 중 분쇄골절 사고…"철심 18개 박았다"
- "야르가 왜 거기서 나와?"…올리비아 로드리고 신곡에 '한국 밈' 등장
- 하원미, 추신수 몰래 남사친과 술자리…"돌았냐"
- 군대 간 로운, 할리우드 배우 만났다…인맥 어디까지
- 경리, 화이트룩 입고 능소화 아래 한 컷…36세 동안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