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 시인의 인문학 산책] (6)축구

2010. 6. 15.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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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슬과 함께 시작되는 드라마… 축구는 삶이며 종교"

다시 축구가 세계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남아공월드컵이 열리는 동안 수백만 명이 경기장을 찾고,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수억 명이 위성중계를 본다. 이번에 우리와 맞붙는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 그리고 잉글랜드의 웨인 루니, 브라질의 호비뉴, 스페인의 다비드 비야, 세르비아의 조란 토시치, 한국의 박지성과 박주영과 이청용의 플레이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가슴이 뛴다.축구는 왜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을까? 그 이유는 단순하다. 축구는 모든 스포츠의 정수(精髓)인 것이다.

경기가 시작되자 선수들의 체내에서 테스토스테론 분비가 급증한다. 이 남성 호르몬은 지배력, 자신감, 공격성의 본능을 끓게 만든다. 관중이 난동을 부리는 것도 이것과 상관 있다. 축구는 피를 끓게 만든다. 심판의 휘슬과 함께 모험의 드라마가 시작된다. 경기장 안에서 공은 유일한 가치다. 그러나 "공은 함께 놀지 않고, 공은 노래하지 않고, 공은 쓰다듬을 수 없다. 공은 선수의 동료나 친구가 아니라 타자이다."(크리스토프 바우젠바인, '축구란 무엇인가')

선수들은 그 유일한 가치가 움직이는 궤적에 따라 모이고 흩어진다. 한 선수가 공을 몰고 달리면 상대방 선수들은 그 공을 빼앗으려고 달려든다. 몸싸움이 일어난다. 빈 곳에 떨어진 공을 차지하려고 양 편의 선수들이 전력으로 질주한다. 선수들의 몸짓은 거칠고 호전적인가 하면 우아하며 예술적이기도 하다. 그들은 전사(戰士)이자 개척자이고 예술가들이다.

어린 시절 우리는 해가 질 때까지 공을 차고 놀았다. 그 시절 공을 차고 달리며 중력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걸 몸으로 깨달았다. 내가 배워야 할 도덕과 의무가 정강이뼈와 대퇴골에 속해 있다는 것, 그리고 변동과 불연속을 지배하려는 발의 투쟁이 긴 역사를 가졌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공은 예기치 않은 방향에서 날아온다. 세상의 일들은 그처럼 예측불허이며, 많은 우연들이 소용돌이치는 세계에 발을 딛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전율했다.

달의 항로를 쫓는 추적자들은 고양이처럼 신경을 곤두세우고 그 우연을 탐색하고, 달리고, 매복하고, 노려본다. 공이 구르는 운동장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들을 결정하는 것은 우연의 신(神)이다. 거머쥘 수 없는 인생은 내 앞으로 굴러왔다가 이내 다른 곳으로 가버린다. 나는 굼뜬 동작으로 허둥대다가 헛발질한다. 헛발질: 수태가 되지 않은 상상임신. 내 발은 공중으로 뜨고 공은 떼구르르 굴러간다. 능숙한 선수들은 공을 헛발질하거나 놓치는 법이 드물다. 잘 훈련된 선수들은 공을 완벽하게 제어하며 우연들을 필연으로 바꿔놓는다. 오, 누가 승리를 말하는가. 우리는 피로 얼룩진 잔혹사를 대속(代贖)하기 위하여 선택했을 뿐이다. 수렵과 전쟁 대신에 축구를. 축구는 예측불허와 살육 없는 전쟁, 땀방울과 질주, 우연들의 날뜀, 격렬함 뒤에 얻는 고요한 평화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사람들에게 축구는 유희다. 아이들은 배우지 않고도 공을 찬다. 공을 차는 것은 태어날 때부터 우리 안에 각인된 놀이 본능과 거부할 수 없는 생명 충동에서 비롯된 것이다.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 "초저녁 하늘은 파리하고 날씨는 쌀쌀했으며, 공차는 아이들이 쏜살같이 뛰어가 공에 부딪힐 때마다 매끈매끈한 가죽 공은 희미한 광선속을 육중한 새처럼 날았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공은 몸집이 커다란 새처럼 허공을 가르며 난다. 공중을 날아가는 공은 그 무엇에도 종속되지 않고 그 자체로 사물의 진리성을 구현한다. 그때 공은 마치 야조(夜鳥)의 눈과 같이 살아있는 존재의 일부로 다가온다. 그 둥근 공과 처음 만나는 순간 우리는 신체와 사물의 직접적인 접촉이 만드는 운동물리학의 세계에 들어선다. 공은 물리적 힘에 대한 반동의 힘으로 굴러가거나 공중으로 날아간다. 가끔은 헛발질도 한다. 그 첫 번째 헛발질의 깊은 낭패감이라니! 공을 비켜 간 헛발질은, 그 헛된 에너지의 소모는 씁쓸하고 허무하다.

운동장은 넓고 그 위의 푸른 하늘은 더욱 드넓다. 실축을 하고 잠깐 낙담해서 운동장에 우두커니 서 있을 때 우리는 미래의 인생 여정에서 합목적성에서 벗어난 선택을 할 수 있으리라는 나쁜 예감에 사로잡힌다. 그 실수를 너무 두려워 할 필요는 없지만 항상 신중해야 한다는 교훈도 놓쳐서는 안된다.

공은 어디에서나 찰 수 있다. 골목길에서, 공터에서, 학교의 운동장에서. 혼자서, 혹은 여럿이서. 혼자라면 벽을 향해 공을 찰 수 있다. 벽에 맞고 반동의 힘으로 굴러온 공을 다시 찬다. 남자 아이들은 누구나 벽에 공을 차며 혼자 놀아본 경험이 있다. 공은 가난하거나 부자거나를 막론하고, 장소와 시대를 넘어서서 아이들의 가장 친근한 벗이다. 보스니아나 아프카니스탄에서도, 브라질이나 칠레에서도, 이집트나 이란에서도 아이들은 공을 차고 논다.

공을 향한 질주, 골대를 향하여 거침없이 전진하기. 축구의 즐거움은 공을 골대 안에 밀어 넣고 경기에서 이긴 뒤, 나와 우리 팀의 존재감을 상대방에게 인식시켰다는 뿌듯한 자부심과 승리를 쟁취했다는 도취감에서 비롯된다. 아울러 공을 몰고 질주할 때 살갗에 스치는 바람의 청신한 촉감, 헐떡이는 심장, 격렬한 운동 뒤 근육을 이완시킬 때 느끼는 평화로운 피로감, 함께 뛴 동료와의 끈끈한 우정과 연대감을 확인하는 순간들 속에도 그 즐거움은 스며 있다.

저 멀리 굴러가는 공을 향해 달려갈 때 맥박과 호흡은 가팔라진다. 공은 나보다 더 먼저 달려온 자가 차지한다. 공을 쫓아 달린 노동은 아무 보상도 없이 끝난다. 그 종료의 순간에 우리는 비애라는 감정의 실체와 만난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다음 기회를 기다리면 된다. 인생이 그러하듯 축구에서도 많은 기회들이 다가오고 어떤 기회들은 붙잡기 전에 사라진다. 아이들은 여럿이 어울려 공을 차며 그것이 곧 삶이며 살아가는 방식이라는 걸 저절로 배운다. 저마다 서 있는 위치와 맡은 역할이 다르다.

축구는 그 개별자들이 화합을 이루고 팀플레이를 해야 하는 운동이다. 공을 차며 배우는 인생이 진짜 인생이다. 경기 내내 멈춰 있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는 공은 선수들의 나태와 직무유기, 방탕과 무지를 부끄럽게 만든다. 아이들은 공을 차거나 축구경기를 관전하며 사람이 살아가는데 도덕과 의무가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배울 것이다. 이 배움에서 얻은 학습효과는 평생을 통해 유효하다. 축구는 인생이고,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다.

축구는 수렵시대의 사냥과 전쟁의 대체물이다. 축구 경기에서 인생의 축도(縮圖)를 찾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축구선수는 엄격한 훈련을 통해 기술을 습득하고 체력을 단련해야 한다. 그 안에는 따라야 할 규범과 의무들, 추구해야 할 가치와 미덕들이 있다. 축구는 노력과 용기, 희생정신의 가치를 일깨우고 고양시킨다. 훌륭한 선수는 팀을 위해 희생하고 동료선수를 위해 헌신한다.

규칙들은 경기장 안에서 어떤 용맹함도 정의보다 더 앞설 수 없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규칙을 어기면 그 벌칙으로 프리킥이나 페널티킥을 받는다. 경고를 두 번 받으면 경기장 밖으로 퇴장당한다. 어린애들은 축구를 통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 예를 들면 규칙을 따르고 타인과 협력하는 법, 절제와 노력의 가치, 극기정신과 같은 미덕들을 배울 수 있다.

알제리에서 축구팀의 골키퍼로 활동했던 알베르 카뮈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궁극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의 윤리나 의무란 축구선수로서 내가 지녀야 할 윤리나 의무와 다르지 않다." 좋은 팀의 선수들은 플레이가 창조적이고 동료에게는 헌신적이며, 그 정신은 고결함으로 가득 차 있다.

축구의 고결함은 평범한 영혼을 위대한 사람으로 훈육시킨다. 축구는 가난한 소년을 장관이 되게 하고, 이발사의 아들을 귀족 작위를 받게 하고, 평범한 청년을 작가로 성장시켰다.

축구는 신을 잃어버린 20세기 인류가 창안해낸 새로운 종교다. 유럽에서 전파한 축구라는 복음은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에 이르기까지 전세계에 퍼졌다. 축구장은 성전(聖典)이며, 경기를 관전하러 나오는 관중은 이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러 오는 것이다. 축구 팬들은 한결같이 열혈이다. 스물두 명의 선수와 심판들이 경기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선수들과 관중은 심장 박동이 빨라진다. 관중이 몽롱한 표정으로 몰입할 때 그것은 종교적 황홀경과 '다르지 않다. 승자와 패자의 운명은 극적으로 엇갈린다. 승자는 말로 다할 수 없는 행복감과 더불어 저의 존재감을 증명해냈다는 사실에서 뿌듯함을 느낀다. 축구장에서는 오로지 꿈으로만 존재하던 것들이 현실이 되고 예측할 수 없는 기적은 자주 일어난다. 축구는 삶이 그렇듯 놀라운 기적이다.

장석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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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프 바우젠바인, '축구란 무엇인가', 김태희 옮김, 민음인, 2010닉 혼비, '피버 비치', 이나경 옮김, 문학사상사, 2005프랭클린 포어, '축구는 어떻게 세상을 지배했는가' 안명희 옮김, 말글빛냄, 2005김훈, '공 차는 아이들', 생각의나무, 2006[Segye.com 인기뉴스] ◆ 최은정 "나이 많은 모델들 비키니 화보 역겹다"◆ 여가수 서모씨 성폭행 시도한 작곡가 붙잡혀◆ 차승원 "유해진-김혜수, 왜 좋아하는지 안다"◆ "내안에 욕망의 괴물이…" 태연히 범행 재연◆ 나사 "2013년 우주폭풍 지구 덮칠 것" 경고◆ '1인2역'으로 채팅녀 속여 46일 감금·성폭행◆ "우즈 숨겨둔 아이 있다" 주장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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